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엔 실적만, 책임은 없다···종심제의 구조적 맹점직접 공사한 하청만 처벌···원청은 수주 실적만 누적이제야 칼 뽑는 정부···LH·서울시등, 입찰제한 첫 걸음
5일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 등 업계 자료를 종합한 결과, 최근 3년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국내 주요 건설사들의 공공입찰 자격이 대부분 유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 중에서 중대재해를 이유로 공공입찰 자격에 제한을 받은 사례는 GS건설이 유일했다. GS건설은 지난해 발생한 안전사고로 LH로부터 1년간 입찰참가 자격 제한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반면, 반복되는 사망사고에도 불구하고 다수 건설사들은 여전히 서울시·LH 등 주요 발주처의 입찰에 참여 중이다. 특히 올해에만 5건 이상의 사고를 낸 포스코이앤씨는 개포우성4차, 용산정비창 등 주요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 이름을 올리며 사고 이력과 무관하게 수주가 가능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는 민간 정비사업장 또한 마찬가지이며, 사고 여부가 시공사 선정에 실질적인 제약이 되지 않는 구조임을 방증한다.
이 같은 일이 가능한 것은 현행 공공입찰 제도의 구조적인 맹점 때문이다. 대표적인 공공수주 방식인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는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기술력, 시공 실적, 무사고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낙찰자를 결정한다. 그러나 무사고 실적에는 가산점을 부여하는 반면, 중대재해와 같은 사고 이력에 대해서는 감점 요소가 사실상 미미하고,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규정도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중대한 사고를 일으킨 건설사도 입찰 자격을 유지한 채 공공수주에 계속 참여할 수 있다는 구조적 허점이 지속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심제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사고 예방보다 실적 중심 평가에 무게가 실려 있는 현실이 드러난다. 실제 종심제 평가 항목을 보면 '공사 수행능력', '시공 실적', '가격 점수' 등에 높은 비중이 배정되는 반면, '사회적 책임(안전 등)' 항목은 여전히 5점 내외에 그친다. 최근 건설안전 관련 감점 항목이 일부 도입됐지만, 실질적인 감점은 드물고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이다. 따라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수주 실적만 쌓이면 입찰 경쟁에서 큰 불이익 없이 계속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 2016년부터 도입돼 300억원 이상 대형공사의 낙찰 방식으로 활용되는 제도이며, 대형사 대부분이 공공수주에 참여할 때 이를 선택하기도 한다. 또 형태는 다르지만, 민간 정비사업장 역시 사실상 종심제와 유사한 평가 구조를 따른다. 조합은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시공 실적, 브랜드 인지도, 무사고 이력, 가격 제안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공공 발주기관의 입찰 평가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듯 종심제를 비롯해 적격심사제, PQ(사전심사제도) 등 다양한 입찰 평가 제도가 운영되고 있음에도 중대재해 발생 여부가 평가에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는 거의 없다.
설령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실질적 책임은 하청업체에 집중되는 구조다. 대형 건설사는 대부분 고위험 공정을 하청에 맡기고, 사고 발생 시에도 "직접 시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 책임을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즉, 원청은 '관리·감독 책임' 정도로만 책임이 분산되는 구조다. 그러면서도 수주 실적은 원청사에 귀속돼, 사고 이후에도 공공수주 경쟁에는 계속 참여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모 건설사는 올해 남양주 현장에서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가 있었지만, 별다른 제재 없이 공공입찰에 참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현재의 종심제는 사고 이력에 대한 실질적인 페널티가 없어, '무사고는 보상, 사고는 무대책'이라는 아이러니를 낳고 있다"며 "일부 발주기관은 사고 이력에 대한 감점 항목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감점 수준은 미미하고 수주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두고 최근 정부와 일부 공공기관들은 뒤늦게 칼을 빼들기 시작했다. LH는 작년에 GS건설에 1년간 입찰제한 조치를 내린 바 있었고, 서울시는 올해 1월 '안전지수제'를 도입해 안전관리 실적을 정량 평가에 반영하며, 일정 점수 미달 현장에는 입찰 불이익이나 공사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최근 국회에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에는 중대재해 발생 시 입찰 제한, 연매출 대비 최대 3% 과징금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이 담겨 있다.
국회에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은 발주자·설계자·시공자·감리자 등 건설현장 전 참여자에게 안전관리 의무를 부과하고, 사망 사고 발생 시 연매출의 최대 3% 과징금 또는 1년 이하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행정처분을 가능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 조항도 포함돼 있다. 기존 중대재해처벌법이 주로 경영책임자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법은 현장 전반에 책임을 분산하고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다만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도 부담인데, 또 다른 규제까지 더해지면 사실상 이중처벌"이라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편, 국토교통부도 종심제의 평가 기준과 배점 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착수했다. 최근에는 학회·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2기 평가위원회(316명)를 구성해 정성평가 축소, 평가 항목 정량화, 심의 결과 온라인 공개 등을 통해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다만 이 개선안은 연내 개정 추진 예정으로, 실제 공공입찰에 반영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뉴스웨이 김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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