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K-컬처로 불러도 서울에 묶인다···지방 관광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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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컬처로 불러도 서울에 묶인다···지방 관광의 벽

등록 2026.04.29 12:41

양미정

  기자

지역체류 핵심 장애물 '숙박 인프라'K-문화 유입 외국인, 체험 여행 선호고부가 관광 수요, 지방 확대로 연결 어려워

서울 전경 출처=픽사베이서울 전경 출처=픽사베이

K-팝과 드라마, 한식 등 K-컬처가 외국인 관광객의 방한을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이 같은 수요가 지역 관광 소비와 재방문으로까지 이어지는 구조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을 찾고 싶게 만드는 콘텐츠 경쟁력은 이미 확인됐지만 실제 여행 동선은 서울에 집중돼 있고 지방 체류를 뒷받침할 숙박 및 콘텐츠 인프라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관광 산업의 과제가 '방한 수요 창출'에서 '체류 및 재방문 구조 설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29일 에어비앤비에 따르면 해외 여행자 45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94%는 K-컬처가 한국 여행 관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고, 75%는 이를 한국 방문의 핵심 동기로 꼽았다.

K-컬처가 단순한 이미지 개선 요소를 넘어 실제 방한 수요를 형성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K-컬처 영향을 받은 여행객은 일반 여행객보다 1인당 평균 435달러를 더 지출했으며, 88%는 3박 이상 체류했거나 체류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동반 여행 비율도 68%로 나타나 소비 규모와 체류 기간 모두에서 고부가가치 관광 수요로 확장될 가능성이 확인됐다.

여행 양상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 K-팝 공연장이나 드라마 촬영지를 방문하는 목적형 관광이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한국의 일상과 생활문화를 경험하려는 수요가 확대되는 흐름이다. 응답자의 91%는 한국 여행에서 현지 문화 체험이 중요하다고 답했으며, K-팝 영향을 받은 여행자 가운데 92%는 음식, 역사, 자연 등 보다 폭넓은 경험을 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공유숙박 이용자의 65%는 현지 생활권에 머물기 위해 해당 숙박 형태를 선택한 것으로 조사됐다. 관광의 중심이 '관람형 여행'에서 '체류형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하는 방송인 파비앙은 "경복궁 촬영 등 단발성 방문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찾으며 한국 전통문화와 역사를 깊이 이해하려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온지음의 박성배 셰프도 "외국인들이 퓨전이 아닌 한국 고유의 조리법과 발효 문화에 관심을 보이며, 음식에 담긴 철학까지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K-컬처를 계기로 유입된 관광 수요가 대중문화에서 전통문화, 생활문화로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다만 이 같은 관심이 실제 지역 이동으로 이어지는 정도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조사 결과 응답자의 74%는 드라마와 영화가 서울 외 지역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답했지만 실제 방문객의 66%는 서울에서 대부분의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콘텐츠가 지방에 대한 수요를 형성했음에도 실제 체류로 연결되는 구조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K-컬처 기반 관광 수요가 서울 집중 소비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장 큰 제약 요인은 숙박 인프라다. 응답자의 34%는 서울 외 지역에서 적절한 숙소를 찾기 어려워 여행을 미루거나 계획을 변경할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가족·친구 단위의 독채형 숙소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나, 지방은 호텔 공급이 제한적이고 공유숙박 제도 역시 규제 장벽에 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민박업협회 채보영 회장은 "여행자들은 생활과 맞닿은 공간을 원하지만, 실거주 의무와 주민 동의 요건 등으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숙박 문제는 단순한 시설 부족을 넘어 관광 동선과 소비 구조를 좌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방 방문 의사가 있더라도 체류 인프라가 부족하면 일정은 서울 중심으로 수렴될 수밖에 없다. 체류가 발생하지 않으면 음식, 체험, 교통, 지역 상권으로 이어지는 소비 확장도 제한된다.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콘텐츠 발굴과 함께 숙박 공급 및 제도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재방문 문제 역시 같은 연장선에 있다. 한국 방문 경험이 있는 여행객 가운데 더 많은 지역을 방문하고 싶어졌다고 답한 비율은 47%에 그쳤고, 재방문 흐름도 둔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첫 방문은 K-컬처가 유도할 수 있지만 두 번째 방문은 새로운 목적지와 경험, 체류 편의성이 뒷받침돼야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결국 방한 관광이 지속 가능한 성장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K-컬처를 '방문의 계기'에 그치게 하지 않고, 지역 체류와 재방문으로 연결하는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플랫폼 업계도 이에 맞춰 콘텐츠와 숙박을 결합한 체류형 상품을 확대하고 있다. K-팝 팬덤과 숙박·체험을 연계하거나 한강 교량,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 상징 공간을 숙박 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통 장 문화 체험 등 로컬 콘텐츠를 상품화하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는 K-컬처 기반 수요를 단순 관광이 아닌 체류 경험으로 확장하려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개별 플랫폼 차원의 상품 기획만으로는 서울 집중 구조와 재방문 정체를 해소하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지역 관광 확산을 위해서는 숙박 공급 확대, 교통 접근성 개선, 현지 콘텐츠 확충, 제도 정비 등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K-컬처가 방한 수요를 만들어내는 단계까지는 도달했지만, 이제는 그 수요를 어디에 머물게 하고 무엇을 소비하게 할지 설계하는 단계"라며 "지역 인프라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국인 관광객 증가는 서울 중심의 일회성 소비에 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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