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트로(Newtro)는 새로움(New)과 복고풍(Retro)의 합성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말한다. 젊은이들이 8,90년대 문화를 궁금해하고 기성세대 또한 젊은 층과 공통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오랜 시간이 흘러 모두 변했지만 예전에 몰래 걸어 두었던 추억과 감성을 찾아본다.
▲ 북한강에서 '가평 대성리 MT촌’
얼마 전 아침 출근길, 라디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수십 년 만에 방송에 출연한 소회를 이야기하다가 자신의 노래 한 곡을 특유의 낮은 음성으로 읊조렸다. "저 어둔 밤하늘에 가득 덮힌 먹구름이" 오랜만에 '북한강에서'를 들으며 1991년 봄을 그려본다. 신입생, 경춘선, 통기타, 대성리. 그 시절 대성리는 대학생들의 MT성지였다. 학과 동기 전체가 들어가는 큰방에서 정체불명의 찌개와 새까맣게 탄 밥을 먹어도 마냥 즐거웠다. 밤이 되면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MT촌은 한낮처럼 밝았고 자연스레 모여 노래를 불렀다. 가끔은 옆 민박의 다른 학교 팀과 때아닌 응원가 경합을 벌이기도 했는데, 노랫소리가 작으면 밤새 선배들의 타박을 들어야 했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대성리역 맞은편 구운천 주변에 대형 민박과 펜션들이 MT촌을 지키고 있다. 깔끔한 건물에 인조잔디 운동장을 갖춘 생경한 풍경을 감상하던 중, 마침 새내기 환영 MT중인 학생들을 만났다. 밤새 큰 전투를 치른 듯 한쪽에 빈 술병이 가득한 풍경은 예전과 비슷하나 좀 더 밝고 활기찬 모습이 인상적이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대성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 갯벌과 조개와 라면 '화성 제부도’
경기도 북부에 대성리가 있다면 남부의 MT성지는 단연 제부도다. 먹거리를 잔뜩 들고 수원에서 제부도까지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 길은 힘들었지만, 제부도의 시원한 풍광은 그 수고를 충분히 보상하고도 남았다. 도착해서 짐을 풀면 꼭 몇몇은 양동이 가득 조개를 잡아 오겠노라며 호기롭게 갯벌로 향했다. 그러나 항상 조개보다 사람이 많았고 어수룩한 도시학생에게 순순히 잡혀줄 조개는 더더욱 없었다. 덕분에 메뉴는 조개탕 대신 늘 라면이었지만 바닷바람을 맞으며 먹던 그 맛은 잊을 수 없다. 요즘도 수원역에서 제부도행 천사(1004번 버스)를 기다리는 대학생들을 보면 그 시절이 생각나 미소가 절로 나온다.
제부도는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린다. 일명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바닷길을 따라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최근 제부도를 브랜드화하면서 화성 실크로드가 조성되었고 곳곳에 예쁜 포토스팟도 만들어져 산책은 물론 SNS용 인생샷을 남길 수 있다. 특히 제부도의 상징인 빨간 등대에서 제비꼬리길이 시작되는데 완만한 코스로 전망대와 해안 산책로 모두를 즐길 수 있다. 홈페이지에서 바닷길 통행 시간을 미리 확인 후 방문하는 것이 좋다.
▲ 그 많던 7080 카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하남 미사리'
한강을 따라 올림픽대로를 달려 도심을 벗어나면 만날 수 있던 곳, 미사리. 크고 작은 카페 수십 개가 이어지는데 모두 라이브공연을 하는 곳이었다. 출연 가수이름과 공연시간이 크게 적힌 알록달록 간판이 길가에 잔뜩 늘어서 발길을 붙잡았다. 미사리에선 맛과 분위기보다는 출연진이 카페 선택의 기준이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아무래도 불편했던지라 주류보다 음료가 대세였다. 다른 지역 카페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음료 한잔에 연주와 공연을 볼 수 있으니 웬만한 곳은 초저녁부터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지금은 미사강변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카페가 있던 자리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빌딩 공사가 한창이다. 그 많던 7080 라이브카페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래도 탁 트인 풍경을 즐기며 한강을 따라 걷고 자전거를 타기에는 여전히 좋은 곳이다. 신도시 개발과 함께 철거 위기에 놓였다가 천주교 신도들의 손으로 지켜낸 구산성지 또한 미사리의 상징이다.
