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30일 개봉한 ‘역린’은 개봉 2주가 넘는 시점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질주했다. 손익분기점도 간단하게 넘겼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혹평에 시달렸다. 지난 14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현빈을 만났다. 우선 그는 혹평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전했다.
“일종의 배신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중들은 정조에 대한 얘기로, 현빈이 주인공인 영화로 알고 오셨던 거죠. 당연히 전 그게 아닌 것을 알고 촬영을 했구요. 뜻하지 않은 참사가 일어나 당연히 크게 홍보를 할 수도 없었죠. 그건 당연하죠. 하지만 기꺼이 돈을 내고 극장을 찾으신 분들한테는 좀 죄송한 마음도 들어요. ‘우리 영화는 이렇다’라고 사전 정보라도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그래요. ‘역린’은 이런거니 이렇게 봐야 한다. 좀 그렇잖아요. 보시는 관점에 따라 달리 봐주신거죠.”
아쉬움이 컸을 현빈이지만 2년 동안의 군생활 후 첫 작품을 택한 그에게 현장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마치 어린시절 놀러간 ‘놀이공원’ 같았단다. 연기의 소중함을 알게 된 후 몸으로 접한 현장은 설레임의 연속이었다. 연인과의 첫 만남 기억이랄까. 현빈은 “공백기가 길었기에 초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랄까”라며 “정말 ‘삼순이’ ‘시크릿 가든’ ‘만추’ 때와는 전혀 다른 기분이었다”고 웃었다. 더욱이 인간 정조에 대한 매력이 그를 잡아끌었다고.
“우선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얘기가 재미있으니 제가 맡을 정조에 대한 궁금증도 더 생겼구요. 예전에는 정말 관심없었죠. 정조에 대한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도 있고 책도 있었는데 부끄럽게도 단 한 편도 보지 못하고 읽지 못했어요. ‘역린’을 통해 궁금증이 생기니 공부도 많이 했죠. ‘역린’ 출연 결정 뒤 팬들이 정말 많은 책도 보내주고 자료도 찾아주고, 도움 많이 받았죠.”
그렇게 현빈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정조는 사실 대중들이 알고 있는 기억 속의 ‘왕’과는 완벽히 다른 캐릭터가 됐다. 근엄한 표정을 지은 채 가만히 앉아 있는 왕이 아니다. 개봉 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화난 등근육’의 소유자가 ‘정조’이며, 살수(조정석)와 칼을 나눌 정도의 무술 실력까지 지녔다. 영화 속에선 신궁에 가까운 활쏘기 실력도 뽐낸다. 더욱이 정조는 실존인물이다. 배우로서 표현할 연기의 폭을 좁혀 버릴 수밖에 없다.
“사실 제일 고민이 실존인물이란 점이었죠. 내가 하는 게 맞나, 아니면 이렇게 했다가 어떤 논란에 휩싸일 수 있을까. 진짜 고민되고 조심스러웠어요. 특히 그 ‘화난 등근육’(웃음). 저도 이해가 되지는 않았죠. 왕이 밤에 상의를 벗고 근육을 키울 정도로 운동을 한다고? 우리가 알고 있는 왕이 아니잖아요. 이미 밝힌 대로 시나리오에는 딱 세 줄 ‘운동을 한다, 세밀한 등근육’이라고 써있고, 감독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죠. 결국에는 실제로 암살 위협을 많이 받았고, 그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실제 정조께서도 그런 운동을 하지 않았을까란 상상력을 더해봤죠. 역사에도 정조께선 문무를 겸비한 왕이라고 나오고.”
그렇게 탄생된 현빈의 정조는 기존 사극 속 정조와는 다른 톤의 인물로 재창조됐다. 부드러움과 카리스마 그리고 내제된 폭발력을 모두 담고 있는 듯 했다. 대사 역시 기존의 사극과는 좀 달랐다. 보이스 톤을 조절해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사극이란 정형화된 장르의 특성상 이를 이질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중들도 많았던 게 사실이다.
“그런 부분이 당연히 있었죠. 우선 이재규 감독님이 기존의 사극톤을 원하지 않으셨어요. 그냥 현대극이라고 생각하고 연기를 하라고 주문하셨죠. 대사를 전달하는 목소리 톤도 좀 틀리죠? ‘역린’이 배경적으로 정조가 즉위 후 1년이 지난 시점이에요. 말 그대로 ‘초짜 왕’이죠. 충분히 어느 면에서 어설퍼 보여야 맞다고 생각하신 것 같고, 저도 동의했죠. 하지만 그 안에서 ‘정조’의 분명한 ‘역린’, 즉 왕의 노여움은 담고 있어야 했어요. 군주로서의 자존심이랄까.”
결과론적으로만 보자면 ‘역린’은 현빈에겐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다. 현재 쏟아지는 혹평의 대부분이 ‘현빈이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란 아이러니한 얘기가 대다수다. 현빈의 연기력이 문제가 아니지만, 또 영화의 손익분기에 대한 이유도 아니지만, 혹평에 대한 책임론이 전가 될 수도 있다. 현빈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웃었다.
“그냥 군대를 다녀 온 뒤 좀 자세가 달랐던 것 같아요. 달라졌죠. 그 전까지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 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해보자란 생각이 앞서요. 너무 날 ‘내가 만든 기준 안에 가뒀구나’ 란 생각이 든거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연기를 즐거움이 아닌 일로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그런 그의 생각은 해병대를 통해 많이 바뀌게 됐단다. 해병대 입대는 그가 20대부터 그려온 인생의 계획 가운데 하나였다. 만약 일반 군대를 다녀왔다면 어땠을까. 그는 “지금과는 정말 많이 내가 달랐을 것이다”며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해병대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해병대 입대를 통해 인생의 계획 하나를 실천한 그는 앞으로 다가올 인생의 또 다른 계획으로 결혼을 꼽았다. 당연히 아직은 솔로란다.
“결혼에 대한 로망이 아주 커요. 일찍 가정을 꾸려서 아빠가 된 친구들이 많아요. 그 친구들이 절 많이 부러워하는데 전 그 친구들이 너무 부러워요. 그 친구들을 보면 결혼하고 아빠가 되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가 많이 바뀐 걸 보게 되요. 저 역시 빨리 그렇게 되고 싶어요. 행복한 가정,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이 노는 모습, 저도 빨리 그렇게 되고 싶은데, 우선 연애부터 해야겠죠.(웃음)”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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