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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기자
등록 :
2015-01-13 06:59

수정 :
2015-01-13 15:03

[신년기획]사회지도층부터 ‘노블리스 오블리제’ 절실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에 빠져 휴머니즘도 저버려
사회곳곳서 책임감 부족… 지도층도 일반인도 회피에 익숙

청소년들은 10억원이면 대신 감옥에 갈수 있다고 말하고 직장인들은 윤리의식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등 우리사회가 배금주의 빠져들었다고 사회학자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사진은 물질에 빠져든 한국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영화 ‘돈의 맛’ 한 장면.


‘당신에게 10억원을 주고 감옥에 대신 가달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리겠는가.’ 대부분 직장인들은 이 같은 유혹이 온다면 당연하게 한번쯤 고민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아이들은 이런 유혹에 대한 고민 없이도 돈이면 대신 감옥에 갈 수 있다는 충격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시민단체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가 지난해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같은 내용의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2000명 가운데 초등학생은 12%, 중학생은 28%, 고등학생은 44%가 10억이면 감옥에 대신 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성장할수록 그리고 청소년 사이에서 물신주의 만연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정직’에 대한 관념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직지수 조사에서는 초등생이 85점, 중학생이 75점, 고등학생이 67점이다. 성장할수록 윤리의식이 낮아지고 있는 셈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시민단체가 성인을 대상으로 ‘정직지수’를 조사한 결과에서 20대가 최하점을 기록했다.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조사에서는 20대들은 58.3점을 30대는 52.9점, 40대는 60점으로 절반을 조금 넘겼다. 윤리의식 중 가장 낮은 부문은 직장 관련 항목으로 52.4점이지만 사회와 가정 관련 항목(각각 52.9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번 두 조사 결과를 본다면 어린 아이들에서 성인까지 물신주의가 사회 전체에 퍼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조사결과는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사회학자들은 지적한다. 사회학자들은 최근 한국사회를 두고 ‘배금주의’(拜金主義)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

배금주의는 돈을 숭배하면서 돈 있는 사람은 강자며 돈이 없는 사람은 약자라고 본다. 상업주의가 만연하고 사회 공동체를 파괴하고 도덕성이 상실되면서 각조 폐해들이 늘어난다.

특히 이 폐해는 한꺼번에 터진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사회는 배금주의에 빠졌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배금주의는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또 이미 많은 부를 축적한 사람들도 더 많은 돈을 모으는데 집착한다.

지나치게 돈을 숭배해 이기주의가 팽배하면, 돈이 있는 사람은 강자로 여기고 돈이 없는 사람은 약자로 여기는 풍조가 생겨난다.

따라서 돈이 없는 사람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는 데 집착하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버는 데 몰두한다. 이 때문에 서민들은 강력범죄에 빠지고 중산층이나 상류층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일으킨다는 것이 배금주의다.

◇책임회피 하는 한국사회= 물신주의가 계속될수록 사회적인 책임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사회지도층은 책임을 물어야 하는 사건이 일어나면 변명하고 남 탓으로 일관한다. 이 같은 책임회피는 정치는 물론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동양그룹 사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은 책임문제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현재현 회장은 그룹 내부보고를 통해 ‘위험성’을 사전에 인지한 상태로 경영권에 집착해 투자자를 속이면서 어음과 회사채를 발행했다. 사건 이후 당사자인 현 회장은 구속돼 재판을 받는 상황이지만 피해자는 여전히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관련법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제대로 내놓은 것은 없다. 피해자들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투자’라는 명분 때문에 투자금액에 20~30% 수준의 보상금에 울분을 토했다.

피해자들 일부는 서로 연대해 법원에 고발하는 등 동양사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사태에 대한 책임도 동양사태와 관련된 금융당국 책임자들은 그 자리에 있으며 동양계열사는 쪼개지고 새회사에 인수됐지만 직접적인 관련자만 형사처벌을 받았고 나머지는 여전히 회사에서 근무 중이다.

수천억원대 대출 사기와 관련된 KT ENS도 비슷한 사례다. KT ENS 한 직원과 협력업체가 짜고 1조8000억원 규모의 대출사기가 벌여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KT ENS는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KT의 자회사가 만기가 된 기업어음(CP)을 갚지 못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워낙 큰 규모 탓에 사회적 파장도 만만치 않았다. 은행과 KT ENS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소송에 들어갔다.

은행들은 직원의 사기 대출이지만 KT ENS 인감이 찍혀 있었던 만큼 대출금 상환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KT ENS는 은행에 주장하는 매출채권을 발생한 일이 없고 여신심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은행에 책임이 있다고 맞섰다.

세월호 참사는 책임회피의 대표적인 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치인들은 사고 수습 과정에서 자신을 부각시키려다 비난을 받아 곤혹을 치렀다. 정부당국자들은 “세월호 사건을 왜 정부가 책임져야 하냐”며 세월호 선박사인 청해진해운으로 화살을 돌리려다 국민들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참사 이후 수습하는 과정에서는 여전히 책임보다는 화살 돌리기에 급급한 모양새를 보였다.


최재영 기자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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