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W리포트｜빅테크의 금융권 습격]금융사와 맞선 IT 공룡, 초유의 경쟁 시작됐다

네이버·카카오 등 ICT 대기업, 금융권 진출

자회사-금융사 협업으로 통장 상품 등 출시

전통 금융사, 고금리형 특별 상품으로 맞불

“그동안 금융권은 은행 간 경쟁, 은행과 증권의 경쟁, 증권과 보험의 경쟁처럼 금융업권 내 또는 금융업권 간의 영역 다툼이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은행과 ICT 기반 기업이 영역 다툼을 벌이는 새로운 구도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다.”

앞으로 금융권 안팎의 경쟁 구도를 전망한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11일 전한 말이다. 은 위원장의 말대로 금융권은 기존 전통 금융회사의 경쟁을 넘어 금융회사와 ICT 기술로 무장한 이른바 ‘빅테크’ 기업 간의 대결 양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 기존에 서로 경쟁했던 금융회사들은 빅테크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서로 협업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금융회사들이 빅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새롭게 발을 들이는 빅테크 기업의 등장으로 기존 금융 시장 구도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핀테크 산업을 금융권의 미래 먹거리로 규정하고 전방위적인 지원에 나서왔다. 그러나 대부분 회사의 규모나 자금력이 높은 기술 수준보다 취약한 핀테크 스타트업의 사례가 많았다.

다만 최근에 들어와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대형 IT 기업이 간편 결제 사업에 본격 뛰어들면서 이른바 ‘빅테크 기업의 습격’이 시작됐다.

빅테크 기업이 금융권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이른바 ‘네이버 통장’과 ‘카카오페이 통장’의 등장이었다.

네이버의 자회사인 네이버파이낸셜은 지난 8일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환매조건부채권(RP) 기반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상품 ‘네이버 통장’을 출시했다.

네이버 통장은 ‘연 3% 수익률’을 언급하며 소비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원금이 100만원 이내면 오는 8월 말까지 이용실적과 무관하게, 9월부터는 전월 10만원 이상 결제 시 연 3% 수익을 준다. 또 네이버페이 포인트 충전·결제 시 결제액의 3%는 포인트로 돌려준다.

같은 날 카카오의 자회사 카카오페이 역시 하나은행과의 협업을 통해 ‘하나 카카오페이 통장’을 출시하면서 금융권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나 카카오페이 통장은 카카오페이가 그동안 은행권과 꾸준히 진행해 온 협업 결과 중 하나로 우리은행, 농협은행, 기업은행 이후 네 번째 성과다. 입출금식 통장이지만 해당 통장을 카카오페이머니의 충전 계좌로 등록하면 이체와 인출 수수료를 면제해준다.

통장만 등장한 것이 아니다. 금융당국이 소액 선불결제 충전 한도 확대는 물론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도 허용할 방침을 밝히면서 사실상 빅테크 회사가 여신금융업에도 진출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금융당국은 올해 안에 현행 200만원인 소액 선불결제 충전 한도를 최대 500만원까지 확대하는 내용의 전자금융업법 개정을 추진키로 한데 이어 핀테크 업체를 대상으로 최대 100만원 한도 내에서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를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 가닥을 잡고 있다.

소액 후불결제 서비스가 허용되면 기존 카드사들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 금융 소비자들의 1인당 신용카드 평균 사용 금액이 60만원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용 편의성 측면에서 기존 카드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의 이같은 공격은 기존 금융회사들을 잔뜩 긴장하게 하고 있다. 기존의 약소한 핀테크 업체들과 달리 빅테크 기업은 이미 수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포털을 통해 마련한 고객층 또한 금융회사의 고객층과 맞먹거나 초월하기 때문에 상당한 무기가 된다.

이에 금융회사들도 다양한 방법으로 빅테크 회사들의 공격에 대응하고 있다. 대형 금융그룹은 그룹 내 자회사들의 역량을 총결집한 멤버십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그동안 경쟁 관계에 있었던 은행과 카드사,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의 협업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그룹 자회사들과의 제휴를 통해 멤버십 적금을 내놨다. 우선 신한은행을 통해 기본 1.2%의 금리를 제공하고 신한카드, 신한금융투자, 신한생명의 상품을 이용하면 포인트가 쌓인다. 이렇게 할 경우 최대 8.3%의 금리 효과를 볼 수 있게 된다.

SC제일은행은 삼성카드와 손잡고 연 1.6%의 금리와 5.4%의 캐시백을 제공해 총 7%의 금리 효과를 제공하는 정기 적금을 출시했고 우리은행도 현대카드와의 협업을 통해 5.7%의 금리 효과를 내는 적금 상품을 내놨다.

흥미로운 것은 빅테크 회사들의 공격에 맞대응하고자 내놓은 상품들의 성격이 대부분 적금 상품이라는 점이다. 이는 최근 저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은행 수신상품 이용 고객이 대거 이탈한 점을 고려해 이들을 은행권으로 다시 불러 모으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볼 수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저금리 기조 탓에 기존 영업 방식으로는 수익 극대화가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금융회사 간의 협업은 1000여만명의 거래 고객과 고도의 포털 서비스를 등에 업고 등장한 빅테크 업체의 공세에 맞서기 위한 전략”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