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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기 기자
등록 :
2020-01-19 19:45

수정 :
2020-01-2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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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별세]맨손으로 100조 신화 주인공, 그는 누구인가?

경남 울산서 5남 5녀 맏이로 출생
일본 건너가 소규모 식품 사업 시작
껌 사업 대박…100조 신화 이끌어
성실 신용 바탕 자수성가 기업가

그래픽=박혜수 기자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식민지시대에 일본 유학중 소규모 식품업으로 출발해 한일 양국에 걸쳐 식품․유통․관광․석유화학 분야의 대기업을 일궈낸 자수성가형 기업가다.

신 명예회장은 1922년 10월 4일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신 명예회장은 원래 기업가가 아닌 문학도의 꿈을 키웠다. 늘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작가가 되지 못하면 신문기자라도 되려고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문학을 전공해서는 먹고 살기 어렵다고 판단, 1942년 관부 연락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일본으로 간 신 명예회장은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우유배달 주문이 늘어나 배달시간을 못 맞추게 되자 자기가 직접 아르바이트를 고용까지 한 일화는 유명하다. 배달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해 아르바이트가 아르바이트를 고용한 것.

신 명예회장은 평소 이같은 자신의 성실성을 눈여겨 보아온 한 일본인 투자자의 출자금 6만엔을 받는 ‘행운’을 갖게 된다. 당시 직장인 평균 월급이 80~100엔이었으니, 이 금액은 20년 치의 연봉에 해당됐다.

신 명예회장은 이 자금으로 1944년 커팅 오일을 제조하는 공장을 세움으로써 기업 경영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신 명예회장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공장이 전소되는 시련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면서 진정한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그는 도쿄 시내에 직접 붓으로 쓴 ‘히까리(光) 특수화학연구소’ 간판을 내걸고, 선반용 기름으로 비누·포마드·크림 같은 유지 제품을 만들었다.

신 명예회장은 한 친구가 미군에게 얻은 추잉껌을 보여준 이후 껌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적은 자본으로 만들 수 있고, 초산비닐수지는 통제품이 아니다보니 원료를 구하기도 쉬웠다. 완벽주의자였던 신 명예회장은 스스로 껌을 제조할 수 있었지만, 약제사까지 고용을 해서 껌을 만들었다. 나중에 1개에 2엔에 팔리는 풍선껌이 인기를 모았다.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나자 과자점 주인들이 줄을 서서 살 정도였다. 껌의 포장 하나에도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이는 성품 탓에 신 명예회장의 ‘껌’은 대박이 났다.

이어 이를 발판으로 자본금 100만엔, 종업원 10명의 법인사업체 ‘롯데’가 탄생됐다. 롯데라는 이름은 신 명예회장이 고학생 시절 밤새워 읽었던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따왔다.

신 명예회장은 1961년 일본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일본전통과자)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한다. 초콜릿 산업은 과자 사업 중에서는 중공업이라고 일컬어진다. 제조방법이 까다롭다는 이유에서다. 신 명예회장은 유럽에서 최고의 기술자와 시설을 들여오면서 초콜릿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게 된다. 이외에도 캔디와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하며 롯데를 종합메이커로 부상시키는 기반을 다졌다.

롯데는 1959년 롯데상사, 1961년에 롯데부동산, 1967년에 롯데아도, 1968년에 롯데물산, 주식회사 훼밀리 등 상업 과 유통업으로 진출하면서 일본의 10대 재벌이 됐다.

일본에서 사업을 일으킨 신 명예회장의 꿈은 대한민국에 기여하는 기업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신 명예회장은 한·일 수교 이후 한국에 대한 투자의 길이 열리자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해 투자를 시작했다.

신격호는 한일정상회담 이후 약 50억 달러에 이르는 돈을 투자했다. 사업에서 번 돈은 모두 한국에 재투자했다. 한국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때도 신격호는 한국에 투자를 늘려갔다. 1978년에 양산에 비스킷 공장 을 준공하고, 1979년에 아이스크림 공산을 완성했고, 호텔롯데를 준공하고, 1980년에 롯데쇼핑(백화점)을 개장했다. 그리고 1980년에 롯데냉동(주)을 설립하고, 한국후지필름을 인수하고, 1982년에 롯데자이언츠와 광고대행업체인 대흥기획과 롯데물산을 출범시켰다.

마침내 1983년에 24개 계열사에 2만 명의 종업원을 둔 한국의 10대 재벌그룹에 진입했다. 그리고 그해 수익성 순위에서는 재계 4위를 기록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에 엔화의 가치가 2배로 올라서 1988년에 신 명예회장은 개인 재산 60~80억 달러로 ‘포브스’ 선정 세계 4위의 부자에 올랐다. 당시 신 명예회장은 ‘600만평의 사나이’로 불리기도 했다.

약 한 세기동안 한일 양국에서 맨손으로 대기업을 일군 신 명예회장은 2020년 1월 19일 오후 4시 30분경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99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최홍기 기자 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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