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전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김윤진은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최근 언론시사회에서 눈물을 쏟을 정도로 힘들었고 영화 스토리에 빠져 살던 감정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김윤진의 당시 모습은 ‘국제시장’ 갖는 시대적 아픔의 공감대가 배우 자신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 느끼고 싶었다. 김윤진 역시 그런 질문에 공감했다.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오셨어요. 영화에서도 덕수(황정민)가 그러잖아요. 이런 시대를 우리 자식들이 살지 않은 게 정말 다행이라고. 저도 어릴 적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진짜 고생 많았거든요. 진짜 말도 못할 고생이었죠. 하지만 제 고생은 고생도 아니었어요. 그런 우리를 키우시려고 부모님들은 더 했으면 더 했지 덜하시는 않았죠.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던 것 같아요.”
김윤진은 어릴 적 미국에서 한 고생담을 털어 놓으며 한 동안 추억에 잠겼다. ‘엘리트’ ‘할리우드 스타’ ‘도시적 이미지’ 등 그에게서 떠올릴 법한 수식어와는 멀어도 너무 먼 경험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런 김윤진에게 ‘국제시장’의 영자를 맡긴 윤제균 감독의 심미안이 탁월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국제시장’을 본 뒤 김윤진이 바로 영자란 생각마저 들었으니.
“아마도 그러셨을 거에요. 저도 처음에는 되게 이상했죠. 시나리오를 읽고 ‘이걸 왜?’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냥 나랑은 너무 안어울렸어요. 대가족의 며느리? 누군가의 첫 사랑? 에이 하하하. 오히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다른 유명한 여배우분이 떠올랐으니까요. 그런데 한 편으론 너무 감사도 했어요. 나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구나. 주시는 구나. 글쎄요. 어릴 적 미국 이민을 가서 고생했던 그런 내 속사정을 감독님이 알고 전해 주신 것 같아요.”
◆ 10세 때 미국 이민···“실제 영자처럼 죽도록 고생”
10세 때 미국으로 이민 간 김윤진은 부모님을 도와 장사를 시작했다. 영어를 잘 못하시는 엄마를 도와 휴관한 경마장에 플리마켓(벼룩시장)이 열리면 텐트를 치고 물건을 팔았다. 어려움도 많았고 눈물도 많이 흘렸다. 그런 경험 담 속에서 독일로 떠난 간호사 영자의 모습이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배우가 아니라 국제시장의 영자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욱 놀라웠다. 할리우드가 주목하는 배우다. 그런 배우가 분량도 많지 않은 남자 주인공 영화의 서브로 출연을 하다니. 배우 본인으로서도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 한데.
“전 정말 진심이에요. 작품 안에서 분량은 정말 중요하지 않아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작품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면 지나가는 역할 한 장면, 단 1초만 나와도 김윤진이란 배우가 필요한 것 아닐까요. ‘국제시장’에서도 사실 제 분량은 지금보다 좀 더 있었어요. 독일 남자와의 관계도 좀 있었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러면 덕수에 대한 영자의 진정성이 떨어질 것 같았죠. 제가 빼자고 말씀드렸어요. 이산가족 분량에서도 감독님이 절 넣자고 하시는 데 그것도 아니라고 봤죠. 오히려 감독님이 되게 미안해 하셨어요. 하지만 전 그게 아니라고 봤죠.”
그의 노력이 이렇게 빛을 낸 ‘국제시장’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고 유지하려 노력해지만 결코 그 노력이 쉽지만은 않았다. 20대부터 70대까지의 시간을 관통하는 폭의 넓이도 너무 거대했다. 더욱이 영어는 원어민 수준 이상이었지만 독일어 연기는 엄청난 고충이 따랐다고. 사실 쉽게 봤는데 막상 닥친 상황은 만만치 않았단다.
