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시작된 블록체인 혁명에 이어 투자자들이 블록체인에 기반을 둔 가상자산(또는 디지털자산)을 재산물 혹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물로 인식하게 된 지 오래다. 투자자들은 온체인으로 가상자산을 직접 주고받으면서 개인 지갑에 저장해 둘 수도 있고, 오프체인에서도 DB형 원장을 갖춘 가상자산거래소 등 중개업자를 통해 가상자산을 사고팔며 거래소나 보관·관리업자에게 보관을 위탁할 수도 있다.
가상자산에 관계된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지분증명(PoS) 체계이면, 그 맡겨둔 가상자산으로 해당 블록체인의 블록 생성과 검증 과정인 스테이킹에 참여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 투자자는 스테이킹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고, 최저 단위 요건을 맞추기 어려우면 이용하는 가상자산사업자의 스테이킹 서비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스테이킹에 참여하고 할당되는 새로운 가상자산을 분배받을 수도 있다.
이때 이용자(고객)들이 불안해할 수 있는 중요한 이슈가 하나 있다. 가상자산거래소나 보관·관리업자(커스터디언) 등 사업자를 이용하며 맡긴 돈(예치금)이나 가상자산은 누구의 것일까 하는 문제다. 고객들은 사업자가 파산하더라도, 당연히 고객(이용자)의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는 이용자의 예치금과 가상자산 보호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가상자산사업자는 법에 따라 이용자 예치금을 고유재산과 분리해 그 예치금이 이용자 재산이라는 뜻을 밝혀 예치하거나 신탁해야 하고 사업자가 파산선고를 받게 되면 은행 등은 예치·신탁된 예치금을 그 이용자에게 우선하여 지급해야 한다. 지급 방법과 절차는 같은 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지만 파산 사업자의 파산재단에 귀속돼 일반 채권자와 같이 취급받는지, 아니면 이용자의 재산인 만큼 고객이 별도로 환급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또한, 사업자는 이용자가 보관을 위탁한 가상자산을 사업자의 가상자산과 분리해 보관하고, 동종·동량의 가상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사업자 자산과 분리 보관되는 고객 가상자산에 대한 '파산-절연' 보호에 관한 구체적 특례 규정은 없다.
일반적인 파산 시 취급 관계 규정은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채무자회생법)에 있다. 이 법 제382조는 '파산재단'을, 제407조는 '채무자에게 속하지 아니한 재산의 환취'를, 제423조는 '파산채권'을, 제424조는 '파산채권의 행사'를 규정하고 있다. 제382조는 "채무자가 파산선고 당시에 가진 모든 재산은 파산재단에 속한다"고, 제407조는 파산선고는 채무자에 속하지 아니하는 재산을 파산재단으로부터 환취하는 권리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한다라고, 제423조는 채무자에 대하여 파산선고 전의 원인으로 생긴 재산상의 청구권을 파산채권으로 한다고, 제424조는 파산채권은 파산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행사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다. 또한, 파산재단을 원상으로 회복시키는 부인권 행사에 관한 조항도 존재한다(같은 법 제391조 이하).
문제는 채무자회생법에서 '파산재단'을 규정한 제382조와 '환취권'을 규정한 제407조 등의 규정이 새롭게 재산권의 대상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된 가상자산(디지털자산)을 온전히 포섭하고 있는가다. 이른바 파산-절연의 문제인데 가상자산사업자의 고객인 이용자가 맡긴 예치금과 가상자산이 파산한 채무자(사업자)가 파산선고 당시에 가진 모든 재산(파산재단 귀속)에 속할까, 아니면 사업자가 보유(보관)하고는 있었지만 이용자가 맡긴 '고객 재산'으로 보는 게 맞을까?
제407조를 문언대로 읽으면 채무자에 속하지 아니하는 재산도 파산재단에 속한다고 보되, 파산채무자의 것이 아니므로 파산재단에서 환취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약간 아귀가 맞지 않는다. 한편, 민법의 법조문이 얽히면 이슈가 더 복잡해진다.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에서는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상자산과 관련해서는 물건임을 전제로 소유권에 기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취지로 주장을 관철해내기 어렵다. 참고로, 채무자회생법의 제407조 '환취권' 규정 등은 회사정리법·화의법·파산법·개인채무자회생법이 채무자회생법으로 통합될 때부터, 아니 그 훨씬 전인 1962년 제정된 파산법에서부터 변함없이 존재해 왔고, 민법 제98조도 1960년 제정 민법에서부터 문구의 변함이 없는 점은 동일하다.
