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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메신저 ‘라인’ 앞세워 글로벌 진격”

“모바일 메신저 ‘라인’ 앞세워 글로벌 진격”

등록 2013.12.16 16:53

수정 2013.12.16 17:07

김아연

  기자

[CEO리포트]‘인터넷 세상’ 지배자 이해진 네이버 의장

끊임 없는 기술개발 열정 한국형 검색엔진 ‘지식인’
유료화 선구모델 ‘한게임’ 포털·게임 최강자로 군림
스마트시대 발빠른 대응 패밀리 3억명 돌파 ‘라인’
신성장 위한 돌격대 선언 세계 놀래킬 큰승부 나서



이해진 네이버 의장. (사진=네이버 제공)이해진 네이버 의장. (사진=네이버 제공)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벤처기업인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대 주식갑부 대열에 합류한 성공한 벤처 창업 1세대로 꼽힌다.

‘연결된 세상’이라는 모티브로 시작된 네이버는 현재 시가총액은 23조5353억원으로 국내 포털 1위를 고수하고 있으며 글로벌 메신저 ‘라인’의 가입자는 3억명을 돌파했다.

물론 처음부터 탄탄대로는 아니었다. 냉혹한 프로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IT업계에서 네이버도 이해진 의장도 숱한 고비를 넘겨왔다. 매년 다시 태어나듯 오뚝이처럼 도전해온 세월이었다.

시작은 검색엔진의 개발부터였다. 1992년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삼성SDS에 입사한 이 의장은 1994년 신입사원 몇 몇과 함께 검색엔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의장은 삼성SDS에서 검색엔진을 사업화할 것을 주장했지만 배너광고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삼성SDS에 사내벤처제도가 도입되자 1997년 10월 6명의 기술개발 인력과 함께 네이버컴을 설립해 소사장에 취임했으며 1998년 12월 검색사이트를 오픈했다.

그러나 사내벤처로서 영업이나 자금·조달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이 의장은 삼성SDS에 분사를 건의, 1999년 6월 독립법인으로 네이버를 분리한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경영자의 길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인터넷 포털업계는 1997년 야후가 국내 시장에 진출해 디렉터리 검색서비스로 1위를 달리고 있었고 1998년 말에는 엠파스가 자연어 검색으로 시장에서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1999년에는 미래산업과 라이코스가 손을 잡고 라이코스코리아를 설립해 포털업계는 야후와 엠파스, 라이코스코리아가 3강 구도를 이루고 있었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네이버는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 한게임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을 준비한다.

네이버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했고 한게임은 자금과 우수한 인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 의장과 당시 한게임의 창업자였던 김범수 현 카카오 의장은 서로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2000년 2월 말 합병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물론 이마저도 마냥 순조롭지는 않았다. 한게임은 검색보다 게임사업이 더 유망해 불리한 합병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기술력을 바탕으로 검색사업에서의 성공만을 꿈꾸던 네이버의 직원들은 게임 사업에 대한 이질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회원이 급증하면서 지속적인 투자를 필요로 했던 한게임으로 인해 2000년 네이버컴의 적자는 크게 늘었고 대내외적인 우려의 목소리는 커져갔다.

특히 새롬의 투자로 인해 250억언의 자금이 흘러들어왔지만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네이버의 고민은 커져만 갔다.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네이버는 한게임의 유료화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당시 네티즌들의 거센 거부감 때문에 결국 옵션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방안을 강구했다.

결국 2001년 3월 한게임의 유료화는 대성공을 거둬 하루에만 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 후 잠시 주춤하기도 했지만 다시 상승하며 콘텐츠 유료화에 대한 선구적인 모델을 구축했다.

한게임의 문제가 해결되니 이번엔 네이버의 문제가 크게 다가왔다. 한게임의 유료화로 2000년 82억원의 적자에서 2001년 28억원의 흑자로 전환했지만 정작 검색서비스에서는 통합검색이라는 지능형 검색서비스를 선보였음에 불구하고 마땅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경쟁사들을 따라가기 위한 커뮤니티나 이메일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오히려 검색부문에서 시장점유율이 악화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설립초기 검색 사업을 주력으로 내세웠던 이 의장은 이 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고 이후 검색 사업에 집중해 2002년 10월 지식인 서비스를 세상에 내놨다.

당시 ‘지식인’은 서비스 초기에 하루 1만개 정도의 질문과 답변이 오갈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로 인해 2003년 1월 네이버는 검색페이지뷰 분야에서 1위를 차지했고 만년 3위에서 야후를 넘어 5월 전체 페이지뷰 2위를 차지했다.

페이지뷰가 증가하면서 프리미엄 검색광고 매출도 순차적으로 늘어났다. 이후 오픈사전과 같은 전문적인 내용 강화와 커뮤니티 강화, 웹툰 등의 서비스 강화로 네이버는 업계 1위에 올라섰다.

또 이를 통해 네이버는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일본에서 모바일 메신저인 라인을 성공으로 이끌었다.

그는 남보다 더 지독하게 수없이 반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인’ 역시 네이버의 100가지 시도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이 의장은 지난 11월 라인 가입자 3억명 돌파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10년 만에 공식 석상에 얼굴을 드러내며 향후 모바일 메신저에서도 글로벌 경쟁자들과 한판 승부를 예고했다.

“라인 가입자 3억명을 돌파한 이제부터가 진검승부입니다.”

◆이해진 의장은
▲1967년 서울특별시 출생 ▲1990년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취득 ▲1992년 카이스트 대학원 전산학 석사 취득 ▲1999년 현 NHN 설립 ▲2004년 NHN 최고전략책임자(CSO) 및 NHN이사회 의장 ▲2013년 8월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아연 기자 csdie@

뉴스웨이 김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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