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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재건축·재개발 시장서 ‘갑’의 횡포 심각

[포커스]건설사, 재건축·재개발 시장서 ‘갑’의 횡포 심각

등록 2014.06.06 07:00

수정 2014.06.06 19:57

서승범

  기자

조합 계약 성사 후 공사중단 빌미 공사비 인상 요구
분양도 안했는데 “할인분양률 책정하라” 조합 압박

서울 한 재건축 공사현장 모습. 사진=서승범 기자 seo6100서울 한 재건축 공사현장 모습. 사진=서승범 기자 seo6100

최근 재건축·재개발 건설사들이 사업주체인 조합원들에게 갑질을 서슴치 않으면서 조합원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 재개발 비상대책위원회·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공사 중단’을 무기 삼아 공사비 인상, 할인 분양 등 과도한 요구를 하며 조합원을 핍박하고 있다.

계약서에 전혀 없는 내용을 핑계로 공사를 못하겠다고 엄포를 놓거나 조합 입장에서 독소조항이 가득한 관리처분안을 통과시키키라고 으름장을 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조합 ‘갑’에서 ‘을’로 전락 = 재건축·재개발 조합은 건설사에게 갑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을의 입장으로 전락했다. 이는 오랜 불황으로 인해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떨어지다보니 건설사들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외면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건설사가 갑의 위치에 올랐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해도 수십명의 홍보직원을 동원해 금품을 제공하는 불법행위도 불사하며 시공사 선정에 열을 올렸던 건설사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말 시공사가 선정된 재개발·재건축 단지는 단 한 곳 뿐이었다. 또 올해 1분기 서울에서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를 마감한 사업장 5곳도 파트너를 찾지 못했다. 이 중 4곳은 건설사들이 아예 입찰에 참여하지 않아 유찰됐다.

현재 노원구 태릉현대재건축은 5번째 시공사 선정을 시도 중이며 방배5구역 재건축도 지난 4월 두 번째로 시공사 선정에 나서기도 했다.

증산5구역 재개발은 입찰 조건도 완화해 시공사 모시기에 나섰지만 유찰을 피하지 못했다.

수도권 지역은 사정이 더 나쁘다. 인천 주안10구역 재개발도 시공사 입찰이 사실상 유찰됐고 부산 복산1구역 재개발도 몇몇 건설사가 관심을 보이는 듯 했지만 입찰에는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적체된 사업장이 많은데다 국내 주택 경기침체로 진출한 해외시장의 적자누적으로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런 기조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시공사 선정되면 내맘대로 =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공사는 제 맘대로다. 관리처분안에 조합원에게 독이 될 항목들을 포함해 서둘러 통과시키려고 하고 마음처럼 안되면 총회 무산·공기 지연 등을 이유로 ‘공사 중단’을 선언하기 일쑤다.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1-3구역 재개발 비대위에 따르면 시공사는 독소조항이 가득한 관리처분안을 통과시키려다 총회가 무산되자 ‘공사 중단’ 카드를 꺼내 들었다. 내용이 통과된다고 가정했을 때 조합원들의 피해는 1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비대위측은 공사비용의 52% 가량을 지급했기 때문에 시공사인 대림산업이 공사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900억원 가량의 공사비를 대림산업에 납부했지만 공사를 시작한 12월 말부터 현재까지 공사 진행율은 고작 2.8% 밖에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대림산업 관계자는 “공사비로 받은 것은 하나도 없다. 계약금, 중도금, ABS 등으로 받은 1900억원은 조합사업비로 다 나갔다”며 “관리처분 총회가 통과돼야 분양을 하든 사업을 시작하는데 공사만 지속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왕십리뉴타운 3구역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달 23일 관리처분계획이 부결되자 시공사는 공사중단을 선언했다.

시공사들이 경기침체에 따른 미분양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과도하게 ‘분양대책비’를 책정하는 것도 문제다. 분양대책비는 미분양을 대비해 따로 잡아 놓은 예산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조합원들 수익이 떨어진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시공사의 주장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고 입을 모은다. 반론을 제기한다고 하더라도 받아드려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공사기간이 길어져 수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분양도 안했는데 할인분양?···권한 침범 도 넘어 = 공사 중단이라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건설사들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는 시행사(조합)의 권한까지 침범하고 있다. 시행사 측이 분양 후 정하는 할인분양에 대한 것까지 받을 공사비를 위해 미리 정하고 있는 것이다.

미분양 할인계획 등은 분양 후 미분양이 발생했을 경우 조합이 시공사측에 조언을 구하는 것이 관례다.

업계에서는 시공사가 공사비를 미리 받으려는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할인분양을 하면 미분양 처리가 한결 쉬워져 공사비 수령하기가 수월해지기 때문이라는 것.

대형 건설사 한 관계자는 “미분양 관련해서 미리 의사결정을 받는 자체도 부담스러운 얘기다. 단순도급일 경우 할인분양 계획은 미분양이 났을 때를 대비해 시공사가 조합 측에 적정 분양가를 얘기해주는 정도”라고 전했다.

이어 “단순도급으로 공사를 진행하면 할인 분양에 관한건 전적으로 조합 측에서 결정할 일이다. 시공사가 분양가에 관해서 결정권이 없다”며 “미분양이 생기면 대출이자 등의 문제로 조합이 금전적인 타격을 입는다. 할인률을 시공사에서 미리 책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조합 비대위 한 관계자는 “사업이 장기화되다 보니 조합원들이 ‘공사중단’이란 소리에 엄청 예민하다”며 “시공사가 공사중단한다고 하면 아무말도 못하고 시공사가 하자는 대로 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주택시장이 호전되야 건설사들의 횡포도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전문가는 “국내 주택시장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다소 낮은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라며 “시장 침체가 끝나야 건설사들도 적극 경쟁에 나서, 조합원들이 다시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승범 기자 seo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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