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성과 없는 세대교체, 설명 없는 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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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없는 세대교체, 설명 없는 승진

등록 2025.12.24 09:42

김다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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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인사철이 되면 식품업계에서는 익숙한 풍경이 반복된다. 오너 2·3세의 승진 소식이다. 전무, 부사장, 대표이사 선임까지 직함은 높아지지만 인사 배경은 늘 같다. 경영 수업, 중장기 승계 준비, 미래 경쟁력 강화. 표현은 바뀌지 않고, 설명은 더 짧아진다. 무엇을 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에 대한 문장은 좀처럼 찾기 어렵다.

최근에는 인사 대상자의 연령대가 눈에 띈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출생의 젊은 오너들이 주요 계열사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세대교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따라붙지만 정작 그 세대교체가 어떤 기준과 검증을 거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대는 바뀌었지만 인사를 설명하는 언어는 그대로다.

인사 발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경영 참여 확대'다. 앞으로 더 많은 역할을 맡을 것이고 책임이 커질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러나 그 이전의 시간은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어떤 사업을 담당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실패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생략된다. 출발선은 강조되지만 그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과정은 비어 있다.

이 지점에서 조직 내부의 온도 차가 발생한다. 전문경영인과 실무자들은 매출 성장, 수익성 개선, 비용 절감, 사업 확장 같은 비교 가능한 지표로 평가받는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성과는 성과로 인정받기 어렵다. 반면 오너 인사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인사 발표에서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같은 '승진'이지만 적용되는 기준은 다르다.

식품업계의 산업 구조는 이런 인사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이 된다. 필수 소비재를 기반으로 한 내수 중심 시장, 장기간 축적된 브랜드 파워는 사업 변동성을 낮춘다. 단기간에 실적이 급락할 가능성도, 대규모 구조조정이 필요해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적다. 안정적인 산업 환경은 인사에서도 긴장감을 낮춘다. 성과보다 '참여 여부'와 '가문 내 위치'가 먼저 언급되는 이유다.

물론 젊은 오너들이 신사업이나 글로벌 전략에 관여하는 사례는 존재한다. 일부는 디지털 전환이나 해외 시장 확대를 명분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다. 그러나 그 관여가 실제로 어떤 변화로 이어졌는지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다. 인사 자료에는 역할 확대가 강조되지만, 그 역할이 만든 결과는 빠져 있다. 기대는 있지만 검증은 없다.

문제는 이런 인사가 반복될수록 '세대교체'라는 말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점이다. 세대교체는 단순히 나이가 젊어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방식이 달라지고 판단 기준이 바뀌며, 성과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결과로 설명되지 않는 변화는 교체가 아니라 연속이다.

승진이 출발선이라면 그 다음에는 결과가 따라야 한다. 어느 시점에는 무엇을 달성했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설명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대교체는 혁신이 아니라 관성에 머문다. 식품업계에 필요한 것은 또 다른 젊은 오너가 아니다. 인사를 통해 무엇이 달라졌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성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기준이다. 설명 없는 승진이 반복되는 한, 성과 없는 세대교체라는 비판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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