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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위대한 쇼맨이 되라

퍼포먼스(performance)는 퍼포먼스다. 퍼포먼스는 성과와 쇼란 두 가지 뜻을 함께 갖고 있다.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성과, 퍼포먼스를 내는 리더는 퍼포먼스, 즉 연기, 쇼도 잘한다.

흔히 “내 마음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하나”하고 말한다. 어찌 보면 간단하다. 쇼로 만들어 보이면 된다. 쇼란 스토리와 신(scene)의 융합이다. 모 스타트업기업의 CEO는 국내에서 착한 리더의 대명사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 마키아벨리

그에게 가장 인상 깊게 읽은 한권의 책을 물어보았다. 답은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이었다. 그의 평소 이미지와 정반대여서 의외였다. 이어 <군주론>에서 배운 인사이트를 질문했다. 그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리더에게 중요한 것은 착한 것보다 착해보여야 한다‘는 깨달음 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속임수 리더십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착한 척과 착한 것, 나는 “척‘, 즉 쇼맨 리더십은 바꿔 말하면 사람의 취향, 지향, 의향을 이해하는 심리전에 능한 리더라고 본다. 상황과 역할의 페르소나에 맞출 수 있는 리더십이라 생각한다.

착한 것이 본인의 성정, 바탕만을 강조한다면 착한 척하는 것은 상대가 착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춰 행동할 수 있는 탄력성을 의미한다는 점에서다. 쇼맨십 없는 리더는 마음을 사기는커녕 열기조차 힘들다.

무엇이 가려운지, 아픈지를 모르고 애매한 데를 긁으며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쇼맨십은 리더십과 한 끗 차이다. 리더십 없는 쇼맨십은 사기지만, 쇼맨십 없으면 아예 리더가 되기조차 힘들다.

리더십과 쇼맨십은 한 끗 차이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한 번의 스토리 시연, 사례가 열 번의 훈화, 지침 시달보다 효과적인 것을 실감해보았을 것이다. 사람은 논리나 합리로 설득해선 쉽게 믿지 않는다.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어야 믿는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게으르다. 단순하게 일하고 싶어한다.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한번에 느끼는 것으로 보다 더 경로를 단순화하고자 한다. 감동적 쇼 한 장면이 백번의 논설문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까닭이다.

역사에 공적을 남긴 리더들을 떠올려보라. 무엇이 떠오르는가, 위대한 업적을 남긴 리더들은 모두 한 방의 선명한 장면과 한 끗의 강력한 스토리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리더십 마케팅이다. 이들은 퍼포먼스를 통해 리더십을 마케팅 했다.

쇼맨십과 리더십은 한 끗 차이다. 리더십 없는 쇼맨십은 가능하지만, 쇼맨십 없는 리더십은 힘들다. 아니 불가능하다.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리더를 떠올려보라. 아마도 한 컷의 선명한 장면, 한 방의 강력한 스토리가 함께 할 것이다.

대중에게 강한 임팩트를 남기기 위해선 감동의 한 컷, 감탄의 한 끗은 불가피하다. 리더가 쇼를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인물들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선 쇼를 해야 함을 알았다. 한 번의 쇼가 100번의 메시지보다 강력한 법이다. 둘다 편집, 가공을 거쳐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한다는 점에선 통한다. 목적에서 대중을 선한 목적으로 감동시키느냐, 악한 의도로 선동하느냐로 갈린다고 말할 수 있다.

탁현민 전 청와대 행정관은 자신의 쇼와 야당의 쇼를 구분해 “바람직한 의미의 쇼는 관객들의 감동을 목적으로 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쇼는 관객들의 감동이 아니라 관객을 수단으로 정작 자신들이 원하는 무엇을 달성하려 한다”로 구분했다. 진심을 보여야 할 대상들에게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고 숨기는 일체의 연출행위는 연출이 아니라 사기라며 “쇼의 의도가 관객의 감동이 아니라 관객을 선동하는 것에 있다면 결국엔 관객들에게 외면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탁 씨가 말한 자신의 쇼와 야당의 쇼 구분은 쇼맨십과 리더십의 구분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다만 현실에선 리더십과 쇼맨십, 이 둘을 기름과 물처럼 구분하긴 쉽지 않다. 그러기에 논란이 늘 끊이지 않았다. 시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늘 리더십과 쇼맨십의 경계선은 아슬아슬하다. 그 경계선을 위태롭게 오간 대표적 인물은 오기, 조조, 당태종이다. 자, 이들이 리더십 마케팅에 쇼맨십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살펴보자.

