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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뉴스]윤봉길이 던진 것은 도시락폭탄이 아니었다

중국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진 우리 민족의 영웅 윤봉길 의사. 4월 29일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날입니다.

윤봉길 의사, 10대 때부터 남다르기는 했습니다. 농촌계몽의 뜻을 품고 19세 때 이미 야학당, 부흥원 등을 운영했지요. 월진회·위친계 등을 결성해 친목 도모나 체력 향상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윤봉길 의사는 민족의 독립이 우선되지 않으면 어떠한 운동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요. 결국 1930년 3월 6일 ‘장부출가 생불환(丈夫出家 生不還)’이라는 글을 남기고 가족을 떠나 중국으로 향합니다.

1931년 중국 상해에서 백범 김구 선생과 만나면서 윤봉길 의사의 독립운동은 방향을 찾게 됩니다. 그의 선택은 ‘의열투쟁’이었는데요.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은 구체적인 투쟁 방안을 찾던 중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일왕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과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이 합동 거행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6일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준비, 3일 뒤인 29일 홍구공원에 모인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집니다.

이때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은 수통 모양의 폭탄이었고, 도시락폭탄은 실제로는 던지지 않았다는 사실. 이를 두고 자결용 폭탄 추측이 나오기도 했지만 두 가지 모두 거사용이었습니다.

“두 개를 모두 던질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 도시락 상자 폭탄은 땅 위에 내려놓고 던지기 쉽게 끈이 달린 물통 모양 폭탄만 던졌다.” - 1932년 6월 6일자 일본헌병대의 신문조서 중 윤봉길 의사의 진술

우리가 ‘윤봉길 의사=도시락폭탄’이라고 많이 알고 있는 이유는 체포 당시 상황을 전하는 기사나 사진으로 이미 사용된 수통폭탄이 아닌 남아 있던 도시락폭탄에 대한 내용이 전해졌기 때문이지요.

윤봉길 의사는 의거 직후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 같은 해 12월 19일 총살됩니다.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던진 폭탄 모양의 진실을 떠나 중요한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던지면서까지 독립을 열망했던 한 청년일 터, 우리 모두 그의 이름 석 자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석희 기자 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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