▲ 90년대 드라이브 킬링 콘텐츠 '양주 장흥’
장흥은 90년대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교외선 증기기관차가 하루 세 번 장흥역에 도착할 때마다 젊은 연인들이 쏟아져 나와 거리를 가득 메웠다. 장흥 주변은 경관이 좋아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였다. 특히 송추에서 이어지는 소머리고개, 기산저수지 방향으로 넘어가는 말머리고개는 구불구불 멋지게 휘어지는 운치 있는 길인데, 당시 아는 사람만 아는 드라이브 코스의 히든카드였다. 일영이나 벽제에서 점심으로 갈비를 먹고 장흥에 와서 조각공원을 산책하며 커피를 마시는 것은 당시 최고의 럭셔리 데이트였다. 물론 다음날부터는 한동안 최소경비로 지내야 했지만, 연인을 위해서는 아까울 것 없던 청춘이었다.
지금의 장흥은 그때에 비하면 한적한 느낌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요즘 세대들이 양주의 작은 골짜기에 관심을 갖긴 쉽지 않을 것이다. 머그잔을 주던 카페에 메모지를 붙이고 화사랑에서 막걸리를 마셨던, 그냥 옛 장흥을 마음에 간직한 세대의 추억놀이터로 남아도 좋지 않을까? 역전다방은 추억으로 남았고, 토탈미술관은 가나아트파크로 새롭게 변모하였다. 두리랜드는 한참 새롭게 단장 중이며, 오는 6월 오픈을 앞두고 있다.
▲ 시간이 멈춘 거리, 안성을 걷다 '안성 추억의거리’
안성에 옛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거리가 조성됐다. 안성천 주변 신흥동에 새로 태어난 '6070 추억의 거리'다. 줄 타는 어름산이를 형상화한 추억의 거리 대문을 지나면 이제는 찾기 힘든 오래된 연탄가게와 이발소, 낮은 지붕의 치킨집과 커피숍이 자리 잡고 있다. 이름처럼 마치 70년대로 시간여행을 온 듯한 풍경이다. 안성시는 추억의 거리 내 모든 전선을 지중화하고 상점의 간판을 고풍스럽게 바꾸는 등 경관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따뜻한 봄날을 골라 추억의 거리를 걸었다. 마침 알록달록한 정미소 맞은편 대장간에 문이 열렸다. 두터운 나무에 전통 창살무늬를 넣은 특이한 모양의 세 겹 미닫이문이다. 대장간에 와서 나무문을 구경하는 여행자가 못마땅한지, 대장장이의 퉁명스러운 짧은 눈길을 스친다. 대장간을 둘러보고 담금질하는 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이방인이 무얼 하든 대장장이는 자기 일에 집중할 뿐이다. 세상이 변해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것처럼. 이발관과 더불어 수십 년간 이곳을 지킨 추억의 거리 양대 산맥이자 수호자다.
▲ 뉴트로 열풍의 시작 '디스코와 롤러스케이트'
추억의 롤러스케이트가 다시 떴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롤러스케이트를 즐기는 유명가수의 모습을 볼 때만 해도 '아직 롤러스케이트장이 있구나'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 거센 롤러 열풍과 더불어 1년여 만에 지금은 웬만한 신도시나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쉽게 롤러스케이트장을 찾을 수 있다. 롤러스케이트의 추억을 지닌 것은 주로 40~50대지만 즐기는 손님들은 아이들과 20~30대 젊은 층이 대부분인 점도 재밌다. 롤러 복고바람의 요인은 안전장비 대여가 포함된 저렴한 이용료와 미세먼지 걱정이 덜한 실내라는 점일 것이다. 아울러 넓은 트랙과 화려한 조명, 신나는 음악이 재미를 더한다. 그때는 모던토킹과 보니엠의 노래가 최고였지만, 요즘 롤러장에서는 BTS와 트와이스가 대세다.
오랜만에 롤러를 만났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천천히 몸을 풀며 트랙을 한 바퀴 돌면 잠시 어색할 뿐 금방 감이 온다. 기억에서 잊혀진 롤러본능을 몸은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음악에 몸을 맡기며 예전처럼 뒤로 타고 제자리 돌기도 하면서 신나게 즐겨본다. 롤러가 처음인 사람도 약간의 강습 후에는 얼마든지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이번 주말 오랜만에 칠공주 소환은 어떨까? 드레스 코드는 물 빠진 청자켓에 나팔바지로!!
뉴스웨이 안성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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