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시장 규모 1兆···VIP 고객 많은 백화점 출사표백화점 '빅3' 고객에게 "경험 판다" 관련 사업 확대미술 작품에 NFT 적용도···커머스 융합 신사업 구상
# 서울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는 80억원에 이르는 작품이 등장했다.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 프리뷰로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을 전시한 것. 현대미술의 거장이라 불리는 이우환, 국내 1세대 행위예술가 이건용 작가의 작품도 '백화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유통업체가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 비즈니스'에 주목하고 관련 시장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그간 미술품 매매는 경제력과 지식을 갖춘 특정 중장년층이 주로 참여해왔다. 작품 가격이 비싼 데다 작품과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장벽이 높았지만, 이제는 젊은 층까지 미술 시장에 등장하면서 대중적인 관심도가 높아졌다.
또 사회 전반적으로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가진 제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소비하는 '가치 소비' 풍토가 퍼지며 예술 작품에 대한 소유 욕구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미술품 수요 증가에···관련 사업 뛰어든 백화점 = 국내 미술 시장은 성장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10월 코엑스에서 진행된 KIAF(한국국제아트페어)는 코로나19 상황에서도 650억원의 판매고를 올려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업계는 국내 미술 시장 규모를 5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하는데, 곧 1조원까지 넘보는 규모로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통 유통업체 중 아트 비즈니스에 가장 관심이 높은 곳은 백화점이다. 소비자들에게 하나의 문화시설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루에 수백에서 수천만원을 쓰는, 고가의 미술품을 소비할 여력이 충분한 '큰손 고객'도 많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예술품 판매 매출이 지난해 3분기(7~9월) 대비 4분기(10월~12월) 3배 이상 증가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이 기존의 미술관이나 갤러리보다는 심리적인 진입장벽이 낮고 친숙한 공간이기 때문에 다양한 고객들로부터 미술 작품 구매에 대한 문의가 발생하고 있는 편"이라면서 "다만 실제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아무래도 원래 미술품에 관심이 많았거나, 구매 경험이 있는 고객이 주를 이루며 롯데백화점 우수고객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롯데백화점은 이런 니즈를 반영해 지난해 11월부터 예술 작품에 관심이 많은 우수고객을 초청해 엄선한 작품들을 선보이는 '아트 컨시어지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 서비스를 통해 약 6억원 상당의 작품이 판매되기도 했다.
지난해 9월에는 아트 비즈니스팀도 신설했다. 아트 비즈니스팀은 국내외 유명 작가를 초청하거나 신진 작가를 발굴해 작품을 소개·판매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내 갤러리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본점 에비뉴엘관 등은 층별·상품군별 분위기에 맞는 작품을 큐레이션해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소개한 미술품은 2020년 8월부터 올 1월까지 총 900여점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강남점을 비롯해 신세계백화점 갤러리 내 미술품을 구매하는 주 고객층은 30대에서 40대로 집계됐다. 방문하는 고객 대부분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높은 편이다.
신세계는 1966년 국내 백화점 최초로 조직 내 갤러리만 따로 운영하는 갤러리팀을 신설했다. 신세계 갤러리팀은 국내외 작품을 소싱, 전시를 기획해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고객들은 작품의 감상과 구매를 동시에 할 수 있다.
2020년 8월부터는 강남점 3층 곳곳에 예술 작품 250여점을 상설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에서 예술 작품 직접 판매에 나선 것은 신세계백화점이 최초다.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은 매장 벽을 비롯해 통로 고객 라운지 등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상주하는 전문 큐레이터를 통해 작품 설명을 듣고 살 수 있다.
현대백화점은 본사 영업 전략실 문화콘텐츠팀에서 전문 큐레이터를 포함한 인력이 전시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2015년 개장한 판교점은 현대백화점의 아트 비즈니스 중심이다. 판교점은 어린이 대상 정부등록 1종 미술관인 현대어린이책미술관(MOKA)를 운영하고 매년 3월과 10월 '아트 뮤지엄'을 열고 있다. 아트 뮤지엄에서는 예술 작품 전시는 물론 1000만원에서 수억원에 달하는 작품 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킨텍스점에서 '더아트에이치(The Art H)'를 열어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 120여점을 전시·판매했다.
올해에는 국내 대표 아트페어 중 하나인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BAMA)'와 손잡았다. 다음달 6일까지 더현대 서울 지하 1층 특별 전시장에서 'BAMA 프리뷰 in 더현대 서울'을 개최하고 국내외 유명 갤러리 24곳이 국내외 작가 50여 명의 회화·조각·설치 예술 등 작품 160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는 전문 도슨트(작품 설명 안내인)가 상주해 고객이 원할 경우 작품 설명 및 구매 상담이 가능하다.
