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야’는 지난 25일 폐막한 제67회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 아깝게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현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프랑스 출국 전 만난 배두나는 오랜만의 칸 레드카펫 행사에 들뜬 모습이었다. 칸 출국 하루 전 만난 배두나다.
“전 지금도 레드카펫에만 서면 이상하게 들뜨고 기분이 좋아요. 특히 칸은 ‘괴물’(2006) ‘공기인형’(2009)에 이어 세 번째인데도 지금도 떨려요. 뭐랄까. 칸은 우선 기자분들도 드레스 코드가 있잖아요. 그곳에 서면 제가 존중을 받는 느낌이 들어요. 그냥 배우들을 어떤 예술가로서 대접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우쭐해져요. 하하하.”
이번 ‘도희야’를 통해 다시 칸에 서게 된 그는 전혀 기대도 안했단다. ‘도희야’에 대한 작품성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워낙 작은 영화였고, 동갑내기 정주리 감독과 송새벽 그리고 어린 동생인 김새론 등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고. 그의 말에 따르면 딱 학교 졸업작품 준비 같았다. 데뷔 후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고.
“매년 수천 편의 영화가 칸 영화제에 출품된대요. ‘도희야’는 워낙 작은 영화고, 또 감독인 정(주리) 감독이 데뷔 신인이고. 그런데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청됐다니 경사잖아요. 대박이죠. 촬영이 6주 동안 진행됐는데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너무 힘들었거든요. 현장도 열악하고. 마지막 촬영날은 32시간을 연속으로 진행됐어요. 진짜 대박이었어요. 눈물 날 뻔 했다니깐요. 힘들어서.(웃음)”
그의 볼멘소리가 이어졌지만 모두 즐거운 기억에 대한 기분 좋은 대화였다. 힘들다고 하지만 행복한 고통이었고, 눈물을 얘기하지만 헤어지기 아쉬움에 대한 은유였다. 배두나는 ‘도희야’를 직접 선택했다. 데뷔 후 지금까지 스스로 선택을 결정한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유독 해외 거장들의 선택을 많이 받는 입장에서 ‘도희야’는 배두나에게 특별할 수 밖에 없다.
“당시 미국에서 영화를 찍고 있었어요. 그때 ‘도희야’ 시나리오를 전달 받고 읽었는데 되게 묘했어요. 뭐랄까. 문체 자체가 우선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여백이 많은 느낌도 너무 좋았고. 그래서 읽으면서 캐릭터에 대한 상상, 장면에 대한 느낌들을 머릿속으로 막 그렸어요. 이걸 쓴 작가가 진짜 고단수라는 생각을 했어요. 누굴까 정말 궁금했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도희’와 ‘영남’의 외로움에 공감했나봐요. 그때 나도 외로웠나.(웃음)”
결국 배두나는 ‘도희야’ 속에서 숨을 쉬어 보기로 결정을 했다. 시나리오를 읽은 지 대략 딱 5분여 만이라고 했다. 개런티도 포기했다. 그는 오롯이 ‘도희야’ 안에 자신을 던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우선 외향적인 자신의 성격과는 반대로 영남은 어둡고 내성적인 인물이다. ‘영남’안에 ‘배두나’를 넣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고.
“영남이가 너무 답답해서 정말 순간적으로 확 내지른적도 있어요. 너무 답답한거에요. 아니 오죽 답답한 게 무슨 소주를 페트병에 담아서 주변 사람이 모르게 먹고. 어휴. 거기에 도희는 영남에게 집착을 하고. 영화 속에서 도희가 영남에 대한 집착으로 자해를 하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 장면에선 저도 모르게 폭발해서 울기도 했어요. 경찰서에서 조사 받을 때는 정말 너무 감정을 눌러서 목소리가 안나오기도 했어요. 솔직히 감정적으로 배우에겐 너무 힘든 영화였어요.”
배우라면 감정을 내뿜고 삼키고를 유연하게 대처하는 캐릭터가 숨을 쉬기에도 유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도희야’ 속 영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누르는 모습만 보인다. 그래서인지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단다. 배두나는 “이렇게 힘들고 답답한 인물은 살다가 처음이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함께 호흡한 김새론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었다. ‘도희야’에서 보여 준 괴물같은 연기력에 김새론에 대한 극찬은 국내를 넘어 칸에서도 쏟아졌다. 이미 김새론 역시 칸 레드카펫을 밟아 본 경험이 있는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다. 이제 겨우 14세인데 말이다.
“사실 새론이가 이 영화를 한 번 거절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전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구요. 주변 인물인 영남을 연기한 저도 짊어질 짐이 너무 많았는데, 그 얘기의 중심에 선 새론이는 오죽했겠어요. 참 안쓰러웠죠. 뭐 하지만 현장에선 그냥 보호 받을 소중한 존재였어요.(웃음) 이창동 감독님이나 제작사인 나우필름 이준동 대표님에게 새론이는 그냥 딸이었어요. 어떤 장면에서도 새론이가 나오는 부분은 그냥 새론이를 위해서 모든 게 세팅이 됐으니까요. 당연한거잖아요.(웃음)”
그는 유독 해외 거장들의 러브콜을 많이 받는 국내 배우로도 유명하다. 국내 개봉을 앞둔 ‘주피터 어센딩’ 촬영을 얼마 전 끝냈다. 이미 ‘클라우드 아틀라스’로 워쇼스키 남매 감독의 ‘뮤즈’가 됐다.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가장 사랑하는 배우가 배두나인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실이다. 봉준호 감독의 여러 영화에서 배두나가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선 참 복이 많은 배두나다.
“너무 부끄럽죠. 난 솔직히 별거 아닌 배우인데. 그런 천재 감독님들이 날 좋아해주시다니 말로 어떻게 표현을 해요. 글쎄요. 그냥 그 분들이 선택을 해주신게 내가 더 좋은 길로 가라고 길잡이를 해주시는 것 같아요. 다른 생각 안하고 그냥 전 작품으로 모든 것을 즐기고 행복하고 싶어요. 그런 모습을 세계적인 거장 분들이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일상의 배두나와 배우 배두나의 차이를 확실하게 구분짓는 게 제 장기인 것 같아요. 그게 내게 뜻하지 않은 보너스를 가져다 주나봐요.(웃음)”
인터뷰 내내 유독 웃음이 많았던 배두나다. 바로 다음 날 프랑스 칸으로 갈 생각에 들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들떠 있었다. 그리고 칸에서 배두나는 지금껏 스캔들의 대상으로만 여겨진 영국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 짐 스터케스와의 교제를 인정했다. “남자친구다”란 단 한 마디로 전 세계 언론을 깜짝 놀라게 했다.
배두나, 영화 ‘도희야’로 깜짝 놀라게 한 그녀의 솔직함이 칸에선 털털함으로 보였을까. 이 배우, 어찌됐든 매력적인 것만은 사실이다. 이미 세계적인 거장들이 인정하고 있지 않나.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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