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허 사장, 보유주식 전량 매각 추진지분가치 2조원, 경영권 프리미엄만 20~30%그룹 핵심 계열사, '속전속결' 매물行 설왕설래그룹서 독립이냐, 대기업 내부거래 부담 완화냐일각선 공격적 행보 '매각전 몸값띄우기' 논란도
27일 투자은행(IB)업계와 소재업계 등에 따르면 일진머티리얼즈는 최근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하고, 지분 매각을 위한 티저레터(투자안내문)을 배포했다. 매각 대상은 허 사장이 보유한 지분 전량(53.30%)로, 허 사장은 허진규 일진그룹 창업주 차남이다.
1987년 세워진 덕산금속을 모태로 하는 일진머티리얼즈는 전자산업 필수품인 인쇄회로기판(PCB)용 전해동박 제품을 생산하며 '소재 전문 회사' 정체성을 가지게 됐다. 이 회사는 1996년 일신소재산업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2007년 현재의 사명을 가지게 됐다.
일진머티리얼즈가 주력사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전기자동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이 급격히 확대되면서다. 2차전지 핵심소재인 동박의 경우 기술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에서 일진머티리얼즈의 성장성은 높게 점쳐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6889억원, 699억원을 기록했다. 한때 시가총액은 7조원에 육박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그룹 내 가장 전망이 밝은 '우량 계열사' 일진머티리얼즈를 매각하는 배경이 석연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매각 결정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것은 물론, 회사를 통째 넘기지 않고 최대주주 개인 지분만 정리한다는 점은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허 사장의 지분 매각을 놓고 '그룹에서의 독립'이 거론된다. 개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대규모 현금 융통에 나선 것이란 주장이다. 일진머티리얼즈의 전날 종가는 8만1600원으로, 허 사장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약 2조원이다. IB업계에서는 경영권 프리미엄(20~30%) 등을 고려할 때, 이번 딜의 규모는 3억원대 안팎일 것으로 추정한다. 허 사장이 지분을 매각할 경우 일진머티리얼즈 자회사 경영권도 상실하게 되는 만큼, 그룹에서도 사실상 손을 떼게 된다.
하지만 일진그룹이 일찍이 형제간 독자경영이 가능하도록 지배구조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명분이 약하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허 사장은 2006년부터 일진머티리얼즈를 이끌어왔다. 일진그룹의 형제경영 체제가 굳어진 것은 2008년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다. 장남인 허정석 일진홀딩스 부회장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일진전기와 일진다이아몬드, 일진하이솔루스를 지배하고 있다. 허 사장은 일진머티리얼즈와 일진유니스코, 일진건설 등을 맡고 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그룹 특성상 대기업집단 지정에 따른 '일감몰아주기' 이슈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일진그룹은 이달 초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신규로 지정됐고 기업집단 현황 등 공시 의무가 강화됐다. 일부 계열사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100%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사익편취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설득력은 떨어진다. 대기업집단에서 빠지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계열분리'가 유리하다. 계열사를 떼어 낼 경우 총 자산규모가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정부 칼날을 빗겨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일진머티리얼즈가 최근까지 공격적인 사업 확장 의지를 밝혀왔다는 점에서 '매각 전 몸값 띄우기'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허 사장이 일진머티리얼즈 매각을 사전에 준비해 왔고, 매력도를 높일 수 있는 경영상 주요 의사결정을 지휘했다는 의견이다. 허 사장은 지난해 3월부터 대표이사에서 내려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지난해 글로벌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컨트롤타워격 '아이엠지테크놀로지'(IMG)를 설립했고, 국가별 거점을 뒀다. 당시 일진머티리얼즈는 1조1500억원 규모의 외부 투자를 유치하며 공장 증설 비용을 마련했다. 올 초 매물로 나온 폴리이미드(PI) 필름 업체 PI첨단소재 M&A에도 참전했다. 다만 적격인수후보(숏리스트)에서 탈락했다. 이달 16일에는 스페인 카탈루냐에 2만5000톤 규모의 전기차용 일렉포일 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2024년까지 투입되는 비용만 5000억원이다.
업계 관계자는 "20년 가까이 동박사업에 집중해 온 허 사장이 매각을 결심한 속사정을 파악하기 힘들다"면서도 "지금이 최고가를 받을 수 있는 적기로 판단한 듯 보인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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