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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기자
등록 :
2019-03-27 14:03

[현장에서]대한항공 주총, 욕설·고성 난무…조양호 회장 ‘강제퇴진’ 수모도

주주간 충돌…“이사진 제대로 운영했나” VS “돌발발언 하지마라”
조 회장 재선임건 찬성 64.1%…의결 정족수 충족 못해 부결처리

대한항공 제57기 정기주주총회.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 5층에서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는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1시간 넘게 진행된 대한항공 주총은 욕설과 고성이 난무했다.

대한항공 주총은 유독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전날(26일) 저녁 2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하기로 결정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원칙) 적용 첫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영향이다.

조 회장의 연임 여부를 놓고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오전 7시부터 속속 모이기 시작한 취재진은 주총이 시작되는 9시가 가까워지자 100여명으로 불어났다. 소액주주들도 높은 참석율을 보였다. 예상보다 많은 주주들이 주총장을 찾은 탓에 접수가 밀렸고, 계획보다 10분 가량 늦어진 오전 9시 10분께 주총이 개시됐다.

의장은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 부사장이 맡았다. 지난해 주총에서는 조원태 사장이 의장으로 단상에 올랐지만, 올해는 총수 일가를 둘러싼 경영권 논란을 의식한 듯 주총장에 나오지 않았다. 조 회장 역시 불참했다. 대신 서면으로 인사말을 갈음했다.

대한항공의 의결권 있는 주주수는 7만1751명, 주식수는 9484만4611주다. 이날 주총에 출석한 주주는 위임장 제출 등을 포함해 5789명, 의결권 있는 주식수는 총 주식수의 73.84%에 해당하는 7004만946주다.

우 부사장은 회순에 따라 감사보고와 영업보고,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 보고를 마쳤다. 이어 총 4건의 부의 안건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다.

1호 의안은 제57기 재무제표 및 연결재무제표 승인의 건이었다. 조 회장을 옹호한 한 주주는 “지난해 매출액 12조6555억원, 영업이익 6963억원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낸 것에 대해 매우 기쁘다”면서 “올해도 조 회장 주재의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총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더 큰 성과를 보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원안대로 승인할 것을 요구했고, 다른 주주들도 “찬성합니다”며 동의했다.

27일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하지만 주총장은 이내 혼란스러워졌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참여연대 등 주주의 대리인으로 주총에 참석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마이크를 쥐자 주주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채 의원은 “대한항공 정상화를 바라는 주주들과 뜻을 함께하기 위해 참석했다”며 “땅콩회항 사건부터 지금까지 조 회장 일가의 전횡적인 황제경영으로 한진그룹과 대한항공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평판 추락과 함께 실적도 곤두박질쳤다”며 “이사회는 부실계열사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의 부당성,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등에 대해 어떤 조취를 취했는지 설명해 달라”고 말했다.

일부 주주는 채 의원의 발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한 주주는 “국회의원이면 국회로 가야지 왜 여기서 이러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우 부사장은 “1호 의안과 관련된 말씀만 부탁드린다. 1분 이내로 발언을 종료해달라”고 했지만, 채 의원은 “주주 발언권을 충분히 인정해 달라. 다른 주주들은 말씀을 삼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액주주들의 위임을 받아 참석한 김남근 참여연대 합동사무처장 역시 대한항공을 향한 지적을 멈추지 않았다. 김 사무처장은 “회사가 기내 면세품 등 납품과정에서 조 회장과 자녀들이 중간 수수료를 챙기고 회사에 손해를 떠넘긴 것과 관련해 이사회가 운영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했다.

우 부사장은 “재무제표와 관련 있는 발언을 부탁드린다”며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김 사무처장은 “감사보고서와 관련이 있다. 조 회장이 270억원에 가까운 배임·횡령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해 어떤 조취를 취했는가”고 항의했다.

이어 발언권을 얻은 한 주주는“경영진을 비판하는 돌발발언은 왜 나오는가. 재판부와 검찰이 결정할 일이고 비방은 주총 안건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대다수의 주주들은 “맞다”고 외쳤다. 흥분한 일부 주주는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우 부사장은 1호 의안을 원인대로 승인한다며 의사봉을 두드렸다. 주총장은 환호성과 항의성 고성이 동시에 빗발쳤다.

27일 열린 대한항공 제57기 정기주주총회에서 한 주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삿대질을 하고 있다. 사진=이수길 기자 leo2004@newsway.co.kr

가장 주목을 받은 것은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이었다. 3호 의안인 이 안건은 약 40분이 지난 9시 55분께 다뤄졌다.

우 부사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조양호 사내이사의 중임과 박남규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고자 했다”며 “하지만 조 회장의 선임 건은 사전 확보한 위임장 등 의결권 내역을 확인한 결과 총 참석주주 중 찬성 64.1%로 정관상 의결정족수 3분의 2를 충족시키지 못해 부결됐다”고 선언했다.

조 회장의 연임이 불발되자 주총장 분위기는 상반됐다. 환호하는 주주들이 있는가 하면, 탄식을 내뱉는 주주들도 있었다.

한 주주는 “부결됐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지만 주주들의 의견인 만큼, 인정해야 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주총이 위법하게 진행되고 있다며 항의하는 주주들도 있었다. 김 사무처장은 “현장에 온 주주들 의견은 왜 물어보지 않는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다른 주주는 “오늘 주총에서 투표나 어떤 권리를 행사할 줄 알았는데 그대로 넘어간다니 공산당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우 부사장은 이에 대해 “외국인 대주주와 국민연금 등 주총 전 파악한 결과”라며 “반드시 표결할 필요가 없고, 절차상 하자도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날 주총은 약 1시간이 지난 오전 10시 14분에 종료됐다.

한편 조 회장은 사내이사 연임건 부결에 따라 대한항공 대표이사에서 물러난다. 지난 1999년 아버지인 고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지 20여 년만이다. 다만 미등기임원으로 회장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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