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제값 구매 사라진지 오래···패션업계가 만든 '세일의 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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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값 구매 사라진지 오래···패션업계가 만든 '세일의 덫'

등록 2026.10.15 15:40

양미정

  기자

정상가격보다 할인율에 더 주목되는 시장소비자의 기대를 부르는 대규모 할인 행사할인이 아닌 제값을 지불할 이유 제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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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제값 주고 사면 손해라는 인식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도 곧바로 결제하기보다 할인 쿠폰부터 찾아본다. 며칠만 기다리면 더 저렴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패션 플랫폼들이 앞다퉈 할인 행사를 벌이면서 소비자에게 정상가격은 구매 기준이 아니라 할인을 얼마나 받았는지 계산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할인 경쟁의 효과는 뚜렷하다. 무신사가 운영하는 29CM는 지난 6월 대규모 할인 행사인 '이구위크'에서 거래액 122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약 30% 늘어난 역대 최대 실적이다. 3000여개 브랜드가 참여해 최대 80%대 할인 혜택을 제공한 결과다.

카카오스타일이 운영하는 지그재그도 같은 달 6400여개 스토어가 참여한 '직잭팟'에서 최대 90%대 할인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 기간 미쏘와 에잇세컨즈의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0%, 138% 증가했다.

신세계그룹 계열 W컨셉 역시 대규모 할인 행사인 '더블유위크'를 상·하반기에 운영하고 있다. 주요 패션 플랫폼들이 할인 행사를 거래액 확대와 고객 확보를 위한 핵심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습이다.

할인은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기회를 제공한다. 브랜드에도 재고를 소진하고 신규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특히 인지도가 낮은 신진 브랜드에는 대형 플랫폼의 기획전이 소비자와 만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 문제는 할인 자체가 아니라 할인이 반복되면서 정상가격에 상품을 판매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가 정가보다 할인율에 익숙해지면 브랜드의 가격 결정력은 약해진다. 할인 행사를 기다리는 소비자가 늘수록 브랜드는 판매량을 유지하기 위해 다시 할인에 나설 유인이 커진다. 처음에는 고객을 모으기 위한 판촉이었지만, 어느 순간 할인하지 않으면 고객을 붙잡기 어려운 구조로 바뀔 수 있다.

그 부담은 브랜드의 수익성으로 이어진다. 판매량이 늘더라도 할인 비용과 플랫폼 수수료, 광고비 등을 제외하면 실제 남는 이익은 기대에 못 미칠 수 있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브랜드는 대형 브랜드보다 판촉비를 감당할 여력이 작다. 플랫폼에서의 노출과 판매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할인 행사에 참여할수록 수익성 관리가 어려워질 수 있는 셈이다. 물론 할인 비용을 플랫폼과 브랜드가 어떻게 나누는지는 계약과 행사에 따라 다르다. 모든 판촉 부담이 입점업체에 전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브랜드 가치에 미칠 영향이다. 패션 브랜드의 경쟁력은 디자인과 품질, 고유한 정체성에서 나온다. 하지만 소비자가 상품의 가치보다 할인율을 먼저 따지는 시장에서는 브랜드가 쌓아온 차별성도 가격 경쟁에 가려지기 쉽다. 신상품을 정가에 구매한 고객이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폭의 할인 판매를 접한다면 가격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

온라인 유통망 확대는 중소 브랜드의 시장 진입 문턱을 낮췄고, 소비자의 선택지도 넓혔다. 할인 행사 역시 유통업에서 필요한 판매 전략이다. 다만 플랫폼의 거래액 증가가 입점 브랜드의 실질적인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 많이 팔리는 것과 이익을 남기며 성장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패션업계의 과제는 할인 행사를 통한 단기 매출 확대를 넘어 브랜드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반복적인 할인 경쟁은 소비자의 정상가격 구매를 위축시키고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입점 브랜드의 수익성뿐 아니라 플랫폼의 성장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할인은 고객을 불러 모을 수 있지만 브랜드의 가치를 대신할 수는 없다. 할인 없이는 팔리지 않는 시장을 만들어 놓고 판매 부진을 이유로 다시 할인 폭을 키우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한다. 패션업계가 키워야 할 것은 할인율이 아니라 소비자가 제값을 지불하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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