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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화(昇華) ㉞ 전정

[배철현의 테마 에세이] 승화(昇華) ㉞ 전정

등록 2020.03.06 09:49

수정 2020.03.06 15:33

 승화(昇華) ㉞ 전정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다. 대한민국을 구성하는 국민 한명 한명이 선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낸 후에 나비가 되듯이, 인간은 과거의 자신을 직시하고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마련한 고치에서 변신을 시도해야한다. 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서른네 번째 글의 주제는 ‘전정(剪定)’ 이다

전정 ; 내 삶의 ‘이기심 바이러스’ 를 쳐내자

봄은 겨울이 낳은 자식이다. 혹독한 겨울 없이 따스한 봄이 올 리가 없다. 지구가 50억년전에 원-화성proto-Mars과 부딪혀 23.5도 기울어졌다. 지구에서 떨어져나간 거대한 돌덩이가 한동안 우주 안에서 돌아다니다 중력이란 이상한 힘이 작동하여 달이 되어 지구 주위를 돌게 되어 우주 안에서 생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이 되었다. 지구는 다시 태양주위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돌고 있다. 행성이 우주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위 ‘모난 것’을 제거해야한다.

모난 것, 쓸데없는 것들은, 자기중심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求心力과 적당히 주위에 끌려 나가는 원심력遠心力의 오묘한 조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만일 지구가 이 두 가지 힘의 중용中庸을 찾지 못했다면, 지구는 이미 우주의 고아가 되어 먼지로 분해되었을 것이고 인류가 이룬 찬란한 문명과 문화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주의 구성원이 질서의 화신化身인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을 가능하면 완벽한 구체球體로 만들어야한다.

초봄 산책길은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논두렁 안에서 개구리가 수 천 개의 알을 부하하였다. 이들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엷은 점막으로 하나가 되어 이러 저리 흔들거리면서 결정적인 시간을 기다린다. 언젠가 올챙이와 개구리로 변신變身해서 논두렁을 시끄럽게 만들 것이다. 개울가로 눈을 돌리면, 더 신비한 우주가 펼쳐진다. 북한강 표면이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인위적인’ 운동으로 부드럽게 출렁인다.

그 안에 숫자로는 셀 수가 없는 가는 손가락만한 새끼 물고기들이 군무를 추고 있다. 울렁거리는 잔물결과 함께 봄의 도래를 노래한다. 그들은 자신들을 기다리는 고약한 낚시꾼들이나 새들의 공격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는다. 순간의 몰입이 허락하는 행복에 젖어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들이 우주 안에서 유영하듯이 노닌다. 행복幸福이란, 자신에게 허락된 이 무의미한 시간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놀이다.

‘행복’이란 영어 단어 ‘해피니스’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란 의미를 지닌 영어 동사 ‘해픈’happen에서 유래했다. 행복한 사람은 우연한 이 순간을 운명으로 여기고 최선을 경주하는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은,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그럭저럭 산다.

새끼 물고기는 앞으로 닥칠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두려움이 불행이다.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다. 두려움은 아픔과 고통을 배가시킨다. 우리는 실제보다 그것에 대한 상상으로 더 고통을 받는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고 심지어 공포상태로 진입시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과 생각이다. 우리가 해를 당할 것이라고 상상하는 순간, 그 폐해가 우리를 엄습하여 질식하기 시작한다.

새끼물고기는 생존을 위해 최상의 몸을 만들었다. 타원체楕圓體이다. 타원체는 지구거주자들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지구거주자들은 지구 중심을 향하는 중력을 거슬려 좌우로 움직이거나 혹은 위로 솟아오르기 위해 자신의 몸을 가장 효율적인 모습으로 진화하였다.

머리는 최소한으로 간소화하려 거의 사라지게 만들고 허리부분은 도톰하고 꼬리 부분은 다시 소멸시켰다. 이 매끄러운 동물엔 군더더기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보여준다. 사지는 거추장스러워 몸에 붙여버렸다. 물고기는 생각이 행동이고 행동이 생각이다. 언행일치를 수련하는 영물英物이다.

눈을 들어 들판을 보니, 겨울을 버텨낸 이 수많은 나무들도 모두 타원형楕圓形이다. 소나무, 전나무, 대추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내가 눈을 가져다 댄 모든 나무들은 무심하게 타원형이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을까? 자연이 그렇게 만들었다. 비, 바람, 그리고 눈은 나무가 옆으로 퍼지지 않도록 사시사철 매순간 가다듬는다.

