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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출신, 대전 대표 향토기업을 일구다

[신흥 주식부자/박희원 라이온켐텍 대표]‘흙수저’ 출신, 대전 대표 향토기업을 일구다

등록 2018.04.06 10:40

수정 2018.05.15 14:32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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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부터 생계 책임진 소년가장25살에 회사 설립 '맨땅에 헤딩'국내최초 폴리에틸렌 왁스 개발합성왁스 국내1위·60개국 수출박 대표 가족 지분가치 1천억대

‘흙수저’ 출신, 대전 대표 향토기업을 일구다 기사의 사진

현재 대전의 대표 향토기업이자 합성왁스 국내 시장 점유율 1위인 라이온켐텍의 박희원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지독하게 가난과 싸웠던 '흙수저' 출신이다. 초등학교 시절인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자, 6남매를 책임지게 위해 이 때부터 산업현장에서 일해야 했던 박 대표는 25살 젊은 열정과 패기를 앞세워 맨주먹으로 회사를 세웠다.

올해로 45년째를 맞이한 라이온켐텍은 현재 합성왁스 60여 개국에 수출하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이에 박 대표도 현재 800억원대의 코스닥 주식 부호가 됐으며 그의 가족들 주식 수까지 합하면 무려 1000억원이 넘는다.

박 대표는 1949년 4월생으로 대전 갱이마을(지금의 동구 가양동)에서 6남매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인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자 6남매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산업현장에서 일해야 했다. 즉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 전부터 이미 직업전선에 뛰어든 박 대표는 막노동은 물론 문구점 점원 등에서 일하며 가난과 지독하게 싸웠다. 20대 초반 문구점 점원 시절 지역 관공서를 비롯해 조폐공사, 전매청, 교육청 등을 출입하면서 인맥을 넓혔고, 사업에 눈도 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박 대표는 학업을 결코 게을리하지 않았다. 14살 때 서울로 상경에 고시학원에 다니면서 공부도 열심히 했던 그는 충남대학교 경영대학원까지 졸업하게 됐다.

박 대표가 라이온켐텍의 주력 분야인 ‘합성 왁스’라는 화학에 도전한 건 우연한 기회에서 발생했다. 24살에 지역 교육청 공무원의 소개로 화학공장에 200만원을 투자했다가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이때부터 오기가 생겨 화학에 관련한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는 것.

또 울며겨자먹기로 당시 직원(인부) 5명과 공장을 인수받았는데, 이 회사가 라이온켐텍의 전신인 새한화학공업사다. 그는 이렇게 1973년 라이온켐텍과 본격적으로 연을 맺게 됐고, 1982년 현재의 사명으로 변경했다. 또 이 해에 국내 최초로 폴리에틸렌 왁스를 화학연구소와 공동으로 개발했는데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 개발에 성공한 것.

현재 라이온켐텍은 인조대리석과 합성왁스를 제조하는 기업으로, 인조대리석은 국내 3위의 시장점유율, 합성왁스는 국내 1위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60여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화학분야의 대표적인 중소기업으로 지난해 매출액 1313억원, 2013년 11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또 라이온켐텍을 유망한 글로벌 화학 중견기업으로 발전시켰다. 삼성, LG, 한화 등 대기업들이 주를 이루는 화학분야를 중소기업이 한다는 건 당시에도 무모한 도전이었기에 박 대표는 국내보단 해외사업에 더 집중 공략했다.

설립 초부터 경쟁상대를 글로벌 선진기업으로 삼았던 박 대표는 그들과 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글로벌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성장하고 있다. 덕분에 전체 매출의 60%가 수출에서 이뤄지고 계속 물량이 증가하고 있어 국내시장보다 세계시장에서 더 인정받는 기업이 됐다. 현재 러시아에서 시장점유율 1위, 미국·유럽·인도는 3위에 오르는 등 세계 곳곳에서 값진 성과를 내고 있다.

큰 위기도 있었다. 지난 2001년부터 주력제품인 인조대리석을 생산하기 시작한 라이온켐텍은 그러나 2005년까지 생산제품이 판매되지 않아 3~4년 적자를 보기도 했다. 당시 직원이 80여명에 이르렀으나 급여도 제때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경영난을 겪어야 했다. 그러면서 회사 부채비율은 무려 2700%까지 늘었고, 그동안의 수익도 다 소진됐다. 기업은 자금난에 시달렸고, 박 회장에겐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을 맞이했다.

이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인조대리석 전시회가 기업 재기의 발판이 된 것이다. 해외 바이어들이 라이온켐텍의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회사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2005년 이후 우수한 제품이 미국, 유럽 등 해외에 알려지면서 인조대리석의 해외 수출로 이어졌고, 덩달아 매출도 급신장하게 됐다.

2014년 1월 2일 라이온켐텍 본사가 위치한 메인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또한번 위기가 닥치는 듯 했으나, 이는 곧 기회로 바뀌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단 회사 피해 규모는 다행히 크지 않았다.

당시 증설을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던 회사는 다행히 신설비가 본사에 도착하기 전이어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어 한 달 만에 복구가 가능했다. 또 그동안 고객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거래처 자재를 직접 구입해 공급하고, 비싸게 구입한 차액을 보상해주는 등 고객의 불편과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대책을 실시한 덕분에 고객 이탈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또 당시 화재 동영상이 보도되면서 ‘라이온켐텍’이 1973년부터 업을 지속해온 규모가 있는 중소기업이라는 게 국내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박 대표의 담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는 국내외 시장을 향해 오는 2020년 매출 3500억원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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