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장학재단, 17일 맞춤형 보조기기 전달식 진행뇌병변 장애가족, 비용과 기기 노후화로 현실적인 고민지원 사각지대의 현실과 희망의 메시지 전해
보조기기를 막 수령한 보호자의 말이었다. 새로 받은 이동용 유모차는 등받이를 눕힐 수 있는 틸트형으로, 머리와 몸을 지지하는 장치가 함께 장착돼 있었다. 기존 기기는 벌써 5년이 넘었고, 체형에 맞지 않아 허리가 접히거나 한 번에 뒤로 넘어가는 위험한 상황이 잦았다. 자녀의 키가 자라면서 기기를 연장해 쓰기도 했지만, 결국 고장이 나 외출 자체를 포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노호영 씨는 중증 뇌병변 장애가 있는 자녀를 돌보고 있다. 병원 진료, 산책, 주간보호센터 통학. 어디를 가든 반복적인 허리 숙임과 자세 조정이 동반됐다. 기기가 흔들리거나 뒤틀리면 아이의 머리를 붙잡아야 했고, 작은 턱에 걸려 휠체어가 기울어질 때면 자녀가 함께 넘어질까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지난 17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장애아동 가족행복지원 보조기기 전달식'은 몇몇 가족의 일상에 구체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이날 롯데장학재단은 중증 장애 아동 101명에게 총 119개의 맞춤형 보조기기를 전달했다. 재단은 2016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을 통해 지금까지 전국 1165명의 아동에게 기기를 지원해왔다.
이날 노 씨는 롯데재단의 지원으로 새 기기를 수령했다. 자녀를 옮기는 도중 그의 손이 잠시 멈췄다. 반복적으로 허리를 숙일 필요가 없어진 상황이었다. 아이는 기기 안에서 자세를 고정한 채 조용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용자가 먼저 알아챘다. 이전과는 다른 '앉는 경험'이었다.
윤민지 씨는 뇌병변 장애가 있다. 이번 전달식에서는 자세 유지용 쿠션과 체위변경 매트가 제공됐다. 기존에는 베개와 담요를 여러 겹 쌓아 자세를 맞췄지만, 체형이 바뀌면서 이 방식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새로운 기기는 사용자의 곡선에 따라 몸을 지지해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보호자는 기기의 마감과 고정 상태를 확인하며 천천히 곡선을 더듬었다.
윤민지 씨 어머니는 3층 건물에서 승강기를 통해 휠체어를 이동시켜야만 외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승강기 고장 시에는 외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10종이 넘는 보조기기를 사용해 왔지만, 성장과 고장으로 인해 대부분은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했다. "우리 아이한테 보조기기는 제2의 몸이 아니라 제1의 몸이에요"라고 윤민지 씨 어머니는 말했다.
중증 장애 아동의 경우, 체형 변화나 기기 노후화로 인해 주기적인 교체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가정이 이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낡은 기기를 오래 쓰거나 외출 자체를 줄이며 생활 반경을 좁히는 선택을 하게 된다. 건강보험이나 공공 지원이 일부 존재하더라도, 실사용에 필요한 수량이나 형태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노호영 씨는 기존에 사용하던 유모차가 너무 낡아 뒤로 완전히 젖혀지는 고장이 발생했지만, 당장 대체할 방법이 없어 사용을 중단한 상태였다. 윤민지 씨 어머니 역시 아이의 체형 변화에 맞춰 카시트를 교체해야 했지만, 기기 노후화와 비용 문제로 오랜 시간 불편함을 감수해왔다. 올해 지원 대상자 중 절반 이상은 가정 형편상 보조기기 구매가 어려운 이들이다. 윤민지 씨 어머니는 "요즘같이 물가도 비싼데 이건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어요"라고 말했다.
롯데장학재단은 기기를 단순히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동의 신체 상태, 생활환경, 사용 공간을 평가해 맞춤형 기기를 지원하고 있다. 필요시 전문가가 직접 가정을 방문해 측정과 설치를 진행한다.
기기는 결국 일상의 구성을 바꾼다. 전달식 현장에서는 노 씨 가족이 행사장 내부를 천천히 이동했다. 아이의 상체는 지지대를 따라 안정적으로 고정되었고, 고개는 곧게 세워졌다. 가족의 이동에는 중간중간 멈춤이 줄어들었다.
전달식 말미, 장혜선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한 수혜자의 사연을 듣고 천천히 눈물을 훔쳤다. 장 이사장은 "제 경우에는 상황 자체보다도, 이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는 막막함, 어둠 속을 걷는 듯한 우울감이 더 힘들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고 고백하며 "여러분께서 지금 자녀에게 보내고 계신 사랑은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윤민지 씨 가족은 이번 가을, 설악산 국립공원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 평소 산책을 좋아하는 윤 씨를 위해, 오랜만에 긴 이동을 준비 중이다. 어머니는 전달식 후 행사장을 나서며 말했다. "30년을 키워왔지만 오늘처럼 진심 어린 선물 받은 건 처음이에요. 저희한테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라, 숨 쉴 틈 같은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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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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