“제가 언어는 좀 된다는 생각했거든요(웃음).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 정도는 조금 흉내라도 낼 수 있었어요. 그런데 독일어는 이게 완전히 틀리더라구요. 진짜 어려웠어요. 발음 자체가 완전히 달랐어요. 독일어 선생님한테 녹음한 걸 받아서 듣고 또 듣고. 어유. 잠자다 벌떡 일어나서도 말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또 했죠. 제가 징크스가 있는게, 전 항상 첫 테이크에 모든 걸 집중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첫 번째에 잘 가자 주의죠. 다른 배우들은 할수록 더 좋아진다는 데 전 아직도 연기력 부족인가봐요. 하하하.”
그의 겸손은 ‘월드스타’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란 말을 그대로 따르는 스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현장 얘기를 할 때는 워낙 밝은 성격을 더욱 밝게 하는 기운을 냈다. 환하게 웃는 김윤진의 모습이 배우가 천직이란 말을 증명하는 듯 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딱 아쉬운 점은 특수분장 분량이었다고 한다. 뭔가 뒷얘기가 있는 듯했다.
◆ 할머니 특수 분장 뒷얘기···“안 어울리는 사람 있다더라”
“사실 정말 놀랐어요. 언론시사회에서 처음 영화를 보는 데 깜짝 놀랐죠. 너무 어색하게 보여서요. 그게 스웨덴 특수분장팀이 직접 와서 했는데 4시간 동안 한 분장이에요. 정민 선배는 통 가발을 쓰는 분장인데 저는 얼굴에만 붙이는 거에요. 뭔가 차이가 좀 있었는지 영화 보는 데 너무 이상하더라구요. 현장에서도 좀 그런 말이 나왔어요. 그런데 분장팀이 ‘노인 분장이 어울리는 배우가 있고, 저처럼 진짜 안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사실 좀 속상하기는 해요.”
또 다른 알려지지 않은 얘기 중 하나가 김윤진이 캐스팅에 힘을 보탰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 속에서 덕수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막순’의 성인 배역 캐스팅에 한 표를 던졌다. 알려지지 않은 연극배우를 캐스팅 원칙으로 삼았다. 물론 아역의 막순과 이미지 싱크로율로 참고했다.
“정말 많은 분들이 막순 역할에 오디션을 보셨는데 그 중에 몇 명으로 압축됐어요. 그런데 닥 두 분으로 나뉘었죠. 다른 스태프 모두가 지지하는 분 그리고 감독님과 조감독님이 지지하는 분. 그래서 감독님이 저한테 여쭤 보시더라구요. 두 분 사진을 보여주시는데. 전 누가 스태프가 지지하고 누가 감독님-조감독님이 지지하는 분인지 몰랐죠. 그런데 제가 고른 분이 감독님-조감독님이 지지하는 분이더라구요. 제가 한 분을 선택하니깐 ‘역시 윤진씨야’ 이러시는데 얼마나 웃었는지. 하하하.”
‘국제시장’에 참여한 배우들 모두 차기작이 정해진 상태다. 다들 워낙 잘나가는 배우들이라 내년 상반기 혹은 내년 후반까지 촬영 스케줄이 모두 꽉찬 상태다. 김윤진은 “나만 백수다”고 웃는다. 아니 김윤진은 조만간 미국 드라마 ‘미스트리스 시즌3’ 촬영에 들어간다. 무려 5개월간의 촬영이다. 하지만 싱글벙글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지내게 됐단다.
“캐나다가 그렇게 좋대요. 너무 기대되요. 물론 일하는 거라 힘은 들죠. 그런데 이런 복이 어디있어요. 전 일하러가서 자연과 함께 힐링하고 좋은 분들도 작업하고. 하하하. 너무 제 자랑만 했나요. 죄송해요. 그래도 웃음이 자꾸 나는 데 어떻게요(웃음). 우선은 ‘국제시장’ 정말 좋은 영화이니깐 많이들 봐주세요.”
인터뷰가 끝나고서도 한 참을 얘기꽃을 피웠다. ‘국제시장’에서 김윤진이 맡은 배역 이름이 영자다. 그리고 그의 실제 어머니 이름이 은자란다. 조만간 어머니와 함께 ‘국제시장’을 다시 보기로 했단다. 영자와 은자의 ‘국제시장’이 좀 특별할 듯하다.
김재범 기자 cine517@
뉴스웨이 김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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