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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LG화학, 불안한 SK이노…지켜보는 삼성SDI

LG화학, 美서 SK이노 ‘영업비밀 침해’ 제소
SK이노, 패소시 경영차질…막대한 배상금도 골치
삼성SDI, 경쟁사간 소송전에 ‘인력이탈’ 방어 효과

그래픽=강기영 기자

국내 배터리 업계간 신경전이 소송전으로 비화됐다. 국내 선두업체인 LG화학은 후발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로 활용되는 2차전지 영업비밀을 불법적으로 탈취했다며 이례적으로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국제소송을 제기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정경쟁을 해왔다며 법적 절차에 따라 소명한다는 입장이지만,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다. 최종판결에 따라 영업활동 제약이 불가피하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가능성이 존재한다.

제3자인 삼성SDI는 ‘손 안 대고 코 풀기’ 식으로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게 됐다. LG화학 뿐 아니라 삼성SDI의 경력직 이직도 많은데, 이번 소송이 내부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특히 경쟁사들이 전력을 낭비하는 동안, 안정적으로 사업을 전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칼 빼든 LG화학, 美서 소송 제기…증거개시절차 등 고려
LG화학은 지난달 30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이하 ICT)와 미국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제소했다. LG화학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의 셀, 팩, 샘플 등의 현지 수입의 전면 금지를 요청하는 한편, SK이노베이션 전지사업 미국법인 소재지인 델라웨어 지방법원에 영업비밀침해금치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신학철 LG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은 직접 입장을 표명하며 사안의 심각성을 더했다. 신 부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인 LG화학의 2차전지 사업은 1990년대 초반부터 3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과감한 투자와 집념으로 이뤄낸 결실”이라며 “이번 소송은 경쟁사의 부당 행위에 엄정하게 대처해 오랜 연구와 막대한 투자로 확보한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전지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힌 2017년을 기점으로 2차전지 관련 핵심기술이 다량 유출됐다고 주장하며 구체적인 증거 자료를 언론에 공개했다. SK이노베이션은 약 2년간 전지사업본부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갔다. 입사지원 서류에는 2차전지 양산 기술과 핵심 공정기술, 영업비밀을 비롯해 수행한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리더, 함께한 동료 실명 등을 기재하도록 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강경대응이 예고된 수순이라고 입을 모은다. LG화학은 이미 2017년 10월과 2019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SK이노베이션에 공문을 보내 영업정보 유출 가능성이 큰 인력에 대한 채용절차를 중단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는 경고도 했다.

LG화학이 국내가 아닌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것은 단순한 기술탈취 소송이 아니라 SK이노베이션의 향후 경영행보에 큰 제약을 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 ITC와 연방법원은 ‘증거개시절차’가 있는데, 정식 변론을 시작하기 전 소송 당사자가 정보나 제료를 제출·공개하는 법적 의무다. 증거 은폐가 어렵고 위반 시 소송결과에도 큰 영향을 주는 제재가 이어진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도 고려됐다. 가해자의 행위가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불법행위라고 판단될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많은 손해배상을 부과한다.

◆날벼락 맞은 SK이노베이션, 패소시 경영차질 불가피
SK이노베이션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회사 측은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해 불필요한 문제제기를 했다”면서 “투명한 공개채용 방식으로 경력직원을 채용하고 있고, 공정경쟁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LG화학에서 제기한 이슈들을 명확하게 파악해 필요한 법적 절차를 밟아 확실하게 소명하겠다”고 말했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신경전이 수면 위로 부상한 배경에는 폭스바겐이 있다. 전기차 사업을 집중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폭스바겐의 배터리 공급 물량을 따내기 위해 두 회사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노하우와 기술력이 보장된 LG화학이 유리할 것이란 업계 예상과 달리, SK이노베이션이 계약을 따내면서 LG화학의 심기를 크게 건드렸다는 분석이다. 독일 현지에서는 LG화학이 폭스바겐 측에 SK이노베이션과의 협력을 계속할 경우 전기차 배터리 납품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전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견제하기 위해 소송전을 시작했다는 분석에도 무게가 실린다. SK이노베이션은 국내 배터리 후발주자라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선수주, 후증설’ 전략을 취하며 성장세를 이어왔다. 신규 수주 물량을 우선 확보한 후 공장 증설을 단행하고, 전기차 생산시점에 맞춰 배터리를 공급하는 구조다. SK이노베이션의 수주잔액은 2016년 말 기준 4조원에서 올해 1분기 말 50조원 이상으로 12배 이상 대폭 확대됐다. LG화학은 같은 기간 34조원에서 11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두 회사간 격차는 2016년 8.5배에서 현재 2.2배로 크게 줄어들었다.

ITC가 5월 중 조사개시 결정을 내리면 내년 상반기에 예비판결, 하반기에 최종판결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한다면, 영업활동에는 막대한 차질이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미국 조지아주에 연간 9.8GWh(기가와트시) 규모의 배터리 공장 설립에 착수했는데, 2022년 초부터 본격적인 양산이 가능할 전망이다.

재판 결과에 따라 미국을 발판삼아 글로벌 전기차 시장으로 진출하려던 SK이노베이션의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 진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한국과 중국 등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미국으로 들여와 납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현지 수입이 막히면 전기차 배터리 공급 물량을 맞출 수 없다. 이 경우 수급 차질 문제는 최소 2년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천문학적 규모로 불어날 수 있는 배상금도 감안해야 한다. 미국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최대로 부과할 수 있는 금액에 대한 한도가 없어 배심원의 판단에 따라 정해진다. SK이노베이션의 인력탈취가 매우 악의적이었다는 판결이 내려진다면, 조단위의 배상금을 물어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삼성SDI, 손 안 대고 코 풀기…안정적 경영활동
국내 배터리업계 2위인 삼성SDI는 선두업체와 후발업체간 공방전에서 한 발 물러나있지만, 적지않은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부족한 경쟁력과 기술력을 상쇄하기 위해 고급인력 영입에 초점을 맞췄다. 2017년에는 당시 SK이노베이션 전체 배터리 사업부 인원의 3분의 1 수준인 100여명을 경력직으로 채용했다. 올해 2월에는 여전히 적자인 배터리사업부를 포함해 전 사업부에 월 기본급의 850%에 달하는 성과급을 지급했는데, 업계에서는 배터리 부문 경력직 유입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기업들도 일명 ‘돈다발 공세’를 퍼부으며 인력 빼가기에 안간힘을 썼다. 중국 최대 전기차 업체인 비야디(BYD)는 연봉 외에도 성과급, 연말보너스, 관용차 보조금, 자동차 구입 보조금, 1인용 숙소를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LG화학과 마찬가지로 삼성SDI 역시 배터리 부문 인력 이탈이 꾸준히 발생했다. 이를 막을 묘안이 없어 고심하던 찰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 덕분에 큰 힘 들이지 않고 내부 직원 단속이 가능하게 됐다.

최근에는 LG화학이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영업비밀 유출 우려, 양사 간 기술 역량의 격차 등을 모두 인정해 이례적으로 장기간에 해당하는 ‘2년 전직금지 결정’을 내린 것. LG화학 임직원 뿐 아니라 삼성SDI의 직원들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SDI는 경쟁사들이 소송전에 시간과 비용을 소모하는 동안, 안정적인 영업활동을 영위할 수 있다. 다만, 수혜의 기간은 길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중국 업체들이 추격할 수 있는 틈을 주는 것으로, 국내 업체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세정 기자 s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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