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석유화학이 멈추면 대한민국도 멈춘다

오피니언 기자수첩

석유화학이 멈추면 대한민국도 멈춘다

등록 2026.03.23 06:38

전소연

  기자

reporter
"단기간에 원료를 수급해 올 방법이 없어요. 이제 재고도 얼마 없고요. 석유화학 공장이 멈추면 정유사도 멈추게 되고, 결국 나라 전체가 멈추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가 깊은 위기에 빠졌다. 부진한 업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규모 구조재편에 나서고 있지만, 이번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또 다른 리스크에 놓였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납사) 등 핵심 원재료 수급까지 휘청이기 시작하면서 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반도체나 조선, 방산과 달리 석유화학은 근 몇 년간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중국발(發) 공급 과잉은 가동률 하락과 제품 스프레드 축소를 불러왔고, 이는 곧 수익성 악화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업계 전반이 사실상 '버티기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기간 업계가 선택한 건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이었다. 비핵심 자산을 정리하고 설비를 통폐합하며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업황 자체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근본적인 해법이 되지는 못했다. 정부의 거센 압박 속에 일부 기업들의 구조개편이 점차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재료 수급 불안까지 겹치며 업계 부담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처럼 기초 체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원재료 수급난이라는 변수까지 겹치자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여천NCC를 비롯해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대부분의 기업은 제품 공급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발동하는 조치인 '불가항력' 가능성도 속속 고지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석유화학 산업이 정유를 비롯해 철강,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국내 제조업 전반과 맞물린 기초 소재 산업이라는 점이다. 국내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뿌리 산업'인 만큼, 석유화학이 흔들리면 산업 전반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 "석유화학이 멈추면 나라가 멈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정부의 지원은 다소 아쉽다. 업계에서는 나프타 수급 차질과 가격 급등으로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하지만, 당장 이렇다 할 뚜렷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수급 안정 대책과 비용 보전 등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구조개편 역시 속도보다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비 축소나 통폐합, 자산 매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석유화학은 결코 사양 산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제조업을 떠받치는 핵심 산업인 만큼 정부의 보다 뚜렷하고 정확한 지원 정책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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