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변신은 정신적이며 영적인 개벽이다. 필자는 그 개벽을 ‘승화’라고 부르고 싶다. ‘더 나은 자신’을 모색하는 스물여섯 번째 글의 주제는 ‘인간’이다
인간(人間) ; 내게 맡겨진 고유한 의무를 기억하여 최선을 경주했는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숭고한 계획計劃과 그것을 초인의 힘을 다해 지키려는 의도적인 습관習慣만이 인간을 고양시킨다. 계획은 숭고崇高해야한다. 만일 그 계획이 과거의 나에 초점 맞추어 있거나, 현재의 나를 정당화한다거나, 자신의 오만을 기반으로 자화자찬으로 점철된다면 낭패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과거에 만들어진 왜곡된 세계관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계획은 다가올 미래를 지금 당장 나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을 통해 시도해야하는 구별된 것이다.
그 계획은 나를 초월해야한다. 나를 초월한 계획이란, 깊은 명상과 숙고를 통해, 내가 판단하기에 숭고해야한다. 그 목표는 에베레스트 산 정상과 같아서,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다. 숭고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경험하여 좋다는 것이 추종하거나 유명한 사람의 말을 넋을 놓고 듣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어떤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의 경험 밖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를 넘어선다. 독일 철학자 니체가 말한 우리가 도덕이나 종교의 이름으로 정한 ‘선과 악을 넘어선’ 어떤 것이다. 누구도 아는 척 할 수 없지만, 누구나 흠모하는 그것이다. 그것은 새벽별이며, 잔잔한 바다이며, 천둥과 번개를 치는 하늘이며,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 와, 알을 낳고 죽으려는 연어이며, 새로운 생명을 낳기 위해 진통하는 어머니다. 그것은 우리가 눈을 씻고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발견을 기다리는 바다 속 진주다.
습관이란 어제의 답습이 아니라 미래를 지금 내 앞에 앞당기려는 초인적인 수고다. 그 습관이 어제를 향해있다면,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있는데, 그는 과거로 돌아가 그것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우주의 원칙인 시간을 거슬리는 반역이며, 그런 배신행위에 대한 자연스런 판결이다. 습관은 어제의 나를 극복해 나를 고양시켜야만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습관이란 개념을 ‘에토스’ēthos란 단어로 설명하였다. 에토스란 최선을 경주해야만 나오는 천재성이며, 그 천재성의 발휘와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인생이란 단막극에서 내가 많은 배역이며, 그 배역을 몸에 배이도록 온전히 노력할 때, 조금씩 등장하는 나의 개성이다. 내가 지녀야할 개성은 섬세한, 의도적인, 그리고 초인적인 반복을 통해서만 도달 할 수 있는 월계관이다. 인생이란 이 월계관을 자신의 머리에 쓰기 위한 초인적인 노력이다.
2019년 마지막 날, 오늘의 나에게 ‘의도적인 습관’을 만들어준 경험을 생각한다. 내 삶의 알파와 오메가인 습관을 소중하게 여기기 시작한 시점은, 1988년 미국 유학시절이다. 매일 오전 8시45분에는 하버드 야드 내 ‘메모리얼 처치’Memorial Church의 성가대석에서 아침 기도회를 연다. 메모리얼 처치는 1,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을 위해 전사한 학생들을 추념하는 건물이다.
이 성가대석을 아침기도회 공간으로 전환하여 애플턴 채플Appleton Chapel이라고 부른다. 성가대석 뒤로는 파이프 오르간의 파이프로 장식되어있고, 가운데는 지휘자 단상이 있다. 연설자는 이 단상에서 말하고, 성가대 학생과 참석자들은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한 음악을 몸으로 느끼며 전율한다.
매주 하버드를 방문하는 명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7분 동안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무신론자, 종교인, 예술가, 문인들이 와서 이 보석과 같은 작은 방에서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사회는 언제나 피터 곰스Peter Gomes교수였다.
아마도 수백년 동안 진행된 전통으로 학생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항상 찬송가를 부르고,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있고, 명사의 7분 스피치가 있었다. 오전 8시 45분과 9시에 아침기도회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하버드 야드’를 넘어 학교 전체에 퍼진다. 나는 이 아침기도회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였다. 이때 들은 음악과 영감이 넘치는 설교는 내 삶의 양식이 되었다.
나는 그 당시, 디비너티 홀Divinity Hall이란 기숙사에 살았다. 1826년에 건축된 건물로 미국 초월주의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이 학생시절 이 곳에 기숙하였고, 1838년 7월 15일에 Divinity School Address를 연설한 장소다. 나는 이곳을 오전 8시30분에 떠나 울타리로 감싼 야드로 들어가 애플턴 채플로 들어간다.
