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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CEO리더십 연구소장
등록 :
2019-04-01 14:52

수정 :
2019-04-01 14:53

[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리더는 ‘책임’과 ‘담당’을 구분한다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장관을 임명 할 때 꼭 해야 하는 통과의례가 있다. 물가지수와 같은 세세한 통계수치를 물어보며 서민의 삶을 얼마나 아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하면 ’자격미달‘ 이라고 몰아붙인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게 효과적으로 실력검증을 하는 것일까.

다음은 『사기세가』의 「진승상세가」에 나오는 이야기로 한나라의 지략가 진평(?~ BC 178 )이 주인공이다. 한문제가 조회에서 우승상 주발에게 “온 나라에 일년 동안 옥사를 판결하는 건수가 얼마인가?”라고 물었다. 주발은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쩔쩔 맸다.

한문제는 “온 나라에 일년 동안 재정수입과 지출이 얼마인가?” 내처 물었다. 주발은 이번에도 진땀을 흘리며 답하지 못하고 이를 수치스러워했다. 이에 문제는 공격의 포문을 좌승상인 진평에게 연다. 같은 질문을 던졌는데 진평은 전혀 다르게 답한다. 주발처럼 진땀을 흘리지도, 그렇다고 세세한 숫자로 유창하게 답하지도 않았다. 미인계와 반간계로 적을 물리친 지략가의 풍모가 느껴지는 답이다.

“주관하는 신하가 따로 있습니다. 형사사건은 정위(廷尉)의 담당이고, 세금은 치속내사(治粟內史)가 잘 압니다." 황제가 다시 "각기 주관하는 이가 따로 있다면 그대가 주관하는 일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진평은 "무릇 재상이란 승상은 천자를 보좌하며 음양을 다스려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고, 아래로는 만물이 제때에 성장하도록 어루만지며,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들을 진압하고 어루만지며, 안으로는 백성들을 친밀히 복종하게 하여, 경대부로 하여금 그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게 하는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당연히 칭찬을 들을 수밖에.

이 같은 반전상황을 지켜본 우승상 주발이 “그대는 어찌하여 평소에 나에게 이렇게 대답하도록 가르쳐주지 않았소?”하고 힐난 아닌 힐난의 소리를 한다. 그때 진평의 답이 걸작이다.

“그대는 승상의 자리에 있으면서 승상의 임무를 모르신단 말이오? 만약 폐하께서 장안의 도적 수를 물으시면 그대는 억지로 대답하려고 하셨소?”하였다. 결국 주발은 자신의 능력이 진평에 못 미침을 알고서 병을 핑계 삼아 자리를 내놓았다. 진평이 유일한 승상이 되었다.

리더는 과연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 경중 파악이 우선임을 보여주는 또다른 이야기다. 한나라의 재상을 지낸 병길과 관련된 일화다. 『한서』의 「병길열전」에 전한다. 병길(丙吉, 기원전?∼55년)은 선제(宣帝 기원전 90∼49년 재위 기원전 74∼49년) 때 승상을 지낸 명신이다. 미천한 신분에서 성공한 이로 관용의 덕을 발휘한 이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마부가 술에 취해 마차 방석에 토하자, 다른 사람이 해고를 청했으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용서해주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가 어느 날 외출했을 때의 일이다. 청도(淸道 귀인의 행차 때 앞에서 잡인 통행을 금하는 사람)가 크게 싸우고 있는 무리들과 마주쳤다. 패싸움이 어찌나 심했던지 사망자까지 나올 정도였다. 병길은 모르는 척하며 통과해 버렸다. 이를 본 수행자는 마음속으로 이상하게 여겼다.

얼마 후 병길은 한참을 가다가 소를 몰고 가는 사람과 만났다. 소가 헐떡이며 혀를 빼물고 있었다. 병길은 수레를 멈추게 하더니 부하를 시켜 그 소가 지금까지 몇 리를 걸어왔는지 물어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속으로 “승상께선 앞서 물어야 할 건 묻지 않고 뒤에선 묻지 않아도 될 걸 묻는 구나 뭔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했다. 즉 사람보다 소를 중시하는 태도에 대해 의문을 표한 것이다. 누가 이 같은 세간의 말들을 전하니 병길은 이렇게 답해주었다.

“백성이 서로 싸워서 죽고 상하는 것은 장안령(長安令)과 경조윤(京兆尹)이 직책으로 조치하면 될 일이다. 그러니 내가 직접 관여할 필요가 없다. 연말에 가서 한해의 실적을 평가, 황제께 보고할 때 그들의 잘잘못을 감안하여 상주하고 상벌함으로써 끝나는 일이다. 승상이란 사소한 일에 관계하지 않는 법이니, 노상에서 싸우는 일을 물을 바가 아니다. 그런데 아직 한여름이 되지도 않아 크게 덥지도 않은데 소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은 절기에 맞지 않는 일이고, 그런 현상이 일어나면 재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재상인 내가 소홀히 할 수 없지 않은가. 소의 때 아닌 헐떡거림은 승상의 직(職)으로 근심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물은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병길 대감께선 대체를 아신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진평과 병길, 이들은 리더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며, 무슨 일을 우선시해야 하는가를 분명히 알았던 사람이다. 리더가 온갖 일을 다 꿰뚫을 수도, 참견할 수도 없다. 단 우선순위가 무엇인 줄은 알아야 한다. 작은 기미에서 다가올 미래를 읽고, 그것에 대비하는 것이 리더의 일이다. 위의 진평 이야기에서 주발은 자신이 그것을 모름을 깨닫고 재상자리를 그만두었지만 요즘 그런 사양조차 찾기 힘들다. 온갖 일을 참견하는 것을 유능과 책임감으로 포장하기 일쑤다.

리더가 ‘책임’과 ‘담당’을 헷갈리면 일을 그르친다. 담당은 파악하되 대신하려 들지 말라. 만사에 참견하려 하지 말라. 각자 잘할 일을 파악해 상벌을 주고 길을 내는 것, 그것이 할 일이다. 중국학 전문가인 J교수가 들려준 이야기다. 모 유통업체의 중국 진출 협상이 해당 중국 업체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식 협상 방식 때문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중국에 진출해 성과를 내고 싶은 국내 기업 측 사장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실무자가 기다려보자고 하는 데도 “내가 가서 한방에 해결하고 오겠다”며 불타는 사명감과 조급한 성과욕을 안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말대로 단방에 거래를 성사시켰다. 문제는 전적으로 중국에 유리한 협상이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협상에 원하는 데드라인을 상대에게 일러주고, 성사에 대한 강한 욕심을 보여주는 것은 상대에게 내 패를 다 보여주는 꼴이다. 끌려갈 수밖에 없다.

아쉬울 것 없는 상대측은 최대한 자신들이 유리한 조건을 내걸며 튕겼다. 결국 성사는 됐지만 불리한 조건이었다. 실무자의 일을 대신 하는 것을 ‘책임’이라고 여긴 리더의 판단 착오가 부른 과오였다.

주방장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식당 주인이 요리를 한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 음식 맛은 맛대로 떨어지고, 식당 운영도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그래서 리더 일수록 책임과 담당을 분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판단력과 속이 바작바작 타더라도 기다리는 인내를 함께 갖춰야 한다. 담당을 잘 해낼 적임자를 고르고, 현장의 세세한 일은 담당자에게 맡기되 작은 기미에서 미래를 읽어야 한다. 책임과 담당을 구분하라. 당신은 당신이 맡은 직책의 핵심역량, 일의 우선순위에 대해 알고 있는가?

김성회 CEO리더십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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