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평가 기업 공표·초단타 거래 규제 등 후속 대책 주목증시 홍보에도 외국인 26조원대 순매도···투자심리 위축전문가들 "단기 처방보다 기업가치·정책 신뢰 회복해야"
이재명 대통령이 증시 정상화를 위한 추가 조치를 예고하면서 정부의 후속 대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저평가 기업 명단 공개와 고빈도매매 규제 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지만 외국인 매도세를 진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주가 부양보다 기업가치를 높이고 일관된 정책으로 장기투자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1월 저PBR 기업 첫 공개···초단타 거래 규율 강화도 검토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식시장 정상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해야 될 일이 뭔가를 계속 체크하고 있다"며 "조만간 종합보고를 받고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국내 증시가 여전히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주주 존중 문화의 부족과 경영권 남용 등을 개선 과제로 지목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코스피가 7000선에서 5000선 중반까지 밀리면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된 가운데 나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지난 21일 전 거래일 대비 182.92포인트(3.29%) 오른 5735.66에 거래를 마쳤다.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반발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5700선을 회복했지만 지난달 23일 종가(7080.92)와 비교하면 여전히 19.0% 낮은 수준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대책 가운데 가장 먼저 시행되는 것은 저주가순자산비율(PBR) 기업 공표 제도다. 한국거래소는 다음 달 2일부터 장기간 저평가 상태에 머무른 상장기업의 명단을 공개한다. 코스피에서는 업종별 PBR 하위 25%, 코스닥에서는 하위 10%에 해당하는 기업 가운데 원칙적으로 6개 반기 연속 기준을 충족한 기업이 대상이다. 명단은 매년 5월과 11월 첫 거래일에 발표되며 증권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도 관련 정보가 표시된다.
고빈도매매에 대한 규제 강화도 검토되고 있다. 고빈도매매는 알고리즘을 활용해 짧은 시간에 대량의 주문과 취소를 반복하는 거래 방식으로 최근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지목됐다. 금융당국은 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거래 행태와 현행 규제의 적정성을 살펴보고 있고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 일반주주의 권리를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이른바 '한국형 베어허그'는 공개매수 과정에서 대상 기업의 이사회가 해당 제안에 대한 의견과 판단 근거를 공시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다. 경영진의 판단에 따라 인수 제안이 일방적으로 거부되거나 주주들에게 관련 정보가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문제를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저PBR 기업 명단 공개와 고빈도매매 규제는 이 대통령의 추가 조치 발언 이전부터 추진되거나 검토돼 온 대책이다. 대통령이 종합보고를 받은 뒤 어떤 방안을 추가로 내놓을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의 직접적인 증시 개입에 신중한 입장을 밝힌 만큼 향후 대책에서는 일반주주 보호와 불공정거래 감독 등 제도 개선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셀 코리아'···증시 부양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6일까지 개최한 '코리아 프리미엄 위크' 기간 외국인은 국내 증시에서 26조1380억원을 순매도했다. 정부가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자본시장의 투자 매력을 알리는 동안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을 대거 처분한 것이다. 코스피도 행사 개막 전인 지난달 23일 7080.92에서 행사 마지막 날인 이달 16일 5668.05로 19.95% 하락했다.
외국인들은 반도체 대형주를 중심으로 국내 주식 비중을 줄였다.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논란이 확산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기업들의 이익 증가세가 지속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영향이다. 지난 12일부터 16일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각각 17.8%, 24.3% 하락하며 코스피 낙폭을 키웠다.
정부의 추가 대책이 외국인 매수세 회복으로 이어지려면 기업가치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고빈도매매 규제가 단기적인 매도 압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더라도 기업 실적과 주주환원 정책에 변화가 없다면 투자자들의 매수세를 되돌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기업의 공시 의무 위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을 유도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거래시간 연장에 따른 주가 변동성도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혔다. 야간시장은 정규장보다 거래량이 적어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올 경우 주가가 급격히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등 유동성공급자(LP)의 참여를 확대해 야간 거래에서 매수·매도 주문이 원활하게 체결되도록 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야간시장은 유동성이 부족해 매도 물량이 집중되면 정규장보다 주가가 크게 하락할 수 있다"며 "LP의 야간시장 참여를 확대해 급격한 가격 변동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PBR 기업 명단 공개에 대해서는 정책의 목적과 기대 효과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PBR은 투자자들이 이미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만큼 명단을 별도로 공개하는 것만으로 기업의 배당 확대나 경영 방침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저평가 기업을 공표한 이후 기업들이 실제로 어떤 개선 조치를 내놓는지가 정책 성과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직접적인 증시 개입에 따른 부작용도 거론된다. 증시안정펀드를 통한 주가 방어가 반복되면 투자자들이 정부의 지원을 기대해 손실 위험을 가볍게 여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까지 주가 부양에 동원될 경우 수익성과 위험관리에 근거한 독립적인 투자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어준경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정부는 시장의 거래 규칙을 마련하고 이를 공정하게 적용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주가가 급락할 때마다 직접 개입하기보다 투자자들이 예측할 수 있는 일관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는 외국인 자금의 재유입 여부가 반도체 업황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증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반도체 산업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회복돼야 외국인 매수세도 살아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미국 국채금리 등 대외 변수도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주식 비중 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기업 지배구조와 주주 권익 보호 문제 역시 해외 투자자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복상장으로 모회사 주주들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우려는 국내 증시의 저평가 문제와 맞닿아 있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더라도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면 장기투자에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복상장에 대한 규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업별로 예외를 두지 않아야 한다"며 "세제 혜택 등 장기투자 유인책도 단기간에 끝내지 않고 지속적으로 유지해야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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