최근 우리 법원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있었다. 스테이킹을 대리하던 예치 업체에 가상자산(솔라나)을 맡겼다가 해당 업체가 파산하자 해당 가상자산을 따로 돌려받고 싶다고 파산관재인을 상대로 낸 '환취권에 기한 디지털자산 반환청구의 소'를 각하한 판결이다(서울중앙지법 민사96단독, 2025가단100270 사건, 2026.8.19.). 원고는 스테이킹 서비스를 위해 맡긴 솔라나에 대한 권리가 자신에게 있고 스테이킹만을 대행한 업체의 파산재단에 묶여 채권자들에게 배당할 재산은 아닌 만큼, 다른 일반 채권자보다 먼저 배당받는 문제가 아니라, 채무자에 속하지 않는 재산을 파산재단에서 제외하여 돌려받아야 한다는 취지를 주장했지만, 그 권리는 일반 파산채권이므로 파산재단에서 제외하여 돌려받는 '환취'가 아니라 다른 채권자들과 파산절차에 참여해서 돌려받아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재산이 파산재단에 속함을 전제로 이행을 구하는 것이 파산채권이므로 환취권의 기초가 되지 않는다고도 했다. 파산절차에서 채무자에 속하지 않는 제3의 재산을 돌려받을 권리인 환취권은 부정된 것이다. 다만, 그 재산이 파산재단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증명하면 환취권의 기초가 될 수 있다고는 하였다. 민법 관점에서도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물건은 아니지만 혼장임치 유사 비전형계약의 해지에 따른 '채권적 청구권'(솔라나를 돌려받을 권리)은 인정된다고 하면서도, 문제가 된 가상자산(솔라나) 역시 민법이 정한 물건으로 볼 수 없고, 물건임을 전제로 소유권에 기한 권리를 행사한다는 취지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했다. 디지털 가상자산을 유체물 및 기타 관리 가능한 자연력으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터다. 이와 같은 관점은 과거로부터 변함없이 존속해 온 잣대로만 보면 한편 당연한 귀결점일 수 있지만 뭔가 아쉽다.
이러한 사태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지 않았다. FTX나 Celsius 사태에서도 그랬다. 고객이 디지털자산 중개업자에게 맡긴 코인의 법률상 성격이 모호했기 때문에 그리고 고객 재산 보호 및 파산 시 특례 취급 규정이 없었던 터라, 파산한 중개업체의 자산으로 보아 파산재단에 묶여 일반 채권자들의 채권 청구와 혼동되고, 고객들은 몇 년씩 걸리는 재판과 헐값 정산에 노출됐다.
그런 연유로 미국에서는 다각적으로 입법적 해결책이 모색되었다. 첫째는 기본 사법에 해당하는 미국 통일상법전의 2022년 개정판이다. '통제할 수 있는 전자적 기록'이라는 개념으로 디지털자산을 재산권의 대상물로 포섭했다. 미국의 30개 이상의 주에서 입법 조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국제사법통일연구소의 디지털자산 관련 사법 제원칙에 관한 2025년 권고, 디지털자산을 점유물, 쟁송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산권의 대상물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간단한 조문을 입법한 영국의 디지털자산 등 재산법(2025.12.)이나 두바이의 디지털자산법(2024)과도 같은 맥락이다.
둘째는 Clarity Act 법안이다. 미국 하원을 통과한 후 상원에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며 매머드급 법안으로 입법 단계를 거치고 있는 '디지털자산 시장 명확성 법안'이다. Clarity Act 법안에도 '고객 재산인 디지털자산'의 파산재단 귀속을 원천 차단하는 '파산-절연'을 명시하는 여러 조문이 포함되어 있다. 디지털자산 중개업체가 파산하는 경우 코인 등 고객 자산을 파산재단에 귀속시킬 것인지 아니면 고객의 사유 재산으로 고객에게 즉시 돌려주도록 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논란을 끝내는 조문들이다.
