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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매너리즘 유혹, 늘 경계해야죠”

[인터뷰] 정진영 “매너리즘 유혹, 늘 경계해야죠”

등록 2016.03.29 06:00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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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 공존하는 배역에 끌려
매너리즘은 경계해야 할 숙제

정진영/사진=최신혜 기자정진영/사진=최신혜 기자


정진영은 향기를 지닌 배우다.

무서운 얼굴로 욕망을 번뜩이거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로 옷을 갈아입는 정진영은 다양한 배역을 자유자재로 오간다. 감정을 느끼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정진영이기에 스릴러, 가족극 혹은 스크린, 브라운관 할 것 없이 다양한 장르와 영역을 넘나들며 활약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할배 파탈’로 변신했다. 프랑스 어 옴므파탈(homme fatal)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이성을 유혹해 파멸에 이르게 할 정도로 강렬한 사람을 뜻하는 말로, 할아버지를 친근하게 이르는 할배와 합친 말이다.

고백하건데 2015년 10월 진행된 ‘화려한 유혹’ 제작발표회 당시, 최강희와 36세 나이차를 극복하고 사랑을 이루며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적잖게 놀랐다. ‘혹시 막장인가’라는 우려도 들었다. 이를 다독인 것은 정진영이라는 배우에 대한 믿음이었다. 설마 정진영이 막장 전개가 빤한 작품에 출연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은 기우였다. 그는 선과 악이 공존하는 강석현을 호연으로 이끌며 극의 중심을 탄탄하게 잡았고, 한은수(최강희 분)를 향한 멜로도 애틋한 감정에 집중하며 할배파탈이라는 신조어를 탄생할 만큼 관심을 모았다. 강석현은 배우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배역이었지만, 정진영은 68세 할아버지의 사랑을 오롯이 연기를 통해 시청자를 설득시켰다.

정진영은 이 지점에 대해 짚어내자 고개를 끄덕였다. 드라마 촬영을 준비하며 느낀 숙제였다고 고백했다.

“처음에 강석현이 한 여인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도 하고 치매에 걸려 죽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걱정됐죠. 멜로에 심지어 결혼까지 이르는 과정이 가능할까, 나이차이도 많고 결혼 당시에 남편을 죽었다고 오해하는 설정을 시청자들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반신반의 했습니다.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 있게 연기해야겠다. 그게 제 과제였죠. 배우는 해내야합니다. 사실 멜로가 있다고 말했지만 별로 믿지 않았습니다.(웃음) 쉬운 일은 아니였지요.”

◆ 멜로, 시청자 설득이 숙제

대본을 받고 가장 걱정한 지점은 최강희와의 멜로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놓치는 과정이 없도록 정진영은 대본을 꼼꼼하게 분석했다. 둘의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강석현에 대한 분석이었다. 또 옛 애인 청미(윤해영 분)에 대한 전사 분석도 중요했다.

“청미에서 은수로 전이되는 감정 상태가 촘촘했죠. 그래서 은수라는 여인을 제 마음 속에 각인시키는 과정이 힘들지 않았어요. 연기하면서 은수 자체를 느꼈습니다. 최강희를 촬영 기간 내내 사랑했던 거 같아요. 은수 자체로 보였거든요. 초반에는 건조한 사랑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 달달한 장면이 나와서 낯설기도 했죠. 감정의 낙차가 큰 모습이었어요. 이 과정이 인물에 깊이를 더하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정진영 “매너리즘 유혹, 늘 경계해야죠” 기사의 사진


극중 강석현과 신은수처럼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랑이 가능할까. 정진영에 물으니 어려운 질문이라 고개를 저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둘의 감정을 누구보다 깊게 분석했을 그였기에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랑은 가능할 거 같지만 결혼은 모르겠어요. 결혼은 현실이죠. 사랑은 남녀노소, 성별과 무관하게 할 수 있어요. 미혼 후배들에게 늘 하는 말이지만 결혼을 전재로 사랑하지 말라고 하죠. 그런 상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놓치게 된다고요.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발견, 존재에 대한 놀라움과 인정, 그게 다 아우르는 것이죠. 강석현에게 은수는 그런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가지고 있는 아픔과 성적인 사랑을 비롯해 연민도 있을 것이고요. 복합적인 감정을 은수에게 느끼지 않았을까요.”

