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패션왕’ 출연 전까지 철저하게 ‘천송이 동생’으로 불렸다.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깜짝 등장한 모델 안재현은 어느덧 배우로 불리게 됐다. 그리고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에 출연해 차승원 이승기 고아라 등 브라운관의 당대 톱스타와 함께 했다. 불과 1년 만에 그는 꿈같은 일을 겪었다. ‘행운아’ 그냥 그는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아니 누가 봐도 그러지 않는가.
“그렇게 보이세요? 하하하. 사실 저 배우에 대한 생각은 눈꼽만큼도 안했던 사람이에요. 정말 입에 발린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랬어요. 운이 좋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배우 생각이 없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하지만 누구나 쉽게 하는 말처럼 거저 주는 걸 받아먹고 이 자리까지 오지는 절대 안았어요. 나름 모델 생활에 만족하고 진짜 열심히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열심히 하는 모습을 감독님들이 잘 뵈주신 것 같아요.”
모델 생활 도중 우연히 ‘택배맨’으로 깜짝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그 모습을 ‘패션왕’의 오기환 감독이 기억하고 있었다고. 사실 안재현은 ‘패션왕’에 오디션조차 안보고 합류했다. 이제 겨우 필모그래피라고 해봤자 한 손에 꼽을 정도인 생짜 신인이 말이다. 안재현은 오 감독과의 첫 만남을 전하면서도 황당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면서 멍한 표정이었다.
“‘별에서 온 그대’ 촬영 끝나고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제가 하고 말고가 아니었어요. 우선 감독님을 만나 뵙고 인사를 드려야 예의일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리고 찾아뵈었죠. 제작사 1층에 도착했는데 글쎄 직원분들이랑 삼겹살 회식을 하고 계시더라구요. 제가 넙죽 인사를 드리니 반갑게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악수를 청하셔서 얼떨결에 ‘네! 네?’ 이랬죠. 그게 다에요. 하하하.”
오 감독은 당시 안재현에게 ‘별 그대’를 통해 볼 건 다 봤다고 전했단다. 그냥 “이제 잘 만들어 봅시다”라며 그의 감을 믿었다고. ‘별그대’ 출연은 더욱 황당했다. 장태유 감독이 안재현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그에게 연락을 해 ‘오디션 한 번 봅시다’라고 제안을 했단다. 감독이 출연작 하나 없던 모델에게 말이다. ‘너포위’에선 이정선 작가에게 “작품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며 스스로 출연 분량을 줄여 달라고 했다고.
“사실 연기 욕심은 ‘너포위’ 끝날 때부터 생기기 시작했어요. 배우는 정말 생각도 안했었죠. 그냥 절 좋게 보신 분들이 ‘택배맨’ 기억을 많이 해주셨고, 제가 ‘별그대’에 나오자 ‘연기하는구나’란 생각을 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한 연기가 차츰 재미가 있어지고, ‘너포위’ 때는 제 또래 친구들이 정말 잘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열심히 하면 저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란 막연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어요.”
욕심이 생기면서 눈에 들어온 첫 작품이 바로 ‘패션왕’이다. 우선 ‘패션’이 전면에 등장한다. 패션모델로 데뷔한 안재현에게는 안성맞춤 작품이다. 더욱이 극중 배역이 패션계 최고 영향력을 지닌 고교생 김원호다. 분위기도 차갑고 시크한 모습이 그대로다. 그냥 김원호는 안재현을 보고 만들어 낸 인물 같았다.
“사실 모델 출신이라 좀 편하겠단 생각으로 덤빈 것도 있기는 해요(웃음). 그런데 정말 해볼 수록 느끼는 게 모델은 모델이고 연기는 연기에요. 정말 다르더라구요. 하하하. 특히 TV와 영화는 또 틀렸죠. 이번 작품을 통해서도 정말 많이 배웠죠. 그래도 참 많이 좋아해 주시니 기분은 좋아요. 김원호하고 저하고 많이 닮았데요. 근데 제가 그렇게 못됐나요? 하하하.”
영화 속 김원호는 정말 못된 고교생이다. 정말 못돼서 안재현도 인터뷰 도중 연신 ‘어쩜 그렇게 못됐죠’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자신이 연기한 배역에게 화를 내는 이 배우, 정말 순수한 것인지 아니면 착한 것인지. 그렇게 보면 그 착한 성격만 빼면 김원호는 안재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학창시절부터 일찍 패션에 눈을 떴고 그렇게 모델을 길을 빨리 선택했다.
“‘패션왕’ 보시고 제가 학창 시절에 그랬을 것이라고 보시는 분들도 있더라구요. 깜짝 놀랐어요. 정말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전 그냥 아주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죠. 단지 다른 친구들하고 틀린 부분이 있었다면 직업에 대한 고민이 진짜 빨랐어요. ‘빨리 이 직업을 해야겠다’란 선택이 아주 일찍이었어요. 그리고 그 쪽으로만 바라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인기요? 에이 진짜 완전 꽝이었어요. 2AM 임슬옹이 고교 동창인데, 인기가 그 친구가 짱이었죠.”
그는 잠시 고교 시절에 잠겨 있었다. 학창 시절의 안재현은 정말 평범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다. 안재현은 줄곧 평범함을 외쳤지만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고전문학에 심취한 예쁘장한 남자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안재현은 세련되고 멋들어진 어휘를 구사했다. 연습이 아닌 외운게 아닌 그냥 입에 붙어있던 구절들이다.
“하하하. 이게 어떻게 된거냐 하면 이런거죠. 제 친구들 중에 학벌 좋은 친구들이 진짜 많아요. 전 친구들 가운데 진짜 무식한 캐릭터에요(웃음). 그래서 친구들과 보폭을 좀 맞춰볼까란 생각에 책을 선택했고, 고전문학에 눈을 돌렸죠. 그게 결국에는 취미 생활로 이어졌고, 모델 생활을 하면서는 어른들이 많이 만나게 되요. 진짜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올해 남은 일정은 영화나 드라마 등 연기적인 스케줄이 아닌 패션관련 사업에 집중돼 있다. 내년 1월 정도까지는 오롯이 사업에 집중될 것 같다고. 잠깐 사업이라고? 안재현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쥬얼리 관련 사업을 꾸려가고 있다. 잠실에 있는 대형 백화점에 입점도 돼 있다고 한다. 강남의 한 백화점에도 안재현의 쥬얼 리가 입점돼 있다.
“앞으로는 좀 찌질한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냥 먹고 노는 한량 같은. 좀 모자란 동네 형도 좋고. ‘안재현도 저런 역을 할 수 있구나’란 말을 듣고 싶어요. 아니 사실 제 성격이라면 그런 역할이 오히려 더 제격이거든요. 하하하.”
그렇게 오랜 시간 더 안재현과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다. 인터뷰 시간이 다될 쯤 그는 멋들어진 명언 한 마디로 선물을 대신했다. ‘하루는 길지만 1년은 짧다’
안재현의 지금까지 시간이 그랬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달려왔다. 그렇게 살다보니 1년 그리고 2년이 금방 지나왔다. 이제 겨우 28세 청년의 삶에서 작은 거인이 보이는 것 같다. 그는 이제 막 다윗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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