사업자에 대해 고객 자산 분리보관을 의무화하고, 파산하더라도 사업자가 고객을 위해 보유하던 디지털자산은 반드시 고객에 배분될 '고객 재산'으로 취급되도록(순재산 청구권 인정) 연방 파산법을 직접 개정함으로써, '고객 재산인 디지털자산'이 파산 업체의 변제 재산(파산재단)에 묶이지 않고 고객에 최우선 배분되도록 하는 한편, 파산법상 '자동 정지'나 파산관재인이 행사할 '부인권' 규정도 적용을 배제하는 등 파산 시 안전지대를 명시하고 있다. 디지털자산 커스터디(보관·관리)와 관련해서도, 고객 자산은 파산법 적용에서 완전히 격리된다고 명시하여, FTX 등의 경우처럼 수탁 자산(자금)이 유용되거나 파산 시 일반 채권자의 청구권 행사 대상인 파산재단으로 편입될 위험을 법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나아가 중개업자가 파산하더라도 고객 재산 부족분 충당을 의무화하고, 일반 투자 고객들은 사업자에 대한 일반 무담보 채권자들보다 앞서는 우선 변제권을 갖도록 파산법상 우선 변제 순위도 파격적으로 바꾸고 있다. 그리고 사업자의 분산원장 대리 참여 서비스(스테이킹)는 고객의 명시적 동의를 전제로 하되, 고객 선택으로 스테이킹에 사용된 자산이 파산법상 고객의 순재산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관하여도 CFTC가 공식 해석과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도록 하고, 사업자는 이를 고객에게 공시하도록 하는 조문도 들어 있다. 셋째, GENIUS Act에서다. 스테이블코인 보유자들의 청구권은 발행자에 대해 다른 청구권을 보유하는 자의 청구권보다 우선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11조).
유럽연합(EU)에서도 암호자산시장법(MiCA)을 마련하면서 파산절차에서의 특례 취급 규정을 명문화했다. MiCA 규정은 파산절차에서도 적용된다는 점, 자산준거토큰(ART)의 준비자산에 대해서는 발행자의 재산과 법적으로 분리되고 일반 채권자의 소구권이 부정되며, 사업자가 파산하더라도 고객 소유권은 안전하게 보호되며, 위탁 보관되는 암호자산은 고객의 이익이 되도록 사업자 자산과 법적으로 분리되고, 파산 사업자의 채권자들은 위탁 보관되던 암호자산을 상대로 소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위에서 우리나라의 최근 판례의 대강과 함께 민법과 채무자회생법의 관련 규정이 제정법 이래 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민법의 '물건의 정의' 규정을 들었었는데, 전향적으로 이 조문을 물건등의 정의로 확장하면서 물건등이란 물건 기타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한다는 문구로 변형하면 어떨까 싶다. 재산권의 대상물로 인식되는 디지털자산도 포섭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디지털자산 사업자를 이용하는 고객이 사업자에게 맡긴 재산은 무슨 일이 있든 고객 재산으로 취급되어야 억울함이 없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사업자 파산 시 고객 재산 보호 수준을 강화하는 특례 장치가 기본 사법 차원에서, 그리고 (가칭)디지털자산기본법 같은 규제법에서 입법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행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서 고객 자산 분리보관 및 동종·동량 실질 보유를 규정한 조문은 고객 자산 부족분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수준으로만 해석되고, 파산 시 우선 보호로 연결되지 못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규정으로, 과거에 정해진 규제로, 있어 본 적이 없는 현재와 미래의 전개를 포섭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새로워져야 할 때다. 앞서 본 것처럼 국제사법통일연구소를 비롯해 미국, 영국, 두바이 등이 기본 사법을 보완하고 있는 점, 미국과 유럽연합이 디지털자산 관련 규제법에서 현실적 수요를 반영하고 있는 점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낡은 문법과 결별하고 새로운 문법으로 고쳐 써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해붕 업비트 투자자보호센터장
저작권자 © 온라인 경제미디어 뉴스웨이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