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육룡이 나르샤’ 신세경, 은은해서 더 반짝이는 향기

사진=나무엑터스

배우 신세경이 지닌 이미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성숙하고 차분한 여성의 모습도 있고 조용한 모습만 간직하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팔색조 매력이 다분하다. 신세경은 의외의 코믹함을 드러내기도 하고 내숭 없는 털털함, 단아한 모습 등 다채로운 매력을 내뿜고 있다.

신세경은 최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약한 자를 보면 돕는 착한 성격의 분이로 분했다. 주눅들지 않고 씩씩한 면모도 갖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캐릭터다. 특히 ‘육룡’ 중 한 명인 분이는 백성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도전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카페에서 신세경을 만났다. 극중 때칠을 하고 당당하게 개혁을 추진하던 여인에서 밝고 기운찬 신세경으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그는 여느 20대 또래와 다를 바 없었다.

Q.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50부작의 대장정을 처음 경험했다

이렇게까지 긴 드라마는 처음이에요. 긴 시간 동안 긴장을 유지해야 한다는 게 힘들기도 했어요. 끝난 직후 실감도 잘 안 났어요. 며칠 쉬다 보니 다시 짐 싸서 촬영을 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웃음)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비로소 마무리 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Q. 이로써 김영현, 박상연 작가와 세 번째 만남이다

여러 번 같이 작품을 할 정도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는 건 멋진 일이고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서 혼난 적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채찍질을 당할수록 좋은 캐릭터가 나오거든요. 그렇게 하얀 도화지에 물감을 끼얹은 것 같은 경험이 모였기 때문에 지금의 작가님들과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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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육룡이 나르샤’를 선택하는데 있어 작가에 대한 믿음은 어디서부터 왔나

작가님들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했었는데, ‘육룡이 나르냐’는 시대나 놓여져 있는 상황이 달라서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어요. 그러면서도 작가님들이 쓰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작가님들이 그려내는 여성은 상황에 끌려간다기보다 능동적이고 진취적인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Q. ‘육룡이 나르샤’ 출연을 결정한 결정적인 이유는

‘육룡이 나르샤’ 대본을 받았을 때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 촬영 중이었어요. 그래서 정독할 시간도 없었고, 사실 50부작이라는 어마어마한 숫자에 기가 눌려 있었어요. 게다가 너무나도 화려한 캐스트에 좋은 제작진들이 참여하니 누가 되면 안될 것 같았죠. 그런데 미팅에서 분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데 홀딱 반했어요. 내 인생에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은 캐릭터였어요. 분이 같은 역할을 만나면 50부작이라도 다시 할 것 같아요.

Q. 극 초반 적극적인 모습의 분이가 점점 달라지는데 아쉽지는 않았는지

저는 만족했는데 아무래도 극 초반 분이의 임팩트나 능동적인 면모를 생각하면 제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요. 점점 중립을 지키면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니까요. 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분이가 덩치 큰 사람들 싸움 속에서 많은 것을 하지 못하고 갈등에 놓여진 것도 상징적인 의미인 것 같아요.

Q.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분이는 곧 백성이라고 강조를 해왔잖아요. 그래서 아쉽기보다 오히려 “백성은 결국 이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대사가 더 상징적이라 생각하고 울림도 컸어요. 분이는 정치적인 이념을 갖고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에요. 그저 내 사람들이 인간적이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이타적인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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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실제 모습과 분이의 모습은 비슷한지

평소 모습은 분이와 정말 달라요. 분이는 개혁을 추구하는 인물, 즉 편한 길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모험이나 변화를 즐기는 편은 아니거든요. 익숙한 게 좋고 가까운 길이 있어도 아는 길만 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그런 여성상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또 배우가 폭풍의 언덕을 걷는 직업이잖아요. 제 성격이 분이와 다른 것도 ‘배우로서 역동적인 삶을 살고 분이처럼 개혁을 꿈꾸는 도전적인 캐릭터를 입을 때도 있으니, 본연의 나는 그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건가 싶어요.

