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 일요일

  • 서울 6℃

  • 인천 2℃

  • 백령 7℃

  • 춘천 2℃

  • 강릉 4℃

  • 청주 4℃

  • 수원 3℃

  • 안동 1℃

  • 울릉도 8℃

  • 독도 8℃

  • 대전 2℃

  • 전주 4℃

  • 광주 3℃

  • 목포 5℃

  • 여수 10℃

  • 대구 6℃

  • 울산 7℃

  • 창원 8℃

  • 부산 9℃

  • 제주 9℃

구시대적 규정·깐깐한 규제에 걸음마도 못 떼는 금융 혁신

[NW리포트|반쪽 마이데이터 사업]구시대적 규정·깐깐한 규제에 걸음마도 못 떼는 금융 혁신

등록 2020.11.23 07:01

수정 2020.11.23 09:03

정백현

  기자

공유

하나금융 계열사 등 6개社 예비허가 심사 보류‘국정농단 연루설’ 수사 3년 넘게 檢 배당도 안돼혁신 개념 모호하던 시절에 만든 규정으로 심사사업 연관 없는데도 ‘대주주 위법행위’ 덮어씌워금융권 “진짜 금융 혁신 원한다면 새 규정 필요”

그래픽=금융감독원 제공그래픽=금융감독원 제공

각 금융회사에 흩어진 개인의 신용정보를 하나로 모아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혁신적 금융 사업 모델 ‘본인신용정보관리업(이하 마이데이터)’이 시작부터 크게 엇나가고 있다.

금융 소비자들의 이용 편익 제고를 위한 혁신 사업이라 하지만 심히 엄격한 규정 탓에 걸음마부터 나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고객 정보 안전장치 마련을 위한 규제라면 이해할 수 있겠으나 과거에 만들어진 기존 법 규정에 따라 너무나 깐깐한 심사를 진행하다 보니 혁신의 진척이 더뎌지고 있다. 21세기의 혁신 아이템을 20세기의 낡은 법으로 심사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셈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8일 진행한 정례회의를 통해서 경남은행, 삼성카드, 하나금융투자, 하나은행, 하나카드, 핀크 등 6개 금융회사가 신청한 마이데이터 허가 심사를 보류하기로 의결했다.

금융위는 “허가 신청 금융회사의 대주주가 형사소송이나 제재절차 등에 연관된 사실이 확인돼 소송 등의 절차가 종료될 때까지 기간을 심사기간(60일)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고 심사 보류 배경을 밝혔다.

이는 신용정보업감독규정 제5조 제6항 제3호에 따른 결정이다. 해당 조항에는 ‘관련 소송이나 당국의 조사·검사 내용이 승인심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정될 경우’에 한해서 심사를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지난 10월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신청을 받았다. 신청 결과 앞서 심사가 보류된 6개 금융회사 외에 신한은행, 신한카드, 미래에셋대우 등 대형 금융회사들과 네이버파이낸셜, 카카오페이, 토스 등 핀테크 기업들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초 금융당국은 오는 12월에 예비허가 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내년 1월에 본허가 심사 결과를 발표한 뒤 내년부터 이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겠다는 계획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형 금융회사들의 심사가 뒤틀리면서 제대로 된 혁신 성과를 꾀하기 어려운 상황에 다다랐다.

6개 금융회사가 마이데이터 예비허가 심사를 받지 못하게 된 것은 모두 신청회사의 대주주가 재판 절차를 밟고 있거나 고발을 당했거나 금융당국의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금융당국이 언급한 규정에는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이나 제재 심사가 승인심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볼 경우에만 심사 보류를 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번에 보류 판단을 받은 금융회사들이 연루된 여러 사건이 과연 마이데이터 사업 허가와 얼마나 개연성이 있는지는 상당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6개 금융회사 중 하나은행, 하나금융투자, 하나카드는 하나금융그룹의 관계사다. 여기에 핀크는 과거 하나금융지주와 SK텔레콤이 합작해서 설립한 핀테크 기업이다. 결국 하나금융그룹이 이번 마이데이터 허가 보류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하나금융이 심사 보류를 당한 이유는 지난 2017년부터 지속 중인 대주주 관련 사건 때문이다. 당시 참여연대 등 일부 시민단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하나금융 일부 경영진이 연관돼 은행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런데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검찰이 사건 배당조차 하지 않고 있다. 사건 배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은 검찰이 언제부터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그 수사를 끝낼 것인지 계획조차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사건 때문에 하나금융은 이미 하나금융투자의 하나UBS자산운용 지분 인수에도 실패했고 이번에 마이데이터 허가마저도 발목이 잡혔다. 대주주와 연관된 사건이라고 하지만 경영진의 위법 의혹이 마이데이터 사업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경남은행의 허가에도 제동이 걸렸는데 이 사건은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의 주가 시세조종 혐의 관련 재판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성 전 회장은 BNK금융을 떠났고 경남은행과의 직접적 관계도 사실상 없다. 더구나 해당 사건은 마이데이터 사업과 더더욱 연관이 없다.

결국 이 문제는 허가 보류의 배경이 된 감독규정 때문이라는 해석을 하게 된다. 2020년대의 금융 혁신을 언급하면서도 감독규정은 2016년에 마지막으로 개정된 규정을 사용하고 있다. 마이데이터 사업이라는 개념조차도 없던 시절에 만들어진 규정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 안팎에서는 마이데이터 사업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감독규정을 별도로 새로 만들거나 현재의 규정을 제반 환경에 맞게 바꿔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해당 산업과 무관한 대주주의 잘못을 자회사 신사업 심사에 연달아 적용하는 ‘연좌제식 자격 심사’보다 개인신용정보를 다루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개인정보 관련 법률 위반 사건에 대해서만 심사 보류 기준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율 혁신을 꾀하려는 정책임에도 당국의 허가 절차를 반드시 받아야 하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허가제로 해당 사업 권한을 주기보다 신고제로 사업 권한을 나눠준 뒤 당국이 깐깐하게 감독하는 것이 오히려 산업 생태계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이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수준 높은 금융 혁신을 위해 당국이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은 매번 공염불에 그치고 말았다”면서 “혁신의 의지가 있다면 업계의 애로사항을 적극 청취하고 환경에 맞게끔 행정 규정을 바꾸며 넓은 시각으로 정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d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