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배불러야 세상이 평화롭다"는 신념으로 국내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을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삼양식품의 창업자 전중윤 명예회장인데요.
1919년 강원도 김화군에서 태어난 전중윤 회장은 1961년 삼양제유주식회사를 설립하고 식용유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엔 언제나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때우며 버티던 서민들에 대한 걱정뿐이었죠.
이에 과거 일본에서 먹었던 라면을 떠올린 전 회장. 정부에서 돈을 빌려 일본으로 건너가 라면 전문회사인 '명성식품(明星食品)'으로부터 기계와 기술을 도입합니다. 그리고 1963년 9월 15일 한국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내놨죠.
분식장려운동 등의 영향으로 국민 간식이 된 삼양라면. 한창 잘나갔지만 1989년 제조 과정에서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추락합니다. 7년 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삼양라면의 존재감은 살아나지 않았고, 삼양식품도 긴 침체기에 빠졌죠.
시간이 지나 노쇠한 전중윤 회장은 2010년 아들 전인장 회장에게 회사를 물려주고 자리에서 내려왔는데요. 전인장 회장 취임 후 삼양식품은 외식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지만 부진했고, 라면 점유율은 더 떨어집니다.
뒤로 물러났던 전중윤 회장은 새로운 카드를 꺼냈습니다. 전인장 회장의 아내이자 자신에겐 맏며느리인 김정수 대표이사 부회장을 경영 전면에 내세운 것. IMF 시절 회사에 합류한 며느리가 그간 영업과 해외사업 등에서 보여준 역량을 높게 본 전 회장의 판단이었습니다.
구원투수 김정수 당시 부사장이 고심 끝에 찾은 건 명동의 매운 맛집이었습니다. 거기서 땀을 뻘뻘 흘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젊은이들을 보며, 단순한 식사가 아닌 '매운맛으로 위로받는 MZ세대의 새로운 식문화'를 꿰뚫어 본 것이죠.
그렇게 닭 1200마리와 소스 2톤을 쏟아부은 끝에 그녀와 연구팀은 '맛있게 매운맛'을 완성했습니다. 너무 맵다는 내부 우려에도 불구하고, "젊은 층은 이 강력한 매운맛을 도전 과제처럼 즐길 것"이라던 김 부사장의 타깃 분석은 적중합니다.
이 전략은 라면을 단순한 식품에서 놀이 콘텐츠로 탈바꿈시켰는데요.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 역발상 마케팅 덕분에, 삼양은 우지 파동의 낡은 이미지를 벗고 가장 트렌디한 브랜드로 부활하기에 이릅니다.
챌린지 문화는 언어 장벽을 넘어 해외에서도 통했습니다. 외국인들의 '파이어 누들' 영상이 쏟아지는 가운데, BTS 지민의 먹방까지 더해지며 불닭은 전 세계인이 즐기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죠.
철저한 시장 분석과 팬덤 마케팅의 결과는 숫자로 증명됐습니다. 삼양식품은 2024년 수출 1조 3359억 원을 달성, 부동의 1위였던 농심을 제치고 '라면 수출 1위'라는 새 역사를 씁니다.
이에 삼양식품은 확장했던 사업들을 대거 정리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라면에 집중하고 있는데요. 100여 개국에 라면을 수출하며, 지난해엔 식품업계 최초로 '9억불 수출탑'을 수상했습니다. 김정수 부회장은 K푸드의 위상을 높인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았죠.
아무도 기대하지 않을 때 김정수 부회장이 내놓은 불닭이라는 그 한 수가 삼양식품의 대역전극을 이뤄냈습니다. 누구에게나 선택의 기로가 찾아옵니다. 그때 '신의 한 수'를 둘 수 있도록 잘 준비해야겠습니다.
뉴스웨이 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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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박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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