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쿠팡을 상대로 청문회를 열었다. 사상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부르는 자리였다. 그러나 증인석에 오른 이는 김범석 쿠팡Inc 의장이 아니라 해롤드 로저스 임시 대표였다.
로저스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법무총괄 출신으로 개인정보 유출 직후 임시 대표로 선임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어를 구사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질의는 통역을 거쳐야 했다. "조사 중입니다", "확인 후 답변하겠습니다"라는 말이 반복되며 청문회장은 '영어 듣기 평가'라는 비아냥까지 나왔다.
반면 김범석 의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회 출석 요청에도 "글로벌 CEO 일정이 있다"며 불참했고, 지난 국정감사 때처럼 이번에도 불출석했다. 이에 국회는 김 의장을 증언·감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쿠팡 측은 김 의장이 한국 법인 등기이사가 아니므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그는 쿠팡Inc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로, 차등의결권을 통해 전체 의결권의 74.4%를 행사한다. 국내 사업 전반에 대한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사실상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다.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도 '속도 중심 경영'을 앞세운 김범석 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글로벌 인재를 끌어들이겠다며 외국인 개발자 비중을 크게 늘렸지만, 핵심 데이터 접근 권한 관리와 퇴사자 권한 회수 등 기본 보안 시스템은 따라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유출 사고는 내부 민원에 의해 뒤늦게 드러났고, 공지에는 '유출'이 아닌 '노출'이라는 표현이 쓰이며 책임은 희석됐다.
쿠팡은 아직 사고의 구체적 경과, 기술적 원인, 재발 방지 대책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박대준 대표가 사임했지만, 후임을 법무 출신으로 임명한 것 역시 구조 개선보다 법적 방어에 방점을 둔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사과의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사과의 주체다. 반복되는 위기마다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덕평 물류센터 화재, 산재 사망 사고, 그리고 이번 개인정보 유출까지, 이름만 있는 총수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
오늘 청문회는 쿠팡이 여전히 '책임의 부재'라는 구조 속에 갇혀 있음을 확인한 자리였다. 김범석 의장이 끝내 침묵을 택한다면, 쿠팡의 위기는 기술 문제가 아닌 신뢰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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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조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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