만일 가지가 나무 기둥에서 너무 퍼져나가면, 그 가지는 땅에 떨어지기 마련이다. 비바람이 불어와 나무기둥과 가지의 이음새를 약화시키고 함박눈이 가지에 쌓여 결국 잘려나간다. 자연은 자신 안에 거주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에게 간단한 타원형의 삶을 요구한다.

내가 이곳 설악면으로 이사 온 후, 조그만 마당에 이런저런 꽃과 나무를 심었다. 마당 가운데 능수 벚나무와 목단牧丹을 심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목단이 피지 않더니, 4년 전부터 5월이면 사치스러운 목단이 마당에 품위를 준다. 그 사치를 너무 즐기지 말라고 이내 선혈의 색을 머금은 잎사귀를 하염없이 땅에 떨어뜨린다.

호사好事는 금방사라지는 것이 이치다. 나는 목단을 보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그냥 죽은 채 3년 있었다. 목단은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신이 온전한 꽃을 만들 때까지, 죽은 채한다. 자신이 발화하는데 필요한 충분한 자양분을 얻을 때까지 기다린다. 지난주부터 추위를 침묵으로 인내하던 목단이 거친 가지를 뚫고 머리를 내밀었다. 꽃이 피기 위해서는 석 달을 기다려야하지만, 새싹에서 화려한 목단이 필 것이다.

목단을 가만히 보니, 새싹을 내민 가지도 있고 그렇지 않는 가지도 있다. 하늘 높이 팔을 벌려 태양이 보내주는 햇빛과 북한강이 선물하는 안개를 머금고 자신이 만개할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 여기저기에서 이미 죽은 가지들이 보인다. 한 송이 목단을 피우기 위해서는 죽은 가지들을 과감하게 잘라 내야한다. 전정剪定이란 ‘가기치기’는 꽃을 피우기 위해 타원형을 유지하며, 선의의 경쟁競爭을 벌인 나뭇가지들에 대한 인간의 인위적인 심판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넘어서는 목표를 정해 그것을 실현하려는 치열한 삶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이런 삶의 형태를 그리스어로 ‘아곤’agōn, 즉 ‘경쟁競爭’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현재의 자신에서 탈출하여 숭고한 자신을 조각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정기적인 모임을 만들었다.

그것들 중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 비극경연과 올림픽 게임이다. ‘경쟁’은 그리스인들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스트레스이자 역경이다. 그들은 동료 시민들과의 선의 경쟁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초월하여 신적인 자신을 구축할 수 있다고 믿었다.

전정剪定이란 쓸데없는 가지들을 미리 잘라내는 용기다. 스토아 철학자들에게는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상하고 준비하는 마음’이다. 그들은 이 마음가짐을 라틴어로 ‘프리메디타치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 즉 ‘최악에 대한 예모(豫謀)’라고 부른다. 후기 스토아 철학자이자 제정 로마의 재상이었던 세네카는 자신이 여행을 기획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상한다. 폭풍우가 갑자기 불어 닥칠 수 있고 배가 파산될 수도 있다.

지혜로운 자에겐 예상 밖의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결국 원만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바라지 않고, 정기적으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잃을 것이라고 명상하는 습관이다. 어리석은 자는 최선을 막연히 기대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고 준비한다.

‘전정’이란 한자가 그런 의미를 품고 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하여,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미리(前) 자신만의 무기(刀)를 들고 쓸데없는 가치를 치는 용기다. 전정의 지혜는 내가 정한 구별된 장소(宀)에서 굳이 하지 않아도 행위를 하나의 원칙(一)으로 그치는(止) 안목이다. ‘전정’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프룬’proune도 신기하게 동일한 의미다. ‘미리(pre) 최상의 열매와 꽃을 피우기 위해, 모나지 않는 둥그런(round) 모습을 정리하다’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역경은 우리사회가, 아니 내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가를 측정하는 시험이다. 선진국은 선진적인 인간들의 자연스런 모임이다. 선진적인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전정하여, 자신이 목숨을 바쳐 이룰 수 있는 한 가지를 위해, 쓸데없는 것을 전정하는 사람이다. 우리 각자는 이 전염병이 물러날 때까지, 자신의 삶에 여기저기 퍼져있는 ‘이기심’이란 바이러스를 ‘전정’할 절호의 기회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오늘 무엇을 전정할까?’

<백작약> 미국 사진작가 카틴가 매슨<백작약> 미국 사진작가 카틴가 매슨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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