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차체와 고급 소재 조합미국식 럭셔리 SUV의 매력투박함을 넘어 세련미 더해
자동차도 첫인상이 참 중요합니다. 멀리서 봤는데도 "아, 저 차 크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차가 있습니다. 이번에 만난 지프 그랜드 체로키 L이 그렇더군요. 주차장에 세워놓으니 주변 차들이 갑자기 작아 보입니다. 차주는 얼마나 든든할까요.
이름에 붙은 'L'에서 알 수 있듯 이 차는 롱 휠베이스 모델입니다. 전장은 5220mm로 포드 익스플로러(5050mm), 링컨 에비에이터(5065mm)보다 큽니다. 한 체급 위로 여겨지는 캐딜락 에스컬레이드(5382mm)와도 제법 가까운 숫자입니다. 너비는 1975mm, 휠베이스는 3090mm입니다. 대형 SUV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덩치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차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처음 압도적인 인상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겁니다. 거대한 차체 안에 가죽과 나무, 스웨이드가 들어가 있고 2열에는 마사지 기능까지 있습니다. 예전 지프라면 튼튼하다는 말이 먼저 떠올랐는데, 이제는 고급스럽다는 말도 제법 자연스럽습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가 떠올리는 지프와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지프의 상징인 7슬롯 그릴은 얇고 매끄럽게 다듬었고, LED 헤드램프도 날렵하게 디자인했습니다. 각진 차체와 투박한 장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선을 깔끔하게 정리해 차분한 인상을 줍니다.
전통은 남겼지만 과시는 줄였다는 인상입니다. 오래된 명품 브랜드가 로고 크기를 줄이고 소재와 만듦새로 승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지프인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달라진 점이 보입니다.
예전 그랜드 체로키를 기억하는 분이라거나 랭글러만 떠올리신다면 "지프가 원래 이렇게 고급스러웠나?" 싶을 정도입니다. 대시보드는 부드러운 고급 가죽으로 감쌌고, 오픈포어 우드를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머리 위에는 스웨이드 루프가 자리합니다. 손이 닿는 곳마다 소재의 질감과 촉감을 신경 쓴 흔적이 느껴집니다.
요즘 프리미엄 SUV에서 볼 수 있는 디지털 계기판과 무선 스마트폰 미러링, 다이얼식 변속기도 갖췄습니다. 단순히 장비를 많이 넣었다기보다 실내 전체의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데 신경 쓴 모습입니다.
6인승 구성의 독립식 캡틴 시트에 앉으면 이 차가 왜 L인지 단번에 이해됩니다. 좌우로 넉넉하게 떨어진 시트 사이로 공간이 충분하고, 통풍 기능은 물론 마사지 기능까지 갖췄습니다. 장거리 여행이라면 운전석보다 2열에 앉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니까요.
여기에 매킨토시 19개 스피커 시스템까지 들어갔습니다. 단순히 소리가 크다는 차원이 아니라 차 안을 하나의 작은 음악 감상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장비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좋아하는 앨범을 틀어놓고 달리다 보면 이동 자체가 조금 더 여유로운 시간이 됩니다.
공간 활용성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트렁크 용량은 기본 490L, 2·3열을 모두 접으면 최대 2390L까지 늘어납니다. 시트를 접으면 2m가 넘는 평평한 공간이 만들어집니다. 캠핑이나 차박처럼 짐이 많아지는 레저 활동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크기입니다.
파워트레인은 3.6L V6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입니다. 최고출력은 286마력, 최대토크는 35.1kg·m로 넉넉하죠. 2.3t 넘는 차체를 무리 없이 밀어주고, 고속도로에서는 묵직한 차체를 안정적으로 끌고 갑니다. 폭발적인 가속보다는 여유롭게 속도를 쌓아가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차의 성격과도 잘 맞습니다.
V6 자연흡기 엔진의 감각도 반갑습니다. 페달을 깊게 밟으면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거칠고 묵직한 엔진음이 들려옵니다. 최신 프리미엄 SUV들이 점점 조용하고 매끈해지는 가운데, 이 차는 여전히 기계적인 감각을 조금 남겨뒀습니다. 고급스러움만 강조하다가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부분을 V6 엔진이 채워줍니다.
고속 주행에서는 정숙성도 괜찮습니다. 풍절음과 노면 소음이 크게 거슬리지 않고, 큰 차체가 도로 위에서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습니다. 조용하면서도 엔진을 깊게 밟으면 존재감을 드러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성격이 공존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8단 자동변속기는 간혹 단수를 찾지 못해 머뭇거립니다.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간 만큼 구름 위를 떠가는 듯한 승차감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충격을 모두 부드럽게 지워버리는 타입은 아닙니다. 차고를 조절하고 큰 차체를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역할에 조금 더 충실합니다. 편안하지만 극도로 말랑한 승차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랜드 체로키 L은 확실히 고급스럽습니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넉넉한 공간, 2열 캡틴 시트와 마사지 기능, 매킨토시 오디오까지 프리미엄 SUV에 요구되는 요소를 상당 부분 갖췄습니다. 무엇보다 유럽 프리미엄 SUV와는 다른 미국식 럭셔리의 색깔도 분명합니다.
이 차의 가장 큰 매력은 크기와 고급스러움이 한 차 안에 공존한다는 데 있습니다. 거대한 차체가 주는 여유에 지프 특유의 투박한 감성을 남겨두면서도, 실내에서는 한층 세련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큰 지프'에서 '고급스러운 대형 SUV'로 한 발짝 올라선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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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권지용 기자
senna@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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