이 채플의 입구는 메모리얼 처치 왼쪽 아래로, 와이드너 도서관Widener Library 반대쪽이다. 야드 안으로 들어가면 왼편으로 철학과 건물인 ‘에머슨 홀’을 지나쳐야한다. 에머슨 홀은 1905년에 지어진 건물로 다음과 같은 문구가 건물 정면 인방보에 새겨져 있다. 당시에는 철학과와 이제 막 시작한 신생 학문인 심리학과가 한 학과였고 철학자이며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가 교수로 있었다.
그를 비롯한 철학과 교수들은 당시 총장에게 그리스 철학자 파트로클로스의 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라는 문구를 넣기를 희망했지만, 당시 총장이었던 찰스 엘리엇은 구약성서 <시편> 8편 4절에 등장하는 문구를 선택하여 새겨 넣었다. What is Man Thou are Mindful of Him. 이 문구를 번역하자면 “사람이 무엇이기에, 당신은 그(녀)를 이렇게 까지 생각합니까?”다.
이 문장에서 ‘man’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에노쉬(enosh)’다. <창세기>에서 에노쉬는 고유명사다. <창세기>에 의하면 아담과 이브에게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그러다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후 아담과 이브는 ‘셋’이라는 아들을 다시 얻게 되는데, 이 ‘셋’이 낳은 아들 이름이 바로 ‘에노스’다.
<창세기> 4장 26절에 의하면 사람들이 에노스 시대에 처음으로 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부분을 기록한 고대 이스라엘 저자는 인간이 신을 찾고 갈망하기 시작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에노스를 뽑았다. <시편> 8편을 지은 시인도 바로 이 점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에노쉬는 고유명사일 뿐만 아니라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사람’이란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히브리어는 ‘아담’Adam이며, 그다음으로 사용 빈도수가 높은 단어가 ‘에노쉬’Enosh다. ‘아담’은 히브리어로 ‘붉다’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로 원래는 ‘홍토紅土로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의미다.
팔레스타인에서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최고의 재료가 바로 이 붉은 흙이었다. ‘아담’은 신이 붉은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에 에노쉬는 인간의 유한성有限性과 멸절성滅絶性을 내포한 단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능력은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오늘을 사는 용기다. 우리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하필이면 이 시점에 태어나는지도 모른 채, 지구에 던져진 존재들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진리이며 운명이란 사실을 안다. 이 죽음을 인식하고 매순간 준비하는 인간만이 자신의 현재 순간을 승화시킬 수 있다. 에노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 운명을 선명하게 인식하는 존재’라는 의미다.
에머슨 홀에 새겨진 문장을 다시 해석하면 “도대체 찰나를 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당신께서 그를 기억하십니까?”이다. 신이 인간을 기억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억하다’의 히브리어는 ‘자카르zakar’이며, 이 동사의 수많은 의미 중 다음 두 가지가 주어진 문장 해석에 딱 들어맞는다.
먼저 자카르는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혹은 사람을 단순히 회상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자카르는 생각하는 주체를 자극하고 움직여서 감정, 생각 혹은 행동을 유발시키는 적극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개념이다. 또한 자카르는 생각하는 주체에게 그가 해야 할 ‘의무’를 상기시키기도 한다. 시인은 삼라만상 중에 유독 인간만이 그러한 의무감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 위안한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고유한 의무를 기억하여 최선을 경주했는가? 나는 신이 기억할 만큼 괜찮은 존재였는가? 혹은 나는 만물의 척도가 될 만큼 살고 있는가?
<필자 소개>
고전문헌학자 배철현은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셈족어와 인도-이란어를 전공하였다. 인류최초로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 다리우스대왕은 이란 비시툰 산 절벽에 삼중 쐐기문자 비문을 남겼다. 이 비문에 관한 비교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류가 남긴 최선인 경전과 고전을 연구하며 다음과 같은 책을 썼다. <신의 위대한 질문>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성서와 믿음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성서는 인류의 찬란한 경전이자 고전으로, 공감과 연민을 찬양하고 있다. 종교는 교리를 믿느냐가 아니라,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연민하려는 생활방식이다. <인간의 위대한 여정>은 빅히스토리 견지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추적하였다. 이 책은 빅뱅에서 기원전 8500년, 농업의 발견 전까지를 다루었고, 인간생존의 핵심은 약육강식, 적자생존, 혹은 기술과학 혁명이 아니라 '이타심'이라고 정의했다. <심연>과 <수련>은 위대한 개인에 관한 책이다. 7년 전에 산과 강이 있는 시골로 이사하여 묵상, 조깅, 경전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블로그와 페북에 ‘매일묵상’ 글을 지난 1월부터 매일 올리고 있다.
뉴스웨이 안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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