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사업한 적 없다! 여긴 재개발(희망)지역”도시재생사업 자체 부정하는 주민들, 상처만 뉴타운 지정에 기대했지만 동의 없이 해제돼박원순·변창흠 주도로 도시재생사업 추진해격노한 주민들 “페인트통 엎어버리고 내쫓아”도생은 허상일 뿐, 소방도로 없고 슬럼화 조장
13일 뉴스웨이 본지가 서울 용산구 서계동 인근의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찾아가서 도시재생사업 현황에 대해 물어보니 해당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대표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벽화’, ‘도시재생’ 이 두 가지 단어를 언급만이라도 하면 바로 “모른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옆의 공인중개 사무소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도시재생사업 자체를 부정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서계동에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주인 A씨에게도 물어봤다. 그 역시도 도시재생사업 자체를 언급하고 싶지도 떠오르고 싶어 하지도 않는 눈치였다. 벽화에 대해 한참 물어보니 “이전 동사무소 근처에 흉물스러운 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건가 보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용산구 서계동은 서울역 바로 뒷쪽의 ‘노른자땅’에 위치해 있는 지역이다. 화려한 전면의 서울역과는 달리 서계동은 “서울 중심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할 정도로 낙후된 지역이다. 더욱이 만리재로를 두고 바로 맞은편 동네는 GS건설의 자이, KCC건설 파크타운 등 대형 브랜드 아파트 혹은 오피스텔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이 모습조차 격차감이 확연히 드러났다.
앞 동네의 화려한 아파트단지와는 달리 서계동은 낡은 상가와 노후 주택들 사이의 구멍가게 한 두 개만 있을 뿐 편의시설은 한참 부족해 보였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대체로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길목들이 많은 데다 소방도로가 없는 곳이 많아 화재에 무방비인 상태라는 점이다. 주택가도 구릉지역(언덕)에 밀집하는 등 주거환경시설조차 열악했는데 이렇듯 서계동은 육안으로만 봐도 재개발이 시급해 보였다. 이런 서계동을 두고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물론 서계동도 재개발할 기회는 있었다. 낙후된 기반시설 탓에 2007년 뉴타운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인근 주민들은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 때 투자열풍이 보였던 곳이기도 했다. 서계동의 부동산업체 말에 따르면 당시 지가가 평당 1억원까지 치솟았다고 한다. 또 입주권을 노렸던 ‘지분쪼개기’도 성행하면서 신축 건물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도 잠시. 2012년 주민 동의 없이 뉴타운 후보지에서 해제됐고, 이후 2017년에는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주택철학인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됐다.
서계동 통합개발추진협의회 관계자는 “당시 주민과 상의도 없이 뉴타운 후보지에서 해제되면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어요. 그래서 그 이후에도 재개발 사업을 계속 추진하려고 했는데 갑자기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당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주도 하에 도시재생사업지역으로 선정됐다는 거에요”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민들은 당연히 반발했죠. 그랬더니 도시재생에 덧붙여서 이번에는 ‘활성화’라고 붙이더라구요. 구청에다가 요청도 해봤어요. 쪼개기라도 멈춰달라고 하니깐 개발할 수 있는 지구단위가 아닌 건축제한지역으로 묶어놨더라구요. 그 뒤로 탄원서도 내고 했지만 소용도 없었고, 도시재생사업도 그냥 진행됐어요"라고 덧붙였다.
또 추진협의회 관계자는 “다른 도시재생지역과 다르게 서계동에서 벽화를 쉽게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재생사업자들이 골목 안에다 벽화 그리기 시도할 때마다 이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위하고 벽화 그리는 화가들 페인트통 엎어버리고 쫓아내곤 했죠. 오죽했으면 당시 구청장이 서계동처럼 이렇게 심하게 반대하는 사람들 보질 못했다라고까지 했죠”라고 말했다.
물론 도시재생사업은 벽화만 있는 건 아니다. 벽화는 해당 사업의 일부일 뿐, 앵커시설과 전망대 등도 설치했었다고 한다.
추진협의회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했던 도시재생사업이 하나씩 진행돼 가는 과정들을 지켜본 결과, 벽화는 물론이고 이 사업 자체가 허상이었다”라고 비판했다. 용산구청이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서계동에 ‘펜트하우스’급 앵커시설을 건축했다고 했는데 평당 건축비가 2000만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민들은 용산구청에 도시재생사업의 예산집행 내역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한다. 평당 400~500만원이면 충분한 건물을 왜 2000만원씩이나 들면서 지었을지 아직도 의문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도시재생사업 일환으로 설치됐던 ‘청파언덕 전망대’도 현재 이 곳 주민들은 ‘쓰레기전망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인근 한 주민은 “이곳에 관광객이 왔다면 아마 쓰레기 더미만 구경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에서는 도시재생구역마다 수십억에서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산이 투입됐지만 서계동처럼 결과는 좋지 못했다. 기반시설 등 주거환경 개선보다는 주로 벽화그리기나 지원센터건립 등에 예산이 쓰이면서 주민들은 도시재생사업으로 인한 개선이나 변화를 그다지 체감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주민들의 시선 또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곱지 못한 모습이다. 기반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통합 재개발로 싹 바뀌어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거기다 서울역 뒤쪽이라는 최상의 입지 여건도 갖췄다.
주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공공재개발 사업에라도 희망을 걸었지만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다. 1차 공모에 이어 2차 공모 모두 지원했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신 것이다. 여전히 도시재생사업에 묶여있다는 이유에서다. 서계동 재개발추진 준비위원회의 윤희화 위원장은 “도시재생법을 상위법으로 올려놓고 그 아래 재개발이나 재건축 등이 있다. 도시재생 프레임에 걸려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토로했다.
뉴스웨이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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