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선 휘발유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유업체 지원책을 내놓기로 하면서 국제 석유시장과 국내 기름값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내 정유시설의 생산 확대를 지원해 석유제품 공급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한국의 기름값은 국제유가뿐 아니라 원·달러 환율과 중동 지역의 원유 공급 및 운송 상황 등 여러 변수의 영향을 받는 만큼 미국의 정책이 국내 가격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질 것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17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미들랜드의 퍼미안 분지를 방문해 수일 내 정유업체 지원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라이트 장관은 미국과 다른 지역의 정유시설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휘발유 가격을 낮추는 데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며, 이날 정유업체 관계자들과 생산량 확대를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 방안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이달 초 미국 정유업체의 가동률은 96.2%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미 높은 가동률을 기록하고 있는 만큼 향후 정부 지원책이 실제 생산량 증가로 얼마나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다만 현재까지 미국 정부가 밝힌 것은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계획이며, 구체적인 지원 규모와 방식, 이에 따른 추가 생산량은 확정되지 않았다.
미국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미국의 일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4.06달러를 넘어섰다. 1년 전보다 약 30% 높은 수준이다. 휘발유 가격 상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미국의 움직임을 주목하는 이유는 국제 석유시장과 국내 에너지 가격을 통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데다 중동산 원유가 여전히 수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의 원유 도입량은 4억6712만배럴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 감소했다. 반면 원유 도입액은 국제유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413억6700만달러를 기록해 전년 동기보다 8.1% 증가했다. 국가별로는 미국산 원유 도입 비중이 20.5%로 반기 기준 처음 20%를 넘어섰고, 중동산 원유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68.7%에서 올해 62.3%로 6.4%포인트 하락했다.
원유 수입처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은 중동 의존도를 낮추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동산 비중이 여전히 60%를 넘는 만큼 중동 지역의 공급 상황과 국제유가 움직임은 국내 에너지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남아 있다.
현재 국내 주유소 기름값은 하락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8월 18일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ℓ당 1862.52원, 자동차용 경유는 1845.78원으로 집계됐다. 17일 기준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87.85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84.50달러, 브렌트유 90.87달러였다.
미국 정부의 정유업체 지원책이 실제 생산 확대와 석유제품 공급 증가로 이어질 경우 국제 석유제품 가격에는 하락 또는 안정 압력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국제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안정되면 원유와 석유제품을 수입하는 국내 정유업체의 비용 부담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일정한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판매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이는 현재 확인된 사실이 아니라 정책이 실제로 시행되고 생산량이 늘어날 경우를 전제로 한 전망이다. 국내 주유소 가격은 국제유가 외에도 원·달러 환율과 유류세, 정유·유통 과정의 비용 등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미국 정유업체 지원책이 발표된다는 이유만으로 국내 휘발유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측하기는 어렵다.
물가 역시 같은 경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제유가가 안정되면 휘발유와 경유 같은 직접적인 에너지 가격 부담이 줄어드는 데 더해 운송·물류 비용과 산업용 에너지 비용의 상승 압력도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원유 수입 비용이 늘어나면서 수입물가를 통해 국내 물가에 상승 압력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정유업체 증산이 한국 물가를 직접 낮추는 것은 아니다. 미국 내 정유시설의 생산 확대가 국제 석유제품 시장의 공급 증가로 이어지고, 그 결과 국제유가나 석유제품 가격이 안정될 경우에 한해 국내에도 간접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현재 국제 석유시장의 핵심 변수로 꼽히는 중동 정세가 변수다. 라이트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오가는 선박 상황과 이란의 석유 수출 문제를 언급하며 미국이 선박 호송 능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높아져 원유 운송에 차질이 발생할 경우 미국 정유업체의 증산 효과가 제한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미국의 정유업체 지원책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국 내 휘발유 가격 자체보다는 국제 석유제품 공급과 국제유가를 통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미국 정유업체의 추가 생산이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지고 중동발 공급 불안까지 완화된다면 국내 기름값과 물가에는 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중동 지역의 공급이나 운송 차질이 확대되면 미국의 증산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
한국의 원유 수입선이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올해 상반기 미국산 원유 도입 비중은 처음으로 20%를 넘어선 반면 중동산 원유 비중은 62.3%로 낮아졌다. 다만 여전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향후 국내 기름값과 물가 흐름은 미국의 정유업체 지원책뿐 아니라 실제 증산 규모와 국제유가, 중동산 원유 공급 상황, 호르무즈 해협의 운송 여건, 원·달러 환율 등 복합적인 요인에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뉴스웨이 김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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