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슬머리에 주근깨, 홍조 띈 볼, 뽀글거리는 파마머리···
미니시리즈 드라마 속 여자주인공이 이런 모습을 하고 등장한다면 시청자는 외면할까. 결과는 달랐다. 시청자들은 평범하고 비루한 여자주인공에게 열광했고, 감정을 이입했다.
배우 황정음은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극본 조성희, 연출 정대윤)에서 킹카에서 주근깨 파마머리 ‘역대급 폭탄녀’ 김혜진으로 변신했다.
극 중 김혜진은 다 늘어난 티셔츠에 검은 바지, 하얀 양말에 검정 구두를 매치한 4차원 패션으로 등장한다. 이를 본 동료는 팝가수 마이클잭슨이 떠오른다하여 잭슨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김혜진은 거침없는 언행을 선보인다. 과거 킹카로 살다가 자라면서 역변한 외모로 인해 다소 위축되고 눈치를 보며 살아가지만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한다.
마음씨가 참 곱다. 버스에 무거운 짐을 들고 승차하는 노인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이나, 부당한 상황에서 차별을 당하고 있을지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책임지고 묵묵히 하는 모습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엿보게 한다.
김혜진은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만일 김혜진을 황정음이 연기하지 않았다면? 이러한 물음은 가혹하다. 발에 꼭 맞는 신발처럼 캐릭터와 일체한 황정음이기에 다른 배우가 연기하는 김혜진은 상상 불가다.
황정음은 ‘그녀는 예뻤다’ 방송에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작품을 통해 리즈(전성기)를 갱신하고 싶다”라며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어떻게 하면 대본 속 인물을 잘 표현할지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고 남다른 각오를 전했다.
그의 바람처럼 황정음은 쉽지 않은 배역을 ‘황정음스럽게’ 잘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 속 김혜진을 보고 있노라면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정음이 역으로 분한 황정음이 떠오른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집필한 조성희 작가와 조우여서 더욱 비슷한 느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황정음표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고유의 색(色)이라 표현하는 게 맞겠다.
◆ 아이돌에서 배우로, 차근차근 쌓아온 필모그라피
황정음은 2002년 걸그룹 슈가의 멤버로 데뷔, 연예계에 가수로 데뷔했다. 이후 2004년 연기자로 활동하기 위해 그룹에서 탈퇴, ‘루루공주’(2005), ‘사랑하는 사람아’(2007), ‘리틀맘 스캔들’(2008), ‘에덴의 동쪽’(2009) 등 다수의 드라마를 통해 얼굴을 비췄으나 주목받지는 못했다.
황정음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알린 것은 뜻밖에 예능프로그램이었다. 2009년 가상결혼 버라이어티 예능프로그램인 MBC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 황정음은 가식 없이 솔직하고 재기 발랄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유쾌하고 진솔한 모습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후 황정음은 MBC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 주연을 꿰찼다. 사랑스럽고 쾌활한 모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으며, 아이돌-비호감 이미지를 말끔히 벗어던졌다. ‘떡실신녀’, ‘황정남’, ‘띠드버거’ 등 유행어를 양산하며 폭 넓은 연령대의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2010년 강남을 개발하는 과정 속에서 얽힌 인간의 욕망과 경쟁을 그린 SBS 대하드라마 ‘자이언트’에서 주인공 이강모(이범수 분)의 여동상이자 스타로 성장하는 이미주 역으로 첫 정극에 도전했다. ‘자이언트’는 4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공을 거두었고, 긴 호흡 대하드라마를 통해 황정음은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시트콤과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황정음의 연기는 아직 설익은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연기력 논란’이 불거졌고, 연기력 논란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황정음은 변신을 겁내지 않았다. 비록 무리수라 지탄받을지라도 과감하게 배역을 선택했다.
◆ 연기력 논란 꼬리표, 정공법으로 벗었다
터닝포인트는 2011년에는 MBC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봉우리 역으로 분하면서 부터라 할 수 있다. 황정음은 화재사고로 엄마를 잃고 친아버지도 아닌 바보 아빠와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집 나간 오빠를 찾는 기구한 삶을 살지만,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봉우리를 잘 표현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통해 황정음은 논란의 꼬리표를 완벽히 뗐고, 이 때부터 ‘믿고 보는 황정음’이라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2013년 KBS 드라마 ‘비밀’에서 사랑에 배신당한 강유정으로 분했다. 흔들리는 내면의 아픔을 진정성있게 표현했다는 평을 이끌었고, 오열하며 가슴을 쥐어 뜯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큰 존재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쟁쟁한 경쟁작을 물리치고 시청률 20%대를 돌파하며 선방했고, 그 해 KBS연기대상 최우수연기상을 거머쥐었다.
당시 배우 지성과 호흡을 맞췄는데, 마니아층이 형성될 정도로 둘의 호흡이 좋았다. 지성과 황정음은 2015년 MBC 드라마 ‘킬미 힐미’를 통해 조우했다.
‘킬미 힐미’는 지극히 황정음스러운 코믹 멜로가 한층 돋보인 드라마였다. 지성과 다시 호흡을 맞추며 명불허전 코믹 케미(케미스트리, 화학작용)를 발하며 마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했다.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킬미 힐미’를 통해 황정음은 다시 한 번 존재감을 입증했다.
◆ 2015년은 로코퀸 황정음의 해
황정음은 ‘킬미 힐미’의 여세를 몰아 2015년 하반기 ‘그녀는 예뻤다’로 돌아왔다. ‘비밀’ 이후 3년 만에 컴백이지만 황정음스러운 로코는 통한다는 공식을 다시 썼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은 망가지고 깨지고 웃긴다. 그 모습은 무척이나 황정음스럽고도 황정음이 가장 잘하는 연기일 터. 그런 모습에 시청자는 열광하고 있다.
황정음은 똑똑하다.
시청자가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 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연기를 할 때 가장 자연스럽고 예쁘게 표현되는지도 인지하고 있다. 황정음은 “망가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 그게 내가 사는 길”이라고 했다.
‘지붕뚫고 하이킥’에서 호흡을 맞춘바 있는 조성희 작가 역시 황정음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은 ‘지붕뚫고 하이킥’을 떠올리게 하는 코믹한 모습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이는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
드라마 제목인 ‘그녀는 예뻤다’처럼 망가짐도 불사하는 극 중 황정음은 예뻤다.
일각에서는 조심스레 연말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황정음의 수상을 예상하는 상황. 그 정도로 황정음은 2015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황정음의 도전은 이제부터다.
안방극장과 스크린을 통해 황정음이 보여줄 변신과 도전에 주목해보자. [사진=MBC, KBS2]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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