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앞단서 파는 K-바이오, 뒷단 보는 정책

오피니언 기자수첩

앞단서 파는 K-바이오, 뒷단 보는 정책

등록 2026.01.08 17:16

현정인

  기자

정부, 1500억원 규모 임상 3상 복합 펀드 신규 조성 밝혀국내 제약·바이오, 전임상·임상 1상서도 자금 조달 우려역대급 기술수출에도 자체 임상 역량은 아직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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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기술수출 20조원 시대를 열었다. 숫자만 보면 이미 다음 단계에 들어선 듯하다. 그렇다면 K-바이오는 '완주형 신약 개발' 단계로 넘어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성과와 현실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한다.

정부는 최근 올해 1500억원 규모의 임상 3상 복합 펀드를 새롭게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임상 3상은 신약 개발의 마지막 관문이자 성공 시 상업화로 직결되는 단계다. 동시에 가장 많은 자금과 시간이 투입되는 구간이기도 하다. 정책의 취지는 분명하다. 국내에서도 임상 3상을 자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산업의 현재 위치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대다수는 여전히 전임상이나 임상 1상 단계에서 기술이전을 통해 성과를 내는 구조에 머물러 있다. 단순 사업 전략의 선택보단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임상을 감당할 수 있는 기업이 극히 제한적인 현실에 가깝다. 정부가 임상 3상 지원에 나선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만 문제는 필요성이 아닌 '시점'에 있다.

글로벌 빅파마의 전략 역시 전임상과 초기 임상 단계에서 기술을 이전하는 흐름과 방향을 같이하고 있다. 빅파마들은 설계 리스크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상 중·후반 단계보다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 단계에서 기술을 도입하는 데 더 적극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내 기업의 '조기 기술이전' 모델은 트렌드와 맞물린 현실적인 성장 경로로 자리 잡아왔다.

현장에서는 이를 단기적 한계가 아닌 중장기 전략으로 받아들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최근 만난 한 바이오텍 대표는 "전임상과 임상 1상 단계에서 기술이전을 반복해 자금을 확보한 뒤 자체 임상으로 신약 개발을 완주하고 싶다"고 밝혔다. 앞단에서의 성과 축적이 곧 뒷단으로 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기업들의 목표를 놓고 보면 임상 3상 지원 정책은 산업의 현실보다 앞서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결국 현재 상황에서 정책의 시선이 마지막 단계로 향할 경우 지원의 실효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 정책이 겨냥한 시점과 산업의 평균 위치가 아직 맞지 않기 때문이다.

임상 3상 지원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니다. 순서의 문제다. 현재는 산업 생태계가 충분히 커지는 게 우선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전임상과 초기 임상 단계에 대한 투자 확대, 그리고 기술이전이 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앞단이 탄탄해야 뒷단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임상 3상까지 완주할 수 있는 기업은 축적된 성공 사례 속에서 등장할 수 있다.

기술수출 20조원이라는 성과는 분명 의미 있다. 그러나 K-바이오가 진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산업의 현재 위치를 정확히 짚는 일이다. 성장에는 방향뿐만 아니라 순서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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