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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온고지신 리더십]동굴을 터널로 바꿀 방법은?

새해가 또 밝았다. 작년 한해 당신은 어떠했는가. 대부분 평안하기보다는 어려운 기억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한 해를 정리하며 내가 떠올리는 한자는 다할 궁(窮)이다. 궁은 ‘다하다’와 ‘어렵다’, 두 가지를 모두 의미한다. 평안함이 다하면 어려워지기도 하고, 어려운 게 다하면 밝아지기도 한다는 생각에서 긍정적 희망과 위기에 대한 경계의 이중적 의미가 있다.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깝다’는 ‘희망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반면, 성공이 계속되면 위기가 닥칠 수 있으니 조심해 대비하란 뜻도 담겨있다.

글자 하나에 빛과 그림자가 함께 응축된 셈이다. 마치 MC에셔의 ‘박쥐와 천사’의 그림처럼 무엇을 보고자 하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천사가 먼저 보일 수도, 악마가 먼저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궁(窮)은 어둠과 밝음의 공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궁(窮)은 작은 동굴 혈(穴)+몸 신(身)+활 궁(弓)이 합쳐진 글자다. 동굴 속에 들어가 사람이 활처럼 몸을 둥글게 구부리고 있는 모습에서 비롯됐다. 어떤 사람들이 이처럼 좁은 동굴에 몸을 구부리고 숨겠습니까? 쫓기는 어려운 처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중국 후한시대 허신이 편찬한 한자사전 <설문해자>에선 窮을 동굴(穴) 끝까지 몸소(躬) 들어가 보는 것을 형상화했다고 풀이합니다.

동굴을 터널로 바꾸려면 그냥 구부리고 앉아있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출구를 찾으려면 직접 궁극의 극단까지 가보아야 한다. 어중간하게 중도에서 끝내지 말고 직접 끝까지 가야 동굴을 뚫고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터널>에서 주인공 하정우가 터널에서 필사의 노력으로 출구를 찾아 노력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한다.

K교수는 “흔히 동굴을 터널로 만들라고 말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며 “손톱이 빠지도록 힘들여 앞을 가로막는 흙을 파내고자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고 말한다. 중간에서 힘들다고 어설프게 그만두면 그저 곤궁한데 그치고,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얘기다.

‘티백은 여려 보이지만 뜨거운 물에 넣기 전에는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없다”는 서양격언이 있다. 강한 사람이 어려움을 견디지만, 어려움을 통해 강해지기도 한다. 역경이 경력을 만든다.

살다보면 착한 사람이 곤궁에 처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떵떵거리는 불합리함을 목격한다. 그런 억울함과 답답함은 예전에도 존재했다. 공자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궁(窮)으로 절묘하게 풀어낸다. 공자는 인의가 강처럼 흘러넘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대의명분 하에 14년 동안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집 떠나면 고생인데 14년이면 오죽하겠는가? 끼니도 못 이을 지경이고 일행 중엔 병들어 쓰러지는 사람도 속출했다.

참다못해 다혈질 제자 자로가 화를 내며 “군자가 왜 이렇게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까?”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데 무슨 세상 구원, 구제 하는 좌절감을 표출한 것이다. 공자는 이에 대해 군자고궁(‘君子固窮)이라 답한다. 여기서 ‘고궁(固窮)’의 해석은 다층적이다. 첫째는 고(固)를 진실로, 궁(窮)을 어려움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즉 “군자는 원래 어려운 법이다”라고 보는 해석이다.

세상이 늘 원리원칙대로 돌아가기만 하면 충신들이 왜 목숨을 잃고 죽어가는 일이 역사적으로 거듭됐겠느냐? 그러니 세속의 이익에 흔들리지 말고 본인의 가치를 지키라는 뜻이다. 둘째로는 ‘군자는 어려움을 지킨다’입니다. 내 뜻을 굽혀 세속의 편한 길을 따르느니 떳떳한 역경을 선택한다는 결연함이 담겨있죠. 요즘 유행하는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말과도 통한다. 셋째는 ‘역경에 더 단단해진다, 즉 더 강해진다’로 보는 것이다. 역경이 사람을 강하게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군자는 곤궁에 처해도 자기의 할 도리를 지키지만 소인은 곤궁하면 경계를 넘어 꼭 하지 않을 일까지도 한다고 덧붙인다. 사노라면 누구에게나 위기와 역경은 닥치게 마련이다. 곤궁할 때 좌절하지 않고 궁리하고 궁구해서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사람이 진정한 군자요, 리더다. 곤궁하다고 해서, 내 코가 석자라며 아무거나 다하려거나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은 소인이다.

그래서 동양의 용인술을 보면 “어려울 때도 (본분을 벗어나지 않고)할 도리를 지켰는가”를 보란 조항이 꼭 들어간다. 아무리 힘들어도 차마 못하는 것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역경에 KO당하는 것이 아니라 OK하는 것이 바로 역경, 군자고궁의 자세다.

군자는 어려울 때 진실로 강해진다. 궁, 동굴을 터널로 뻥 뚫리게 하는 힘은 끝까지 파고드는 힘, 견디는 힘에서 나온다. 궁즉통, 궁하면 통하게 돼있다. 올해는 환하게, 시원하게 뻥 뚫리는 한해가 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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