Q. 분이를 연기하면서 더욱 신경을 기울인 부분이 있다면

분이는 모든 캐릭터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게 특이하고 그게 바로 중요한 지점이었어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해야 했던 부분이었죠. 다른 이념을 지닌 이들과 연을 맺다 보니 캐릭터 표현이 과하거나 치우쳐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분이를 연기하면서 들었던 의견들이나 느꼈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도 했어요. 어떤 점이 성장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시선의 방향이라든가 눈동자가 돌아가는 시간 등 미묘한 부분들을 캐치해서 오답노트처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 걸 반복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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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극중 이방원(유아인 분)과의 멜로 비중에 대한 아쉬움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작품에서의 멜로가 딱 좋다고 생각해요. ‘육룡이 나르샤’는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서 멜로든 액션이든 원하는 카테고리대로 볼 수 있는 게 매력이거든요. 방원과 분이의 사랑만을 쫓아가는 드라마는 아니에요. 게다가 방원과 분이는 커플 같은 느낌에서 더 나아가 사상 등 정신적인 영향을 주고 받는 사이었죠. 러브라인이라기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가 더 컸어요.

Q. 실제로도 인간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던데

감정의 바이오리듬을 봤을 때 일의 성과가 행복했던 시간들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손에 꼽게 행복했던 시간들은 사람들로부터 왔어요. 그 중요성을 딱 이번 작품을 통해 느낀 건 아니고, 원래 시청률이나 성적 등 스코어에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는 편이에요.

Q.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만큼 상처를 받는 일도 많을 것 같다

그렇죠. 상처 받는 게 가장 힘들어요. 행복한 시간뿐만 아니라 스트레스도 인간관계에서 오니까요. 서로 소통하는 데 있어 상대 마음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을 때 참 고민돼요. 그걸 다른 사람들처럼 마음에 담아두기도 하고 표출을 하기도 하죠. 지혜롭게 나의 불만을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 일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하다 보니 남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고, 문제를 정확히 짚어내는 게 부족한 거 같아요. 그게 저의 숙제에요.

Q. 어린 나이에 데뷔해 어느덧 27살, 오랜 경력이지만 아직 치열하게 고민하고 부딪힐 시기다

혼돈의 시기에요. (웃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계속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도 제가 느끼지 못한 차이점을 알려주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해요. 또 또래 친구들처럼 감정의 기복이 있을 때도 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노는 것도 좋아하고 취미도 많거든요. 다른 27살 친구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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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나아갈 길이 많은 나이로서 꿈꾸는 삶이 있다면

친구들과 만나면 일에 대한 이야기보다 각자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거든요. 전 욕심이 없는 삶을 살고 싶어요. 욕심은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뜻대로 안 되는 일도 많고 노력 대비 결실이 맺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상황이 나를 따라와주길 바라는 게 아니라 내가 내려놓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Q. 그래도 ‘이것만큼은 욕심을 부린다’ 하는 게 있는지

작품 욕심도 물론 있는데, 그건 욕심이라기보다 의욕인 것 같아요. 가장 욕심을 부리는 것은 주변 사람들 마음이에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거죠. 아무리 일이 나에게 보람과 명예, 지위를 준다고 해도 그건 금방 지나가고 불꽃은 꺼지기 마련이라고 생각해요. 또 어디론가 떠났다고 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한데, 주변 사람들이 돌아갈 나의 집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신세경은 격변의 시기를 겪고 인간관계에 울고 웃으며 성장을 거듭, 단단해지고 있었다. 실제 친구처럼 느껴질 만큼 친근하고 털털한 매력도 그 나이대만의 모습과 어우러져 더욱 빛났다.

그는 평소 모자 하나 푹 눌러쓰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도 한단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취미도 많다며 웃어 보였다. 27살의 신세경은 그래서 더 예뻤다.

이소희 기자 lshsh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