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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SK이노 합의해야 韓 배터리 산다”

‘제2의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경쟁 치열
SK이노베이션 미국 투자 ‘종잇조각’ 우려
중국·일본 치고 나가는데…합의 여론에 힘
“배터리 3사 협의 원했던 정부가 나설 시점”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벌인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두고 양사의 원만한 합의가 한국 배터리 업계 전체에 이득이라는 분석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성장을 거듭하는 가운데 양사 모두 전체적인 사업 규모를 키우는 것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특히 양사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배터리 시장 진출과 공장 투자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어 자칫 국내 ‘배터리 3사’가 ‘배터리 2사’로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배터리 3사를 모아 1000억원대 공동 투자 펀드까지 조성했던 정부가 중재를 위해 나서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투자 물거품 되나 = 양사의 ‘2차전지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담당하는 미국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22일 소송 관련 판결문 주요 내용을 공개했다. ITC는 지난달 SK이노베이션에 ‘조기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재차 명확하게 그 근거를 제시한 셈이다.

ITC는 130여쪽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침해 소송을 인지한 지난해 4월40일부터 증거보존의무를 지키지 않았으며 LG화학에 피해를 끼친 사실도 명백하다고 결론 내렸다.

이제 소송 절차는 ITC가 이번 조기 패소 판결을 토대로 오는 10월 5일 위원회를 열어 최종 결정을 진행하는 절차가 남았다. ITC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 25년간 영업비밀 소송이 제기된 경우 조기패소 결정이 전부 최종결정에서 유지됐다.

이와 별개로 SK이노베이션은 지난 3일 ‘예비결정에 대한 검토’를 ITC위원회에 신청했다. ITC위원회는 다음 달 17일까지 검토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이 경우에도 ITC위원회가 SK이노베이션의 검토 신청을 받아들이면 오는 10월 5일까지 최종 결정을 내린다.

변수는 있다. 미국 내 배터리 생산 공장 수를 늘리고 싶어 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SK이노베이션에 관대한 결론이 나길 바란다는 관측이 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ITC 소송 결과에 미국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이후 잡음과 실효성을 놓고 추가 갑론을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3월부터 미국 조지아주에 16억달러(1조9900억원)를 들여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LG화학과 합의하지 못한 채 ITC의 최종 결정이 나면 2022년부터 폴크스바겐 미국 공장에 배터리를 공급하려던 이 공장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될 상황이다.

이를 토대로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미국 내 ‘공익성’을 이의제기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조지아주에 세우고 있는 배터리 생산 공장 등이 무용지물 되면 고용 창출 효과와 추가 투자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 지난 2013년 삼성과 애플의 ‘3G 이동통신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ITC는 애플의 특허 침해를 인정하며 미국 내 수입 금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이렇게 되면 애플의 미국 내 공익성이 저해된다며 이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LG화학과 합의가 문제 해결 우선순위다.

◇전기차 시장서 韓 경쟁력 위해 합의해야 = 관련 업계에서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원만한 합의가 대승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한국의 글로벌 배터리 경쟁력에서도 이득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실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 결과에 따라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의 공급선이 달라질 수 있다”며 “국가 전체로 봤을 때 배터리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양사가 원만하게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말했다.

근거로는 전기차 배터리의 산업 특성과 초기 진입의 절대적 유리함이 꼽힌다.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는 한번 생산 라인이 형성되면 자동차 전장을 모두 교체하지 않는 한 바꾸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일찌감치 한국 배터리 기업의 초기 시장 진입이 희망으로 받아들여진 것도 시장 선점 효과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자칫 SK이노베이션이 미국 내에서 배터리 사업을 이어가지 못하면 양사를 포함해 삼성SDI까지 묶어 부르는 국내 ‘배터리 3사’가 ‘배터리 2사’로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배터리 3사 협력 주도했던 정부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정부의 전면 ‘재등판’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를 중심으로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요구다.

산자부는 지난해 11월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을 모아 1000억원대 자금을 조성하는 ‘차세대 배터리 펀드 결성과 공동 연구개발(R&D)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산자부 주관 아래 당시 이들 배터리 3사는 ▲차세대배터리 핵심기술 공동 R&D ▲소재·공정·장비 분야 기술개발 ▲핵심기술 활용 조기 상용화 등에 지원키로 했다. 차세대 먹거리로 불리는 배터리 사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이들 3사가 합심하자는 게 골자였다.

하지만 펀드 조성 이후 정부의 이렇다 할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이번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해외 소송전에서도 대승적 차원의 중재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2의 반도체’로 불리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규모는 지난해 530억달러(67조 6651억원)에서 2025년 1670억달러(213조 2089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2015년 1500억달러(191조 5050억원)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해 이 수준 이상으로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월 판매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파나소닉(일본)이 1위(점유율 27.6%)로 굳건한 가운데 LG화학이 2위(22.9%)를 차지했다.

이어 국내 업체 가운데 삼성SDI(4위·5.1%)와 SK이노베이션(7위·2.8%)이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나머지는 CATL(3위), AESC(5위), BYD(6위), Guoxuan(8위), EVE(10위) 등 중국 업체들이 차지했다. 일본 도요타와 파나소닉의 배터리 합작사인 PEVE(9위)도 이름을 올렸다. 이들 업체 모두 막대한 자금 투입으로 질적인 성장과 양적인 성장을 다각도로 도모하는 터라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대승적인 합의로 글로벌 확장세가 꺾이질 않길 바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후발주자로 불리는 SK이노베이션은 2005년 전기차 프로젝트를 발족했다. 최근 SK이노베이션은 현대자동차 그룹, 베이징자동차 그룹, 다임러 그룹, 폭스바겐 그룹 등 세계 유수 자동차 업체들과 공급 계약까지 배터리 사업을 확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비교적 후발 주자인 SK이노베이션이 최근 전기차 통계에서 글로벌 10위에 올랐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LG화학과 소송전에서 원만한 합의를 이루고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모두의 발전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임정혁 기자 d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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