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따르면 가계대출은 지난 4월부터 주담대를 중심으로 폭증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 4월부터 매달 5~6조원가량 불어나고 있는데요. 금융당국은 이달 가계대출 증가세가 올해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지난 28일 금감원은 브리핑을 통해 국내 4대 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액이 연초 계획 대비 150.3% 수준이라고 발표했습니다. 8월이라면 연간 목표치의 60~70% 수준이어야 하는데, 이미 계획의 두 배가량 넘어선 셈이죠. 이에 금감원은 "적절한 관리 수준 범위를 벗어났다"며 적극적인 개입을 시사했습니다.
문제는 금융당국이 이 같은 가계부채 증가의 책임을 은행권에만 전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25일 KBS에 출연해 "최근 은행 가계대출 금리상승은 당국이 바란 게 아니다"라며 은행권을 강하게 질타했는데요. 당국의 명확한 감독 방향은 실종된 채 대출 실수요자인 서민들의 금융 부담만 가중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가계대출 증가와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에 대한 첫 번째 책임은 금융당국이 짊어져야 합니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시행을 2개월이나 미루지 않았다면 막차에 탑승하기 위한 대출 수요는 이렇게까지 늘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은행권의 금리 인상에 판을 깔아줬던 당국이 이제 와서 "금리 인상을 바라지 않았다"고 하는 건 국민들을 기만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5대 은행은 지난 7월 이후 무려 22차례나 금리 인상했는데요. 이복현 원장이 "성급한 금리인하 기대감, 국지적 주택가격 반등에 편승한 무리한 대출 확대는 안정화하는 가계부채 문제를 재차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이후부터입니다.
금감원의 채찍질에 화들짝 놀란 은행들은 잇따라 대출금리를 인상했고, 지난 2개월 동안 금감원은 뒷짐을 지고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정말 금감원이 금리 인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이미 지난달에 제동을 걸어야 했다고 봅니다. 결국 물가 상승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을 꾸리고 있는 서민들은 금리인하기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높은 금리로 주담대와 전세대출을 받아야 했습니다.
금리 인상만으로 가계대출을 관리하려 한 은행들이 잘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 애초에 대출 수요를 한껏 부풀려놓고 이제 와서 연일 은행만 때리는 금감원의 모습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가계대출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탓에 은행들은 대출을 더 이상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습니다. 지난 7~8월 사이에 대출을 실행한 차주들은 높은 이자 부담을 안게 됐고, 신규 대출을 받으려는 차주들도 어려움을 겪을 게 뻔합니다.
특히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이복현 금감원장의 발언은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시간도 주지 않고 관치금융에만 매달린다면, 금융시장의 혼란과 실수요자들의 고통만 가중될 겁니다.
금감원이 떠들어 대는 동안 은행은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며 배를 불렸고, 서울의 주요 아파트 단지들도 연일 신고가를 갈아치우고 있습니다. 여전히 수도권 부동산 투기 세력은 활개를 치고 있는데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죠.
가계대출의 대부분은 주담대가 차지하고 있고, 결국 높은 집값을 잡지 못한다면 가계대출도 증가세를 막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금감원이 개입한다고, 대출금리를 인상한다고 하늘 높이 치솟는 집값이 뚝 떨어질 수 있을까요?
부동산과 가계대출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모든 관계 부처가 원팀으로 뭉쳐야 합니다.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국은행을 비롯해 대통령실,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까지 모든 부처가 "집값을 잡겠다"는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획기적인 서울 아파트 공급정책과 합리적인 금융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집값·가계대출 잡기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뉴스웨이 박경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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