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센터는 메르세데스-벤츠가 1993년부터 31년째 운영하는 자동차 수리·보존 공간으로 짧게는 20년, 길게는 120년을 넘긴 왕년의 벤츠 명차들이 새 생명을 찾는 공간입니다.
골동품에 가까울 정도로 오래된 차를 보유한 고객들이 직접 수리를 의뢰하기도 하고 때로는 메르세데스-벤츠 본사 측이 스스로 움직여서 옛 차를 사들인 뒤 수리하기도 합니다.
제가 이 센터를 방문했을 때는 1886년에 발명된 세계 최초의 3륜식 내연기관 자동차 페이턴트 모터바겐의 복제본과 1904년에 제작된 심플렉스 자동차, 1950년대에 제작된 1세대 걸윙 도어 쿠페형 자동차 300 SL 등이 수리를 통해 새 생명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생명을 되찾은 명차 중에는 박물관으로 가는 차도 있지만 다시 고객의 품으로 돌아가 도로 위를 씽씽 달리는 차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 센터에 입고됐던 심플렉스 자동차는 정비를 마친 후 고객이 영국 클래식 카 레이스에 직접 끌고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대를 이어 벤츠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마르쿠스 브라이트슈베르트 헤리티지 총괄 부사장은 "벤츠의 브랜드 역사를 따져볼 때 소중하다고 생각되는 차가 있다면 아무리 비싼 돈을 줘서라도 이 센터로 가져온 뒤 고친다. 그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별 볼 일 없고 낡은 골동품으로 보일지라도 100년 이상 차를 만든 완성차 업체의 눈에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유산으로서 제대로 손을 본다면 그 가치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셈입니다.
브랜드 역사를 볼 때 보존 가치가 높은 유산이라면 비싼 돈을 줘서라도 철저히 복원한다는 브라이트슈베르트 부사장의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볼까요. 현존하는 국산차 업체 중 역사가 가장 오랜 곳은 KG모빌리티입니다. 물론 창사 80주년을 맞은 기아의 역사도 길지만 기아가 실질적으로 자동차를 만든 것은 1960년대 이후이기에 1955년부터 차를 만든 KGM의 실질적 역사가 더 깁니다.
KGM의 전신 하동환자동차는 드럼통을 펴서 차체를 만들고 6.25 전쟁 이후 미군이 버리고 간 트럭의 엔진과 변속기를 조합해서 국내 최초의 버스를 제작했습니다. 그러나 최초의 국산 버스가 탄생한 후 70년이 돼 가는 현재 이 버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행히 왕년의 명차가 복원된 사례는 다른 업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기아가 1960년대에 제작한 소형차 브리사와 국내 마지막 3륜 트럭 T-600을 복원한 바 있고 현대자동차는 현대 모터스튜디오에서 최초의 고유모델 국산차 포니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만시지탄이지만 늦게라도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이 사라진 옛 차의 모습을 복원하며 역사를 되짚어본 것은 다행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생명이 멈출 뻔한 자동차를 실제로 달릴 수 있게끔 복원할 수 있다면 의미가 더 깊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거의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 유산을 통해 오늘과 미래를 위한 답을 연구하는 것은 비단 자동차업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국내외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모든 기업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래된 물건이라고 해서 가치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만들어진 후 오랜 역사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외관만 낡아질 뿐 물건이 지닌 가치는 낡지 않는 법입니다. 그 물건을 만든 선대 경영인의 사업 정신 역시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일 것입니다.
물건 속에 투영된 사업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하고 먼저 사업을 펼쳤던 선대 경영인들의 마음가짐도 깊이 되짚어본다면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낼 묘안과 미래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 있습니다.
삐뚤빼뚤하게 쓰인 일기장 속 글귀에서 과거의 향수와 추억을 만나고 그를 통해 오늘과 미래를 위한 깨달음을 얻듯 우리 기업도 오래전 만들어낸 사업적 성과를 '고물'로 치부하지 말고 미래의 해답을 찾는 유산으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뉴스웨이 정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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