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핵심은 원가 경쟁력 강화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다. 일단 중국의 CATL과 BYD 등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매 분기마다 휩쓸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배터리 업체들은 높은 기술력과 안정성을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시장이 가격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당장 기술력만으로는 승부를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그렇다고 업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전 세계 배터리 시장은 글로벌 전기차 캐즘(Chasm, 일시적 수요 정체) 위기 심화로 수요가 줄어들며 사상 초유의 위기 상황에 놓였다. 실제 지난해 국내 배터리 3사 공장 가동률은 대부분 50%대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2022년 70~80%대의 평균 가동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캐즘 장기화에 연간 실적도 하락세다. 국내 배터리 업계 맏형인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연간 매출 25조6169억원, 영업이익 5754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4.1% 줄었고, 영업이익은 무려 1년 전보다 73.4% 감소했다. 4분기만 놓고 보면 2255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삼성SDI도 8년 만에 분기 적자를 냈다. 삼성SDI의 매출은 3조7545억원, 영업손실 2567억원이다. 여기에 SK온은 흑자 전환 1개 분기 만에 적자로 돌아서며 아쉬운 실적을 기록했다.
이러한 부진한 흐름 속에서 올해 국내 배터리 3사의 투자 규모 축소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각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올해 투자는 유연하게 조정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물론 불확실한 시장 상황을 고려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동시에 위기를 타개할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원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까. 업계에서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공급망 다변화를 꼽고 있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리튬과 니켈 등 주요 원자재 공급망이 대부분 중국에 편중되어 있다. 따라서 공급 리스크와 가격 변동성 측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도 지난해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공급망 다변화를 위해 9조7000억원의 정책금융 지원을 결정했다. 하지만 기업들의 움직임이 더뎌서는 안 된다.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북미·유럽 등과의 협력 강화 등과 같은 보다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 외에 일부 기업은 중국의 주력 제품인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개발 확대를 통해 생산 단가를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원가 절감을 위한 대대적인 체질 개선과 차별화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갖췄음에도 원가 경쟁력까지 보유해야 하는 현실은 다소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차 배터리는 B2B 시장이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 입장에서는 가격을 중시할 수밖에 없고, 성능이 비슷하면 더 저렴한 배터리를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이다. 게다가 중국 업체들의 기술 수준도 우리나라 기업들을 빠르게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원가 절감이 필수인 시대가 된 것이다.
배터리 업계의 불황은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르면 내년경 캐즘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때까지 버틸 체력을 기르지 못한다면 전 세계 배터리 시장에서 더욱 밀려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술력만으로는 더 이상 승부를 볼 수 없는 시대가 됐다. 이제는 원가 경쟁력이라는 확실한 무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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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전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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