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계약 1조원도 당장 쥐는 현금은 5~10% 안팎권리 범위·옵션 구조·단기 마일스톤 행간 읽어야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이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와 기술수출(License-out) 계약을 체결할 때마다 시장의 시선은 '총계약 규모'에 쏠린다. 하지만 전자공시시스템에 찍힌 최대 계약 금액이 1조원이라고 해서 기업 금고에 당장 1조원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에 적힌 이론상 최대치와 기업이 실제로 손에 쥐는 현금 사이에는 신약 개발의 험난한 성공 확률만큼이나 큰 간극이 자리 잡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술수출의 대가 지급 구조에는 크게 선급금(Upfront payment), 마일스톤(Milestone payment·단계별 기술료), 로열티(Royalty·경상기술료)라는 세 가지 축이 존재한다. 이 가운데 계약 체결과 동시에(또는 일정 기한 내) 지급받는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만이 확정적인 현금 유입이다. 반면 전체 계약 규모의 85~95%를 차지하는 마일스톤은 전임상 완료, 임상 1·2·3상 진입 및 결과 도출, 각국 규제기관의 품목허가, 상업화 이후 특정 누적 매출 달성 등 까다로운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씩 열리는 조건부 보너스에 해당한다.
따라서 기업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최대 계약 규모'는 후보물질이 수년간의 임상 시험을 무사히 완주해 글로벌 시장 안착까지 성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잠재적 총액일 뿐, 현재 확보한 매출이나 현금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반환 의무가 없는 확정 선급금이라 할지라도 회계 처리(K-IFRS 제1115호) 관점에서는 원개발사가 초기 임상이나 공동 연구개발 수행 의무를 함께 부담할 경우, 계약 직후 일시 매출로 잡히지 않고 계약 기간에 걸쳐 쪼개서 인식(이연수익)되는 사례도 있다.
총계약 90%, 미래 '조건부 수표'
한 바이오벤처가 글로벌 제약사와 총규모 1조원(경상기술료 별도)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가정해 보자. 통상적인 계약 구조를 대입하면 계약 직후 받는 선급금은 500억원 수준이고, 임상 1·2·3상 진입과 통과에 걸려 있는 개발 마일스톤이 3500억원,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의 품목허가 및 출시 후 누적 매출 목표 달성에 연동된 허가·판매 마일스톤이 6000억원으로 배정되는 식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직후 회사가 실제로 확보하는 현금은 전체 발표 금액의 5%인 500억원뿐이다.
여기서 일반 투자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오해하는 대목이 바로 '판매 마일스톤'과 '로열티(경상기술료)'의 차이다. 금융감독원 공시 기준과 글로벌 업계 표준에서 발표하는 '총계약 규모'에는 상업화 이후 매년 매출액의 일정 비율(통상 순매출의 5~15% 선)을 떼어 받는 로열티가 포함되지 않는다. 신약이 출시되기도 전에 향후 10여 년간 발생할 매출 총액을 미리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총계약 금액에 합산되는 상업화 단계의 돈은 누적 매출이 1조원, 2조원 등 특정 구간을 돌파할 때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판매 마일스톤'이며, 매년 꼬박꼬박 들어오는 로열티는 총계약 규모와 무관하게 별도로 수취한다.
문제는 신약 후보물질이 임상 1상에 진입해 최종 품목허가 문턱을 넘을 확률이 글로벌 평균 10%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임상 2상이나 3상 과정에서 약효 입증에 실패하거나, 파트너사인 빅파마 내부의 파이프라인 구조조정으로 개발이 중단되면 후반부에 걸려 있던 수천억원의 마일스톤은 사라진다. 글로벌 라이선싱 시장에서 발표되는 총계약 규모 대비 선급금 비중이 평균 5~10% 선에 머무는 것도 이러한 신약 개발의 구조적 실패 리스크가 가격에 선반영된 결과다.
