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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이사회 의장에 재벌 총수가 사라졌다

삼성전자·현대차·대한항공 등 변화 추세
총수와 이사회 의장 분리하는 기업 증가
이사회 전문성·독립성·투명성 강화 기조
“총수일가 이사회 빠져도 영향력 유지” 시각도

삼성전자가 박재완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는 등 3월 주총을 앞두고 주요 기업 이사회 운영에 변화 바람이 불고 있다. 현대차와 한진 등은 내달 주총에서 이사회 의장에 새 인물을 선임할 예정이다.

국내 대기업 이사회 명단에 총수 이름이 사라지고 있다. 이사회 전문성과 독립성 강화 차원에서 전문경영인 또는 외부 전문가를 앉히는 사례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올 3월 주요 상장사 ‘주총데이’를 앞두고 이사회 의장직 변화 폭은 클 전망이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다음달 주총을 거쳐 이사회 의장을 새로 선출하거나 확정하는 주요 기업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한진, GS 등 여러 곳이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4일 이사회를 열어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사외이사를 새 의장으로 선임했다. 이상훈 전 의장의 법정 구속 여파로 경영 투명성 문제를 정면돌파한다는 의미에서 외부 인사를 의장으로 첫 추대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3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기로 했기 때문에 의장직을 사외이사가 맡는 게 가능하다. 삼성전자는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에 더 박차를 가하는 차원”이라고 공식입장을 냈다.

이사회 의장 변화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은 현대차그룹이다. 현대차는 정몽구 회장이 등기임원은 물론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기로 해 내달 19일 양재동 본사에서 열리는 주총에서 새 인물을 선임한다.

재계에선 이미 ‘정의선 체제’로 변화가 상당히 진행 중인 현대차의 경우 정 수석부회장이 아닌 이원희 대표이사 사장, 혹은 사외이사 중에서 이사회 의장이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SK 등 재계 1~2위 그룹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각각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도록 이사회 규정을 개정하며 변화를 준 터라 현대차도 그런 변화 흐름에 보조를 맞출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수석부회장은 만 49세로 젊은 총수여서 아직 이사회 의장을 맡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는 데다, 전문경영인이 맡는 구도가 외부에서 볼 때 모양새가 좋다고 판단한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사회 소집 권한 등의 측면에서 보면 총수가 의장을 맡으면 기업 입장에선 효율적”이라면서도 “경영권 승계 문제나 (계열사) 상장을 앞둔 기업 등은 오너 리스크가 있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총수들이 보수(연봉) 등의 개인 정보가 공개되고 여러 책임이 강조되면서 의도적으로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많다”며 “영향력은 그대로 행사하면서 이사회 책임을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에 오너 입장에서 나쁜 패는 아닌 것”이라고 했다.

한진그룹은 올해 초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는 규정을 없앴다. 대한항공과 지주사인 한진칼은 내달 주총을 거쳐 총수가 맡아왔던 이사회 의장에 새 인물을 선임할 예정이다. 현재는 고 조양호 회장 이후 회장직을 물려받은 아들 조원태 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한진칼 관계자는 “주주연합 측은 주주제안을 냈으나 주총 관련 이사회가 안 열려 이사 선임 안건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면서 “기존 사외이사에서 할 수도 있고, 새로 선출되는 이사 중에 대표이사가 아닌 인물이 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사회 의장은 이사회에 상정할 안건을 결정하고 이사회를 소집해 회의를 주재하는 권한을 갖는다. 이사들 간 의견 다툼이 생기면 조정자 역할도 수행한다.

이사회 의장을 대표이사가 겸직하는 회사는 많지만 SK그룹 등 이사회 규정 개정을 통해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맡지 않아도 되도록 이사회 운영방침을 바꾼 곳도 많아졌다.

SK하이닉스는 이석희 대표이사 사장이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지만 이사회 의장은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김준 사장이 아닌 국회의원을 지낸 김종훈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상당수 기업이 이사회 지배구조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변화를 주고 있다”면서 “장자승계 원칙이 강한 LG, GS 등 몇몇 그룹만 빼면 10대그룹에선 총수 일가가 이사회 의장을 맡는 기업은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LG그룹은 경영권을 승계받은 구광모 회장이 LG 지주사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LG전자 등 일부 계열사 이사회 의장은 권영수(부회장) 기타비상무이사가 맡고 있으며 대표이사는 겸직하지 않고 있다.

GS그룹은 작년 말 취임한 허태수 회장이 내달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이지만 이사회 의장은 누가 될지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효성은 2018년 3월 주총에서 조현준 회장이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고 사외이사인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로 교체했다. 시장과 주주 중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경영상 판단이란 게 당시 효성측 입장이었다.

김정훈 기자 lenn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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