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AI 버블 우려보단 '지원' 선행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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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버블 우려보단 '지원' 선행돼야

등록 2025.12.19 08:35

유선희

  기자

reporter
요즘 제기되는 인공지능(AI) 거품론을 들여다보면 19세기경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집필한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구절이 떠오른다.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라는 말이다. 현대로 돌아오면 유럽은 '시장'으로, 공산주의는 'AI 거품'으로 치환된다. 다만 이 뒤에 따르는 내용은 약간 달라진다. 공산주의를 사냥하기 위해 교황과 차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의 급진파, 독일의 비밀경찰은 신성 동맹을 맺었다. 오늘날에는 미국 월가 등 주식 시장 중심으로 AI 산업에 대한 우려와 회의가 불거지는 중이다.

주요 AI 기업들이 AI로 수익을 당장 내지 못하면서도 기업가치는 급상승하는 한편, 순환거래와 자본 지출을 과도하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주장의 중심에는 미국을 기반으로 한 오픈AI가 서있다. 2015년 설립된 스타트업 오픈AI는 챗GPT 유료모델 출시를 통해 AI 수익화에 성공했지만 연구개발과 향후 AI 모델 확장을 위한 자금 기반이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유동 자금이 부족하다 보니 협력사 간 순환거래가 발생해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 오라클은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 건설을 위한 100억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에 난항을 겪고 있다. 오라클의 AI 인프라 투자가 급증한 영향으로 부채도 빠르게 늘면서 재무 건전성에 타격이 생긴 영향으로 분석된다.

얼마전 'AI 3대 강국'을 선언한 한국은 AI 거품론에 대해 낙관적인 분위기다. 배경훈 부총리는 최근 'AI 거품은 절대 안 온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우리 민간 기업들이 연구에 집중해 사업적인 성과를 내고,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대안인 신경망처리장치(NPU) 중심으로 AI 칩 확대가 이뤄지면 건전한 AI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시각이다. 내년에는 AI 분야 연구개발(R&D) 예산만 10조원을 책정해 국가적 지원을 예고한 상태다. 정부의 내년 전체 R&D 예산이 35조5000억원이란 점을 고려하면 AI에 약 3분의 1을 할당한 셈이다. 물론 미국이 AI 인프라 구축 프로젝트 '스타게이트' 하나에만 5000억달러(약 725조원)를 쏟아붓겠다는 계획을 내세운 것과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작은 규모다.

최근 들어서야 정부가 본격적인 지원에 나선 데다 투자 규모, 산업 성숙도를 고려하면 우리나라 AI 산업을 대상으로 거품론을 언급하기는 아직 이른 단계로 보인다. 국내 AI 스타트업 상당수는 코스닥 시장에 상장을 갓 마쳤거나 투자 라운드는 초기와 중기 단계에 분포해 있다. 수익화에 성공해도 안정적인 흑자 경영 기조를 유지하는 곳도 드물다. 아직 제도적 정비도 끝나지 않았다. AI 발전에는 데이터센터가 필수지만 수도권 전력 수요 불균형이 계속되는 등 전력 인프라 개선을 위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관련 업계에서는 데이터센터·GPU 등 초기 설비 투자 지원이 아직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AI 시장 발전을 위해선 정부 역량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AI 산업에서 후발 주자로 나선 한국이 기술 발전과 건전성을 동시에 잡으려면 선발대에서 불거지는 거품론을 반면교사로 삼고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AI 산업은 단기간의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영역이다. 지금 필요한 건 속도보다 투자와 제도, R&D 역량 강화의 삼박자다. 정부가 이를 조율해 정교한 산업 지원책을 내놓는 것은 한국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지을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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