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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업가치 훼손하면 CEO 해임하겠다는데···

[현장에서]국민연금, 기업가치 훼손하면 CEO 해임하겠다는데···

등록 2019.11.13 15:49

수정 2019.11.14 08:13

고병훈

  기자

‘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공청회재계 우려에도 ‘이사해임 권고’ 추진”경영참여, 안전과 수익성 고려해야”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투협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공청회 모습. (사진=고병훈 기자)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투협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공청회 모습. (사진=고병훈 기자)

7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윤용 중인 국민연금이 재계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장사의 이사 해임까지 요구하는 주주권 행사 방안을 마련했다. 해당 방안은 이달 말 열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해 7월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에 관한 원칙’(이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한 ‘연금 사회주의’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기금위 최종 결정에 따라 재계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투협에서 ‘국민연금 기금 책임투자 활성화 방안’ 공청회를 개최하고, 이러한 내용이 담긴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스튜어드십코드를 통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내용을 총망라했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과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가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지침이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대상 기업의 선정 기준은 중점관리사안과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으로 나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으로는 기금운용본부의 정기 ESG평가 등급이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에 해당하거나, 지배구조(G) 및 환경(E), 사회(S)를 포함한 ESG에서 기업 가치를 훼손 하거나 주주 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하는 경우를 말한다.

중점관리사안 기준은 공개 중점관리기업 가운데 기금운용본부가 기업과의 대화 등 수탁자책임 활동을 추진했음에도 개선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의 배당정책 수립 ▲임원 보수한도 적정성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 훼손 혹은 주주 권익 침해 사안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 행사 사안 등이다.

이번 가이드라인 핵심은 단연 상장사의 ‘이사 해임’ 주주권 행사다.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 이른바 ‘나쁜 기업’에 대해 최고 경영자(CEO)를 포함한 이사의 해임을 요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한 뒤 이사 해임 주주제안을 상정할 수 있으며, 특정인을 사외이사나 감사로 선임하도록 제안할 수 있다.

양성일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일각에서는 기업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한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를 훼손해 국민 자산에 피해가 있는 경우에만 스튜어드십코드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자본시장연구원은 이달 1일 국민연금의 ‘국민연금기금 경영참여 주주권행사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 연구’ 용역 수행 결과를 공개하고, 배당정책을 개선하지 않은 상장사에 이사 해임까지 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외하는 대신 엑시트 플랜으로 보유하고 있던 상장사 지분을 전량 털어내는 월 스트리트 룰(Wall Street Rule)을 제안했지만, 이 역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국민의 노후 자금을 바탕으로 기업에 투자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겠다고 나서자 국가가 기업의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또 책임투자가 정권에 따라 좌우되는 ‘연금 사회주의’ 논란도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한 경제 전문가는 “국민연금의 비독립적인 지배구조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주주권 행사 강화는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초래할 것”이라며 “세계 주요 국가의 연기금 운용사례를 살펴봐도 기금운용 이사회가 정부 소속인 사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본 GPIF, 캐나다 CPPIB, 미국 캘퍼스(CalPERS), 네덜란드 ABP 등 자산 규모 기준 세계 5대 국가의 연기금은 정부로부터 기금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이 보장되는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또한, 해외에서는 기금운용이사회에 정부 인사를 배제하고 기업·학계 출신 전문가 중심으로 꾸린다. 우리나라 기금운용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을 맡고, 기재부 차관과 농식품부 차관 등을 포함해 5명이 현직 장·차관이다. 아울러 CPPIB, 캘퍼스, ABP 등은 자체 의결권 행사지침을 마련한 뒤 외부 전문기관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다.

한국경제연구원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배구조의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면 기금운용 결정 과정에서 정부 입김을 배제하기 어렵다”면서 “해외 연기금들은 기금운용 과정에서 독립성이 훼손되는 문제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곽관훈 선문대 교수는 “국민연금의 경우 기금을 맡긴 사람들의 주된 목적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 아닌 노후 소득 보장일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되고, 경영참여도 안정성과 수익성이라는 기본적인 목적을 고려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곽 교수는 “지금의 의결권 구조로는 수익성과 안정성을 충분히 고려한 판단이 이뤄지기 어렵다”면서 “의결권을 가진 사람들이 투자전문가들로 이뤄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금의 수익과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향상 등이 어떻게 연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경영참여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뉴스웨이 고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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