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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봉오동 전투’ 13일 만에 400만 돌파···역사적 의미는?

영화 ‘봉오동 전투’ 13일 만에 400만 돌파···역사적 의미는?

등록 2019.08.20 11:12

안민

  기자

영화 ‘봉오동 전투’ 13일 만에 400만 돌파···역사적 의미는?영화 ‘봉오동 전투’ 13일 만에 400만 돌파···역사적 의미는?

영화 ‘봉오동 전투’가 개봉한지 13일 만에 400만 관객을 모으면서 흥행 몰이를 하고 있는 가운데 실제 봉오동 전투의 역사적 내용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 7일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최진동, 안무 등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다.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 지역에서 독립군의 무장 항쟁이 활발해지자 일본은 1920년 5월부터 독자적인 독립군 토벌 작전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19년 8월 이후 활발히 국내 진공 작전을 펼치던 홍범도의 대한독립군은 북간도 지역 독립군의 통일과 연합에 나서 1920년 5월 28일 홍범도의 대한독립군, 안무의 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하여 대한북로독군부를 결성, 봉오동에 집결해 좀더 강력한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다.

1920년 6월 4일 대한신민단의 독립군 부대가 함경북도 종성군 강양동에 진입해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해 타격을 입혔다. 다음날 일본군 1개 소대 병력이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해오자, 대한북로독군부의 독립군은 삼둔자(三屯子)에서 일본군 추격대를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일본군은 이를 핑계로 함경북도 나남에 주둔하던 제19사단에 월강추격대대를 편성해 중국 영토를 침입, 직접 독립군의 근거지인 봉오동 공격에 나섰다. 홍범도가 이끈 독립군 연합 부대는 봉오동의 산지에 매복해 야스카와 지로 소좌가 이끈 일본군 추격대대를 삼면에서 포위하여 궤멸시켰다. 일본군은 수많은 병력이 사상을 당하는 피해를 입고 퇴각한다.

봉오동 전투는 중국 영토인 만주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로 역사는 전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독립군은 사기가 크게 높아졌으며 이는 1920년대에 독립전쟁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이날 오후 4시 18분 누적 관객 400만1580명을 기록했다.

영화는 개봉 4일 만에 100만, 5일 만에 200만, 9일 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으며 손익분기점(450만 명)까지는 불과 50만명을 남겨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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