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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혁 시발점이냐, 경제침체 적신호냐

[김영란법 D-30] 대변혁 시발점이냐, 경제침체 적신호냐

등록 2016.08.30 09:18

현상철

  기자

지금 관가는···기대 반···官에 대한 부정적 시각 없어지나우려 반···통상적 업무까지 위축시키지 않을까

 대변혁 시발점이냐, 경제침체 적신호냐 기사의 사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음식물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3·5·10)이라는 허용 가액기준과 적용대상이 많게는 4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치, 업무관련성이라는 애매모호한 기준 때문에 아직도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이어져 온 접대문화 변화의 시발점이자, ‘갑-을’을 떠난 더치페이 시대의 출발신호와 같다. 동시에 관가와 각 분야 홍보팀을 바쁘게 만들었다. 관례라 여겨지던 한 끼 식사가 자칫 부정청탁의 현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가의 수도, 세종시는 벌써부터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 인맥형성 금지법?
공무원들은 김영란법 자체에 의문을 품고 있지 않다. 이들은 여느 직종보다 강한 청렴도를 요구하는 자리인데다 지금껏 업무관련성이 있는 사람들과의 자리도 스스로 피해왔다. ‘공무원행동강령’을 바탕으로 행동이 제약돼 왔기 때문이다. 걱정은 김영란법으로 ‘자유로움’이 더 야박해졌다는 데 있다.

한 세종시 공무원은 “그렇지 않아도 세종시에 내려와 모임이 줄었는데, 앞으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인맥이 협소해졌고, 앞으로 더 간소해 질 것”이라고 했다. 최근 세종시에 집을 구한 한 젊은 공무원은 “새로운 인맥 형성을 위한 움직임이 제한됐다”며 “사실상 공무원들의 ‘인맥스펙트럼’을 제한하는 조치이자 넓어질 수 있는 시야를 틀어막는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드는 제도”라고 일갈했다.

여타 직장인보다 다양한 관계·선물·식사에 철저한 깨끗함을 요구당하면서 한두 명의 ‘비리 일탈자’로 인해 모든 공직자들이 비난의 대상이 됐던 경험을 수차례 경험했던 탓인지, 세종시 공무원들은 잔뜩 움츠려든 모습도 관측된다.

김영란법 탄생에서 시행까지김영란법 탄생에서 시행까지

한 서기관(4급 공무원)은 “공무원들은 행동강령에 따라 지금껏 스스로를 제약해 왔다”며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사람들이 ‘지금까지 공무원들은 항상 3만원 이상 식사만 해왔던 것이냐’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 같다. 거의 대부분이 3500원짜리 구내식당이나 근처 저렴한 식당을 이용하는데, 왠지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영란법 시행 이후)첫 타깃이 공무원일 경우 사람들의 비판과 원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움츠려들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퇴직한 선배와 순댓국 먹어도 되나요?
잔뜩 몸이 쪼그라든 공무원들은 탈출구를 찾기 바쁘다. 가정이 있는 공무원은 모임보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미혼자들은 자기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퇴직한 선배들과의 만남도 불가능해질 수 있다. 사실상 외딴섬 세종시에서 공무원이 고립돼 탁상행정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제기된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퇴직하고 재취업에 성공한 선배와는 사실상 만남이 단절될 것으로 보인다”며 “직무관련성 여부가 아직도 애매모호한 만큼 우선 (만남이나 모임을)피하고 봐야 할 할 것 같다”고 했다. 이 공무원은 “공직에 오래 몸담고 있었던 만큼 선배들에게 현재 정책에 대한 피드백이나 조언을 들을 기회가 좁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다른 부처 공무원은 “민원인이든 누구든 웬만하면 만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가족이나 개인 취미생활에 매진하는 동료들도 있지만, 가장 큰 걱정은 ‘우리끼리’ 고민하다 탁상행정적인 정책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김영란법 시행을 전후로 변화되는 관가의 신풍속도에 주목하기도 한다. 선배를 만나든 새로운 인맥을 만들든 ‘더치페이’ 문화와 청탁이나 부탁이 없는 순수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젊은층에서는 이미 각자 계산하는 문화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또 관가 주변의 음식점도 이러한 변화에 맞춰 고급메뉴 전략보다 맞춤가격 메뉴 전략으로 갈아타고 있는 중이다. 미국의 공직자들도 한번에 20달러 이상의 접대나 선물을 받을 수 없어 관가 주변에는 19.99달러 메뉴가 흔하다.

퇴직을 앞둔 한 공무원은 “선배가 밥과 술을 모두 사야한다거나 자신이 을의 입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게 되는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가장 큰 변화를 맞게 되는 게 계산문화가 될 것”이라며 “처음에는 억울한 처벌이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시작되겠지만, 정착 되면 이만큼 편한 문화가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세종시의 한 과장은 “아직 더치페이 문화가 익숙지 않지만, 최근에는 부서장 주도의 회식도 많이 줄었고, 근처 식당도 3만원대 이하 메뉴가 나오는 등 가격폭이 다양해진 것 같다”며 “일부에서는 법 위반자 신고 시 보상금을 노린 파파라치도 나올 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괜한 오해를 사지 않고, 새로워진 문화에 익숙해질 겸 더치페이를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현상철 기자 hsc329@

뉴스웨이 현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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