같은 조 단위 계약도 '질'이 다르다···유한양행·알테오젠·리가켐바이오가 보여준 해법
그렇다면 기술수출 계약의 실질적인 가치(Quality of Deal)는 무엇이 가를까. 단순히 총액 숫자를 비교하기보다 넘겨준 권리의 범위와 개발 비용 부담 주체, 그리고 실제 마일스톤이 현금으로 전환되는 구조를 입체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국내 바이오 역사를 새로 쓴 주요 빅딜 사례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계약 구조에 따라 기업의 실익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드러난다.
우선 후보물질이 모든 관문을 뚫고 마일스톤을 실제 현금으로 현실화한 대표적인 사례는 유한양행의 비소세포폐암 신약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다.
유한양행은 지난 2018년 얀센에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권리를 최대 12억500만달러(계약 당시 약 1조4000억원)에 기술수출할 당시 확정 선급금으로 5000만달러(비중 약 4.1%)를 받았다. 초기 선급금 비중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이후 얀센이 자체 항암제 '리브리반트'와 병용 요법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한 끝에 두 차례에 걸쳐 총 1억달러의 개발 마일스톤이 유입됐다. 특히 2024년 8월 미국 FDA 품목허가를 획득하고 상업화에 돌입하면서 단일 마일스톤으로만 6000만달러(약 800억원)를 추가로 거머쥐었고, 이어 유럽과 일본, 중국 등 주요 시장 출시가 이어지며 단계별 마일스톤 수령과 별도의 매출 비례 로열티 창출이라는 선순환 궤도에 안착했다.
단일 신약 물질이 아니라 여러 의약품에 반복 적용할 수 있는 '플랫폼 기술'은 권리 범위를 어떻게 쪼개느냐에 따라 몸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알테오젠의 인간 히알루로니다제 기반 피하주사(SC) 제형 변경 플랫폼 'ALT-B4'가 이를 증명한다. 알테오젠은 정맥주사(IV) 치료제를 피하주사로 바꿔주는 원천 기술을 특정 빅파마 한 곳에 통째로 넘기지 않고, 파트너사와 타깃 품목별로 비독점적 권리를 부여하는 전략을 택했다. 덕분에 2020년 MSD와 최대 38억달러 규모의 비독점 계약을 맺은 이후에도 산도스, 다이이찌산쿄(항체약물접합체 '엔허투' SC 개발·총 3억달러 규모), 아스트라제네카 등과 연달아 조 단위 및 수천억원대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특히 MSD와는 2024년 2월 블록버스터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SC 제형에 한해 독점적 권리로 계약을 변경하면서 변경 계약금 2000만달러와 추가 마일스톤 최대 4억3200만달러를 증액하고 판매 로열티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확실한 모달리티(약물전달체계) 경쟁력을 갖춘 경우 임상 초기 단계에서도 빅파마에서 거액의 확정 선급금을 받아내며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리가켐바이오가 얀센에 수출한 항체약물접합체(ADC) 후보물질 'LCB84'는 임상 1/2상 진입 시점에 체결된 계약임에도 총규모 17억2250만달러(약 2조2400억원) 중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으로만 무려 1억달러(약 1300억원, 비중 약 5.8%)를 확보했다. 여기에 얀센이 향후 단독 개발 권리를 행사할 경우 2억달러(약 2600억원)의 옵션 행사금을 추가로 지급하도록 설계해 초기 현금 유입을 극대화했다. 뇌혈관장벽(BBB) 투과 플랫폼 '그랩바디-B'를 보유한 에이비엘바이오 역시 글로벌 빅파마 GSK와 총 4조원대 기술수출 계약을 맺으며 계약금과 단기 마일스톤 명목으로만 700억원이 넘는 확정적 자금을 확보해 기술의 현재 가치를 입증했다.