◆ 선악 오가며 탁월한 심리묘사

정진영은 선과 악의 내면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활약했다. '할배파탈'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다양한 얼굴로 극에 녹아들며 재미를 안겼다. 선과 악의 감정 대립을 소구하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화려한 유혹’을 해야겠다 결심한 이유가 선,악이 공존해서였죠. 연기하기 좋아하는 유형이 바로 이런 인물입니다. 깊이 파고들 여지가 많죠. 저지른 죄를 들여다보면 강석현은 분명 악역이죠.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는 사람. 그 지점이 재미있겠다고 느꼈어요. 강석현의 화두는 부끄러움 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악행에 대해 진심으로 부끄러워하고 사죄하는 모습이 강석현에 동정의 여지를 준게 아닐까요.”

정진영은 강석현의 악한 모습에 집중하면서도 부끄러워했던 내면에 집중했다. 그러면서도 인물을 바라보는 객관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강석현은 비자금을 조성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자식을 통해 발휘하려는 잘못된 세계관을 지닌 살인마이에요. 세상에는 나쁜 인간들이 있지만 부끄러움을 느끼고 반성하느냐가 삶에 가치에 대한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이라는게 도덕적 잣대로 재단되지는 않지만 이 사람을 변화하고 싶었다는 생각은 없었죠.”

 정진영 “매너리즘 유혹, 늘 경계해야죠” 기사의 사진


정진영은 영화 ‘왕의 남자’(2005), 드라마 ‘브레인’(2011) 등 다수의 작품에서 선과 악의 영역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했다. 깊은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찰이 수반되는 배역들이었다. ‘화려한 유혹’ 속 강석현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매력적인 역할을 하게 된 건 배우로서는 운이 좋은거죠. 맡겨 주시는게 감사해요. 이러한 배역은 저 또한 좋아하는 연기이고요. 처음 ‘화려한 유혹’ 제안이 들어왔을 때는 평범한 악역이라고 치부했죠. 이후에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매료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 속에 놓인 통속적 소재이지만 제작진이 다르게 그리겠다고 하셨지요.”

제작진의 말처럼 ‘화려한 유혹’은 통속적 소재와 복수라는 단순한 구조를 제 나름대로의 색으로 매력있게 표현했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특색 있는 연출은 ‘화려한 유혹’만의 색이 되었고, 매력을 얻기 충분했다. 이에 힘입어 드라마는 지난 3월 22일 시청률 13.1%로 막을 내렸다. 이처럼 인기를 얻은 비결로 정진영은 단순하지 않은 인물들의 매력을 꼽았다.

“‘화려한 유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도 선하지만 악하죠. 흔히 악인이나 선인으로 분류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굉장히 유니크하죠. 유니크함은 작품의 포부이기도 했어요. 50부 동아나 흐트러지지 않고 엔딩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동시간대 방송되는 ‘육룡이 나르샤’라는 거대한 작품과의 대진에도 비교적 선전하지 않았나 자평합니다. 배우들끼리 똘똘 뭉쳐 팀워크도 상당히 좋았어요.”

 정진영 “매너리즘 유혹, 늘 경계해야죠” 기사의 사진


◆ 매너리즘 유혹, 끝없이 경계해야

정진영은 ‘화려한 유혹’을 통해 멜로라는 장르에서도 눈부신 존재감을 발하며 몸소 한계를 지웠다. 최근에는 FNC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며 소속사와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진영은 신념이 곧은 배우로 유명하다. 연기 27년차 배우 정진영. 그에게 매너리즘에 대해 물었다.

“매너리즘은 어느 분야에,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유혹입니다. 한 손으로도 할 수 있을만큼 쉽다 라고 느껴지면 바로 매너리즘이 시작되는 것이죠. 연기도 그런거에요. 가볍게 마음을 먹고 시작하면 이미 매너리즘인거죠. 어렵다고 생각하고 일을 해야해요. 본인이 가장 잘 알지요. 그냥 연기하는 것을 경계하지 않고 부끄럽게 여기지 못하면 안됩니다. ‘화려한 유혹’은 분량이 많기에 대사도 외워야 하고 연구할 장면이 많았지만 매 장면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해야 매너리즘이 극복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력했고요.”

정진영은 매너리즘에 대한 질문에 강조와 침묵을 반복하며 신중하게 답했다. 그의 주옥같은 신념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2015년에도 열심히 일한 정진영은 올해 ‘시간이탈자’, ‘판도라’ 등 다수의 영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연기를 해야할텐데 말이지요. 매너리즘의 유혹은 누구에게나 야수처럼 도사릴 거에요. 차기작 시나리오고 보고 있지만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8개월 열심히 달렸으니, 잠시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하하.”

이이슬 기자 ssmoly6@

뉴스웨이 이이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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