오기가 병사 고름을 빨다: 병사를 위하는 어짊인가, 전략인가.

전국시대 초기 위나라의 장수 오기

오기(吳起)는 전국시대 초기 위(衛)나라의 장수로 손자와 더불어 병법의 대가로 알려진 사람이다. 자신의 고향인 노나라에서 야망실현이 어려워지자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을 구해 마침내 장군이 된다. 그는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식사도 함게 했다.

잠을 잘 때 자리를 깔지 않을뿐더러 행군할 때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도 친히 가지고 다닐 정도로 병사들과 어려움을 함께 했다. 그뿐인가. 병사가 종기에 걸려 다리에서 누런 고름이 질질 흐르자, 망설이지 않고 입으로 몸소 빨아주었다.(당시엔 요즘의 외과기구인 석션(suction)기처럼 빨아들이는 기구가 없어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 제거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방법이었다.) 사졸의 어머니는 그 소식을 듣고 감사해하긴 커녕 통곡했다.

이유는 “오기가 그 애 아버지의 종기고름을 빨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에 감격해 물러설 줄 모르고 용감하게 싸우가다 그만 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우리 아들 종기도 빨아주었다니 난 이제 그 애가 언제 어디서 죽게 될 줄 모르게 되었으니 통곡하는 것입니다”란 내용이다.

오기의 연저지인(吮疽之仁)엔 이중적 평이 함께 존재한다. 병사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란 긍정적 뜻 외에 계산을 위한 선행, 목적을 위해선 못할 일이 없다는 부정적 뜻이 함께 있다. 반대진영의 시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평소인품과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오기는 야심이 강한 인물이어서 자기 어머니가 죽었는데도 고향에 가지 않을 정도였다. ‘경상(卿相)이 되기 전엔 돌아가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겠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뿐인가. 노나라 군주가 오기의 부인이 적성국가인 제나라 출신이란 이유로 의심해 장수로 삼을 것을 망설이자, 자신의 부인 목을 베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는 인륜도 저버릴 정도로 냉혹한 사람이 병사에게 이처럼 인의를 베푼 것은 자신의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쇼일 가능성이 높다는 혐의에서다.

조조가 머리카락을 잘라 셀프 처벌하다, 진심인가, 잔꾀인가
다음으로 쇼맨십 혐의에 오른 인물은 조조다. 중국 후한 말기의 정치인으로 수많은 일화가 존재한다. 쇼맨십의 궁극을 보여주는 것은 자신의 법령위반에 대한 셀프 처벌로 머리카락을 잘라 사죄하는 스토리다. 거듭된 전쟁으로 민심이 흉흉할 때 였다.

조조는 민생을 우선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밀을 밟으면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참수한다고 서슬이 퍼렇게 겁을 주었다. 한번은 행군을 하며 밀을 지날 때였다. 밭가운데서 갑자기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조조가 탄 말이 놀라서 날뛰다가 밀밭으로 뛰어들어 짓밟고 말았다.

조조는 이때 여러 가지 예외사항이나 특수사항을 들며 피하기보다 자신이 군에 명령을 내린 대로 벌하라고 한다. 그러자 곽가란 신하가 나서 만류하며 ‘머리칼로 목을 대신하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결국 조조는 칼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곤형(髡刑))을 스스로 치르는 민생 코스프레를 한다.

이후 군영에선 조조를 한층 존경하게 되고 규율이 바짝 섰다는 결말이다. 이 이야기의 출처는 <조만전曹瞞傳)>으로 조조의 나쁜 점을 부각시켜 집대성한 책이다. 조조의 잔꾀를 비판하려는 의도였을지 모르지만 조조가 민심을 늘 염두에 두는 리더였음을 역증명하는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당태종의 사형수 가석방후 전원 귀환, 신뢰인가, 밀약인가

중국 최고의 정치가 당태종

당태종은 ‘정관의 치’를 펼친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주’로 평가받는다. 훌륭한 정치를 편 것도 있지만 리더십 마케팅 전략을 적극 펼친 것도 한 몫을 했다.

