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분명 배우다. 10년 전 무작정 부산에서 배우를 꿈꾸며 서울로 왔다. 극단에서 막일을 하면서 연기를 배웠다. 누구나 다하는 포스터 붙이기, 바닥 청소, 표받기 등 안해본 일이 없었다. 2009년부턴 연극 ‘시크릿’ 주연배우로 활동했다. 2009년 KBS2 드라마 ‘아이리스’, 2010년 SBS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SBS ‘대물’, 케이블채널 tvN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생초리’, 2011년 SBS ‘호박꽃순정’ 등에 출연했다.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왔다.
“정말 ‘지나가는 역 1번’ ‘손님 2번’부터 시작해서 대사도 몇 마디 되는 단역에 꽤 괜찮은 역할까지 참 많이 했었죠. 저 보시면 참 내성적이고 조용조용하잖아요. 제가 배우가 될 거라곤 주변 친구들도 다 비웃었죠. 그런데 그게 더 오기를 불러 일으켰죠. ‘한 번 두고 보자’란 생각을 갖고 덤볐죠. 잘 밟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쉽지는 않더라구요. 혼자 하려니(웃음)”
이른바 연줄도 없고, 학연도 없었다. 남들에게 굽실거리며 이리저리 붙는 행동도 못했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었고, 비딱하게 보면 융통성이 없었다. 그는 그냥 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단다. 어느 순간 벽이 보였고, 자신이 뚫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소속사도 없이 홀로 뛰어든 연예계 생활은 거칠고도 힘들었다. 우선 금전적인 문제가 다가왔다.
“연극배우 출신의 무명 배우가 소속사도 없이 활동한다는 게 말이 안됐죠. 금전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뭐 한 때는 끼니를 때울 돈도 없어서 굶기가 일상이었으니까요. 우선 닥치는데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지금까지 해본 아르바이트만 150가지 정도? 정말 안해본 일이 없었죠.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하기 위해선 우선 주머니가 두둑해야 한다는 걸 10년 만에 알게 된 거죠. 참 멍청했죠. 하하하.”
하지만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우연히 접한 일이 이재환의 진로에 큰 전환점을 가져 오게 됐다. 한 지인을 통해 한복 모델 제의를 받고 접했는데, 무언가 길이 보였다는 것이다. 배우를 포기한 게 아니란 잠시 경제적인 부분에 ‘올인’하기로 한 만큼 어떤 ‘활로’를 찾으려고 준비했고, 그게 바로 한복이었다고.
“공교롭게도 저희 부모님이 부산에서 한복 공장을 하셨어요. 가만 보니깐 이게 일이 될 거 같더라구요. 무턱대고 한 번 뛰어들어봤죠. 잘 됐냐구요? 하하하. 보기 좋게 박살이 났죠. 정말 문자 그대로 박살이 났어요. 제가 너무 우습게 봤던 거죠. 그때 깨달았어요. 연기도 내가 너무 우습게 생각했구나. 잠시 연기와 또 배우와 떨어져 지내기로 한 만큼 한복일을 본격적으로 배워보자고 마음먹었죠. 물론 전 배우란 정체성은 지켜갔죠. ‘난 배우다. 하지만 지금은 한복일을 하는 배우다’라고.”
광장시장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원단을 배달하는 일부터 맛을 보기 시작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 업체 사장님한테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욕도 시원하게 먹었다. 하지만 타고난 승부욕 하나만큼은 이재환에겐 큰 무기였다. ‘부산 촌놈’이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연극 무대 주연까지 꿰찰 정도로 당차고 끈기 하나로 버텨온 그였다.
“매장 내고 나서 처음으로 2000만원의 매출을 냈어요. 눈물이 났죠. 하하하. 그때 이후로 조금씩 커져갔고, 지금은 거래처가 셀 수도 없어요. 저와 함께 한 직원들이 너무 고맙죠. 진짜 고마워요. 보잘 것 없는 날 믿고 여기까지 함께 와줬으니 정말 은인이죠. 평생 함께 할 동반자들이에요.”
그는 앞으로 한복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을 꿈꾸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최근 홍콩 진출을 위한 업체 미팅도 마찬 상태다.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현지에서 오는 4~5월 쯤 한국으로 이재환을 만나러 온단다. 또한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한복 협찬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최근 영화 ‘존 윅’으로 내한한 할리우드 특급스타 키아누 리브스에게 직접 한복을 전달했다. 이 장면은 국내 한 지상파 연예 프로그램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다.
“한복 일을 하면서 참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배우로서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한복이 맺어준 인연이 정말 많아요. 키아누 리브스에게도 좋은 인연으로 한복까지 선물을 할 수 있게 됐었죠. 키아누 리브스가 참 아픈 과거를 갖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그에 걸맞는 디자인으로 한복을 선물했는데, 제 의도를 알아봐 주셔서 너무 놀랐어요. 최근에는 영화 ‘어우동: 주인 없는 꽃’에도 한복이 인연이 돼 출연까지 했었죠(웃음)”
극중 ‘포목점 주인’으로 출연한 이재환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은 듯 물 만난 고기처럼 극 안에서 놀았다. 더욱이 사극 안에서 한복을 파는 주인이다. 묘한 동질감 혹은 우연이라고 해야 할까. 이재환은 ‘파안대소’를 하며 “배우하라고 한복과 인연을 맺어주셨고, 한복 때문에 배우를 버리지 말라고 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앞으로 사업을 조금 더 키워볼 생각이에요. 잠시 배우와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어우동’ 같은 작품과의 인연이 된다면 굳이 마다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처음 배우를 시작할 때도 그랬고, 한복 일에 뛰어들 때도 그랬고. 제 계획은 확실합니다. 조금 더 제 주변 여건을 넉넉하게 만든 뒤 좀 더 큰 꿈을 꿔 볼 생각이에요.”
그는 자신처럼 배우의 꿈을 꾸고 자신에게 솔직한 새내기들을 위해 영화 혹은 연극 등을 제작하는 더 큰 꿈을 꾸고 있단다. 물론 그것보다 더 큰 꿈도 그리고 있다. 10년 전 이재환은 그랬다. ‘부산 촌놈’이고 ‘무명’이란 이름을 달고 살 던 배우였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이재환은 전 세계를 상대로 뛰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한복이란 무기를 들고 말이다. 이 배우, 뭔가 분명히 일을 저지를 것만 같다.
김재범 기자 cine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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