◇"유통업체는 문화시설, 아트 비즈니스 더 강화할 것" = 업계는 앞으로도 백화점을 '화랑'처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대규모 고객들에게 백화점이 하나의 문화시설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혔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홈퍼니싱(home furnishing)'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2030 젊은 고객들도 예술 작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만큼 백화점 내 아트갤러리에 대한 고객들의 수요는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아트 비즈니스를 단순 상품의 판매라고 보는 경향이 있지만, 넓게 보면 아트라는 매개체를 통해 백화점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콘텐츠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결국 고객 경험을 확대하는 것은 백화점에 오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기는 것이고, 이것이 곧 비즈니스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백화점 3사 또한 예술과 연관된 다양한 서비스를 선보여 고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겠다는 전략이다. 우선 롯데백화점은 전시기획과 운영 퀄리티 개선에 초점을 맞추고 아트페어나 굿즈기획, 판매 등 예술과 연계할 수 있는 요소를 다양하게 발굴해 나갈 예정이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백화점은 계속 경험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데, 그림 역시 이런 요소 중 하나"라며 "오히려 화랑이 아닌 백화점에 가야 더 멋지고 아름다운 그림과 전시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까지 심어주고 싶다. 궁극적으로는 아트를 백화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 요소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신세계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대중 고객들에게는 예술의 문턱을 낮추고 신진 작가들에게 더욱더 다양한 전시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올 상반기 중에는 신세계백화점 모바일 앱 서비스인 '신세계 아트 스페이스'를 새롭게 기획해 고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지난 몇 년 사이 미술 시장은 크게 성장하며, 전문 화랑이나 아트 전시 또한 성장하고 있다"면서 신세계백화점은 일반 고객들이 쉽게 넘지 못했던 갤러리의 문턱을 낮추고 신세계를 통해서 편안하고 즐거운 체험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백화점은 '아트 페어'에 국한하지 않고 고객 경험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겠다는 전략이다.
◇NFT로 작품 고유성 인증···전문 상품·플랫폼도 등장 = 대제불가능토큰(NFT)을 미술 작품에 적용하는 사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NFT는 블록체인 기술을 토대로 디지털 아이템의 소유권, 거래 이력 등을 기록한 디지털 토큰이다. 복제나 위조가 불가능해 실물자산은 물론 가상자산의 고유성과 희소성을 인증해주는 '인증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작품에 NFT 기술을 접목해 작품 소유권을 보장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미술품 거래도 더욱 활발해지는 추세다. 실제 세계 최대 NFT 거래 플랫폼 '오픈씨'의 경우 지난 1월 거래액이 58억달러를 넘어섰다. 불과 2년 전 전 세계 NFT 시장 규모가 연간 100억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관련 시장이 폭증한 것을 더욱 체감할 수 있다.
그간 미술품은 화랑이나 전문 경매 등을 통해서 주로 유통됐다. 그러나 NFT 플랫폼을 활용하면 신진 작가들도 충분히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손쉽게 작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된다.
신세계는 오프라인 판매에 외에 NFT 판매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옥션에 280억원을 투자해 지분 4.82%를 인수했다. 이와 함께 함께 최대주주 서울옥션 지분 매도 시 우선 매수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과 같은 조건으로 매도할 수 있는 동반매도참여권 등의 옵션 계약도 체결했다.
신세계는 서울옥션이 NFT으로 제작한 한정판 예술품이나 명품을 판매하는 NFT 경매 사업에 뛰어든 점을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옥션과 함께 미술 대중화를 목적으로 국내외 유명 작품들의 디지털 판화 및 신진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프린트 베이커리'를 열기도 했다.
T커머스 업체 중에서는 KT알파가 커머스와 NFT를 융합한 신규시장을 새 먹거리로 점찍었다. KT알파가 운영하는 K쇼핑은 'NFT를 활용한 아트 비즈니스'에 주목하고 아트테인먼트 컴퍼니 '레이빌리지' 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레이빌리지는 기업들의 아트 비즈니스 관련 기획·전시를 담당하고 구준엽·하정우·하지원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국내외 전시 및 아트 컨설팅, 영상물 제작 등을 진행했다. 미술작품을 포함해 음원과 영상, 한류 관련 IP(지적재산권)를 확보했으며 NFT 플랫폼을 통한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K쇼핑은 레이빌리지 소속 작가의 미술작품 및 작품과 관련된 디지털아트 결합형 NFT상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상품을 공동 개발하는 한편, K쇼핑 라이브커머스를 통한 신개념 커머스 방송 형식으로 상품을 판매할 계획이다. 해당 방송의 판매수익금은 전액 문화예술 진흥을 위해 기부한다.
미술 NFT 전문 플랫폼도 등장했다. '아트레이스'의 글로벌총괄 데이빗 윤 CGO는 "그동안 소외받던 창작자들도 NFT 거래로 연결되는 글로벌 마켓을 통해 자신의 작품의 가치에 따른 보상을 받을 기회가 생겼고 아트레이스와 같은 미술플랫폼 NFT를 통해 저작권에 대한 보호도 확실하게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뉴스웨이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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