형제들을 참살한 피를 뒤집어쓰며 옥좌에 앉은 당태종 이세민은 집권 초기, 관용과 인애의 이미지 구축이 절실했다. 이를 위해 실시한 이벤트가 사형수 390명 가석방령. 사형 판결을 받은 죄수 390명을 석방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1년 뒤 돌아와 형을 받도록 배려했는데, 황제의 은혜에 탄복해 정해진 기일 내에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돌아왔다. 너무 기쁜 나머지 이세민은 이들을 모두 사면했다는 내용이다.

당대의 시인 백거이는 ‘칠덕무(七德舞)’라는 시에서 당태종의 조치에 “원망하는 궁녀 삼 천 명을 궁궐에서 내보내고, 사형수 사백 명이 자진해서 옥으로 돌아왔다오.(怨女三千放出宮 死囚四百來歸獄)”라며 용비어천가류의 시를 써서 찬양했다.이같은 쇼쇼쇼에 딴지를 건 이는 북송의 정치가이자 문인인 구양수(1007~1072)였다.

그는 종수론<縱囚論. 죄수방면사건 논의>에서‘ " 태종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은덕을 베풀었다는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을 풀어주어 귀가시켰는데, 그들이 사면 받기를 원해 반드시 돌아올 것이므로 그들을 석방시켰는지, 죄수들이 석방 받아 집으로 돌아가서 스스로 돌아오면 반드시 사면해 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돌아왔는지, 우리가 어찌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이벤트의 의도를 대놓고 비판한다. 사면을 단지 리더의 셀프미담이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당신의 리더십을 마케팅하라
오기, 조조, 당태종의 쇼쇼쇼에 대해선 이상에 살펴본 것처럼 찬반양론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이 퍼포먼스를 통해 퍼포먼스(성과)를 낸 위대한 쇼맨이란 점은 부정하지 못한다. 이들 위대한 쇼맨은 강력한 이야기를 창조, 자신들의 리더십을 마케팅하고 구성원의 행복지수,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준다는 감성지수를 높였다.

오기는 병사들의 결전항쟁을 위해서 더러운 고름을 빨았고, 조조는 그당시 신체의 일부로 소중히 여기는 머리카락을 기꺼이 잘라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태종은 형제를 참살하고 왕좌에 올랐다는 ‘왕권의 오점’을 의식해 사형수 대 사면령은 물론, 쟁신 위징을 늘 곁에 두며 의식적으로 그의 직언을 늘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고자 애썼다.

강력한 이야기로 요즘말로 개념 있는 리더가 됐다. 바꿔 생각해보자. 이들이 진정성, 자기 정체성 운운하며 “고름은 더러우니 내 입으로 빨 수 없다”고 발뺌하거나 “내 잘못이 아니고,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바람에 놀란 말의 잘못”이라며 논리적 설명을 곧이곧대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역사에 남을 수 있었을까. 아마도 힘들었을 것이다. 본인이 불편하더라도 조금씩 이상적 롤 모델의 모습으로 나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쇼맨 리더십이다.

혹자는 진짜 쇼와 가짜 쇼를 감동이냐, 선동이냐로 구분했다. 진정한 쇼(show)통의 성과지표로 중요한 것은 선동과 감동을 넘어서 변화의 파동이다. 3류 쇼(show)통은 속보이는 선동을 하고, 2류 쇼(show)통은 즉석 감동에서 그친다. 반면에 1류 소통은 변화의 연속 파동을 일으킨다. 함께 변화에 참여하고 싶게끔 만든다.

허마니아 아이바라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교수는 “리더의 진정성을 자기의 감정을 모두 드러내 보이는 것이란 평면적 의미로 이해할 경우, 상황에 따른 카멜레온적 변화는 스스로에 대해 마치 사기꾼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는 가식적인 행동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이 편안하게 느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비로소 효과적인 리더십에 관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진정성과 투명한 자기정체성의 덫에 갇히면 속보이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상황과 역할, 이상적 롤모델에 부합하는 쇼를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동이 아니다. 혹시 당신은 진정성과 투명성 운운하며 과거의 당신 모습과 성정에만 가둔 채 정체돼있지 않은가.

리더십에는 자기 자신을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드러내 보이는 의미도 포함돼있다. 리더십은 본인의 의도가 아니라 상대의 인지(認知)에 의해 평가된다. 지금 당신의 스토리를 마케팅 해야 할 이유다. 당신의 리더십을 마케팅하기 위한 한 컷의 선명한 장면과 한방의 강력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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