이처럼 권리 범위와 함께 반드시 살펴야 할 대목이 후속 임상 개발 비용의 부담 주체다. 기술을 이전받은 글로벌 제약사가 이후 임상 비용 전액을 부담한다면 국내 원개발사는 재무적 리스크를 덜어내고 마일스톤만 수취하면 된다. 반대로 향후 상업화 수익 배분율(Profit sharing)을 높이는 대가로 글로벌 임상 3상 비용의 일정 비율을 공동 부담(Co-development)하기로 약정했다면, 마일스톤이 들어오더라도 수백억원의 임상 분담금으로 다시 빠져나가 단기 현금흐름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빅파마가 초기 기술에 '옵션 딜'을 거는 이유
최근 글로벌 빅파마의 기술도입(License-in) 전략은 후보물질의 성숙도에 따라 양극화되고 있다. 후보물질 발굴이나 전임상 단계의 초기 기술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수백억원의 선급금을 지급하는 본계약 대신 이른바 '옵션 딜(Option-to-license)' 구조를 선호한다. 빅파마가 초기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원 수준의 소액 옵션 대가만 지불하고 초기 연구를 지켜본 뒤, 영장류 실험이나 임상 1상에서 독성 및 효능 데이터가 입증됐을 때만 옵션을 행사해 본계약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실패 확률이 높은 초기 기술에 대해 일종의 '우선매수청구권'만 사두어 매몰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빅파마 특유의 리스크 관리 전략이다. 반대로 임상 2상 이상에서 개념증명(PoC)을 마친 후기 자산이나 차세대 모달리티 선도 물질에는 높은 프리미엄과 선급금을 아낌없이 베팅한다.
이 같은 글로벌 라이선싱 시장의 문법을 이해한다면, 기술수출 발표를 접할 때 공시 원문의 행간을 읽어낼 수 있다.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지표는 반환 의무 없는 선급금(Non-refundable Upfront)의 절대 규모와 총계약 대비 비중이다. 선급금 비율이 글로벌 평균인 5~10% 선을 웃도는지, 그리고 향후 임상이 실패하더라도 어떤 조건에서든 돌려주지 않는 확정 자금인지가 해당 기술의 현재 몸값을 대변한다.
이와 함께 마일스톤의 지급 시점과 달성 난도를 가늠해 봐야 한다. 품목허가나 누적 매출 달성처럼 7~10년 뒤에 돌아올 허가·판매 마일스톤에 금액이 과도하게 쏠려 있는 계약보다는, 향후 1~2년 내에 달성 가능한 임상 시험계획(IND) 승인이나 첫 환자 투여(FPI) 같은 단기 개발 마일스톤이 얼마나 촘촘하게 배치돼 있는지가 바이오 기업의 생존과 연구개발 재투자를 좌우한다. 또 제품 출시 이후 적용되는 로열티가 매출 구간별로 상향되는 계단식 구조(Tiered Royalty)인지, 파트너사가 제3자에게 기술을 재수출(Sublicense)할 때 수익 배분 조건이 어떻게 짜여 있는지도 장기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다.
끝으로 빅파마의 내부 전략 수정으로 권리가 반환되거나 계약이 해지(Termination)될 때, 그동안 빅파마 비용으로 축적한 임상 데이터의 소유권을 원개발사가 무상으로 넘겨받아 후속 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지, 기수령한 기술료에 대한 반환 면제 조항이 확고한지도 점검 사항이다.
정리하자면
선급금은 계약 즉시 유입되는 '현재의 확정 가치'이고, 개발 및 허가·판매 마일스톤은 임상과 승인 관문을 넘을 때마다 열리는 '확률에 기댄 미래 가치'이며, 총계약 규모와 별도로 책정되는 로열티는 상업화 성공 이후 매년 창출되는 '영속적 현금흐름'이다.
좋은 기술수출 계약이란 단순히 계약서에 큰 숫자가 적힌 계약이 아니라, 높은 선급금과 확장성 있는 권리 구조, 낮은 임상 비용 부담, 그리고 현실적인 단기 마일스톤 조건을 고루 갖춘 계약이다. 국내 바이오 기업의 기술수출 공시를 마주할 때 던져야 할 질문은 '몇 조원짜리 계약인가'가 아니라 '그중 얼마가 언제, 어떤 조건을 뚫어야 실제로 기업의 통장에 찍히는가'여야 한다.
뉴스웨이 이병현 기자
bottlee@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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